풍속화

풍속화

[ genre painting , 風俗畵 ]

요약 일정한 사회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풍속 ·취미 ·일상생활의 모습 등을 제재(題材)로 그린 그림.
키테라섬의 순례

키테라섬의 순례

거기에 다루어진 사람들의 계층에 따라서 농민적 ·서민적 ·귀족적 풍속화라는 구분이 가능하지만, 내용에 따라서는 종교화나 역사화 ·초상화 등과 명확한 구별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어떤 계층의 현실생활을 그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분명하게 특정인물의 개성이나 용자(容姿) 또는 그 신체(身體)를 묘사한 인물화인지, 아니면 인물을 모델로 하여 풍속을 그리고자 한 작품인지를 뚜렷이 가려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풍속화는 고대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으며, 멀리 고대 이집트의 벽화나 폼페이의 벽화, 그리스의 항아리에 묘사된 문양(文樣)이나 로마시대의 모자이크 등에서 당시의 생활을 그린 포도주 빚는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다. 중세에는 일상생활이 흔히 예술표현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풍속화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종교건축의 장식 ·조각이라든지 기도서(祈禱書)의 삽화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서유럽의 미술에서 풍속화풍의 작품이 처음으로 출현하는 것은 15세기 이후, 그 후반에 접어들어 네덜란드의 화가들이 즐겨 그 화재(畵材)를 다루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이 무렵, 독일의 A.뒤러도 종교적인 내용을 풍속화풍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풍속화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화가가 등장한 것은 17세기의 네덜란드에서였으며, 요르단스, 브로우베르 등이 풍속화가로 이름 높다. 그 밖에도 당시의 쟁쟁한 화가들 가운데 렘브란트, 루벤스, 벨라스케스 등도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18세기에 접어들자 프랑스에서는 주로 왕후(王侯) ·귀족과 같은 상류사회 사람들의 희구(希求)에 부응한 우아한 생활을 엿보게 하는 J.A.와토가 나타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민생활의 주방(厨房) 속에서 그림의 제재를 찾은 샤르댕도 있다. 이와 같은 시대의 영국 화가 호가스 등의 화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사실주의사조는 많은 풍속화를 낳았다. 프랑스에서는 즐겨 이국(異國) 풍속을 그린 들라크루아, 각 계층의 사람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도미에, 자연을 추구하는 가운데 농민들의 생활을 그린 밀레, 노동자의 생활을 다룬 쿠르베 등이 각각 독특한 풍속화의 화풍을 세워나갔다.

이 무렵 독일에서도 A.L.리히터, 멘첼, 라이블 등이 여러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한 풍속화를 제작하였다. 이후 유럽 화단(畵壇)에 인상주의운동이 대두하면서 풍속화는 차차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지만 마네, 드가, 리베르만 등의 그림 가운데에는 풍속화풍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동양에서는 고대 중국의 여성 풍속을 알려주는 회화로서 동진대(東晉代)의 화가 고개지(顧愷之)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여사잠도(女史箴圖)》의 당대(唐代) 모본(模本)이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에 소장되어 있으며, 당나라 때의 화가 장훤(張萱)의 원화(原畵)를 송(宋)의 휘종(徽宗)황제가 모사(模寫)한 《도련도(擣練圖)》가 미국의 보스턴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 중국회화의 당초 제작의도가 어디 있었든 그것은 여성 풍속이나 당시의 생활상들을 묘사한 것이므로 동양에서 풍속화의 원류(源流)를 이루는 작품들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