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하

이주하

[ 李舟河 ]

요약 조선공산당 서기국원과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을 지낸 좌익세력의 중심인물이다.
출생-사망 1905 ~ 1950
본명 이주하
국적 한국
활동분야 공산주의 운동
출생지 함남 북청

함경남도 북청(北靑) 출생으로, 조선공산당 서기국원과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을 지낸 좌익세력의 중심인물이다.

1913년 원산 광성학교(光成學校)에 입학하고 3년 뒤 보광학교(保光學校)로 옮겨 3학년 때인 1919년에 3·1운동에 참여했다가 발각되어 갑산(甲山)으로 피신하였다.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 정치학과를 다니면서 지방공산청년동맹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하였다.

1928년 원산총파업사건 이후 노동운동 조직을 재건하고, 1931년 정재헌(鄭在憲) 등과 함께 평양노동연맹 좌익화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조선공산당 원산시 당책임자, 태평양노동조합 함경남도 책임위원을 지내던 중 1932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5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1937년 원산철도국 사건에 연루되어 진남포로 피신하여 숨어 지내다가, 1945년 8·15광복 이후 다시 활동을 시작하며 조선공산당 함경남도지구 인민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월남하여 박헌영(朴憲永)·이강국(李康國) 등과 함께 재건조선공산당 정치국에서 활동하면서 민주주의민족전선 상임위원을 지냈다. 1946년 12월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에 뽑혔으며, 박헌영이 월북한 뒤 총책을 맡은 김삼룡(金三龍)을 보좌하여 활동하던 중 1950년 3월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이 일어나자 즉결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