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욕망

[ desire , 欲望 ]

요약 충족이 가능한 생물학적 욕구나 요구와 달리 충족될 수 없는 사회적 구성물로 다른 주체들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그리고 이 주체들을 매개로 삼아 욕망의 양상과 대상이 달라진다.
원어명 désir

욕망을 선천적인 것으로 생각할 때 본능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빌헬름 분트나 윌리엄 맥도갈은 식욕 ·성욕 ·군거(群居) ·모방 ·호기심 ·투쟁 ·도피 등을 본능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칼 마르크스는 식욕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성욕을, 프리드리히 니체알프레트 아들러는 권세욕을 근본으로 하여 자신들의 학설을 만들었다.

현대의 심리학은 개체의 동인을 단순히 선천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생각하여, 기본적 욕구라고 본다.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은 진정한 욕구와 준(準)욕구로 구분하였고, 제임스 프레스콧이나 게이츠는 생리적 ·생물적 욕구와 사회적 ·인격적 욕구의 2가지로 크게 구별하였다.

생리적 ·생물적 욕구는 식욕 ·배설욕 ·수면욕 ·활동욕 ·성욕 등이며, 사회적 ·인격적 욕구는 사회적 인정의 욕구, 집단소속의 욕구, 애정의 욕구, 성취의 욕구 등이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생리적 욕구를 기초로 하여 안전의 욕구, 애정의 욕구, 자존(自尊)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 5가지 욕구가 계층적 구조를 형성한다고 설명하였다.

정신분석학의 욕망 개념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욕망 개념을 더욱 정교하게 분석하였는데, 라캉의 욕망(désir)은 프로이트의 용어 '소망(Wunsch)'의 프랑스 번역어에 해당한다. 이는 프로이트의 표준판 번역본에서 'wish'로 번역되어 있다. 라캉은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를 따라서 욕망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때 욕망은 의식적 욕망이 아니라 항상 무의식적 욕망에 해당한다. 또한 이 무의식적 욕망은 완벽하게 성적인 것이다.

정신분석 치료의 목표는 피분석자가 자신의 욕망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데 있는데, 그것은 말로 발화될 때에만 가능하다. 즉 타자가 있는 곳에서 그 타자에게 말할 때 욕망은 그게 무엇이든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주체에게 욕망을 나타내도록 이름을 붙이고 발화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어진 욕망에 대해 새로운 표현수단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반대로 피분석자가 주어지지 않은 자신의 욕망을 발화하여 표출하는 것에 해당한다.

물론 욕망과 발화는 근본적으로 양립불가능하므로 이 행위에도 한계가 있으며, 이러한 양립불가능성이 무의식의 환원불가능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즉 무의식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언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에 대한 진실은 발화로 어느 정도 나타나지만, 발화는 욕망에 대해 완전한 진실을 결코 말할 수 없다. 항상 발화를 초과하는 나머지와 잉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욕구, 요구, 욕망

라캉은 기존의 분석자들이 욕망 개념을 요구와 욕구 개념과 혼동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러한 혼동에 반대하며 라캉은 각각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구별하였다.

욕구는 순전히 생물학적 충동이자 신체기관의 요구에 따라 등장했다가 충족되면 일시적으로 완전히 약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무기력의 상태에서 태어난 인간 주체는 그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충족할 수 없기에 대타자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 도움을 얻기 위해 영아는 그의 욕구를 소리내어 표현해야만 한다. 즉 욕구가 요구로 분절되어야 한다. 이런 영아의 요구는 분절이 되지 않은 비명일 수밖에 없다. 이 비명을 듣고 온 대타자는 영아의 욕구를 살피고 이 과정에서 욕구의 단순한 충족을 넘어서는 대타자의 사랑에 대한 상징화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요구는 '욕구의 분절'인 동시에 '사랑에 대한 요구'라는 2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대타자는 주체를 만족시키는 욕구의 대상을 줄 수는 있어도 주체가 갈구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는 없다. 결국 욕망은 만족에 대한 욕구도 사랑에 대한 요구도 아니고, 사랑에 대한 요구에서 만족에 대한 욕구를 감할 때 나오는 차이이다.

욕망은 요구로 욕구를 분절할 때 만들어지는 잉여이다. 충족이 가능하고 다른 욕구가 새로 생길 때까지 주체가 멈추게 만드는 욕구와 달리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억압하더라도 지속되며 영원하다. 욕망의 실현은 충만에 있는 게 아니라 욕망 그 자체의 재생산에 존재한다.

욕망과 충동의 구별

욕망과 충동 모두 대타자의 영역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망은 하나인 반면 충동은 다수이다. 달리 말해 충동은 욕망이라 불리는 단일한 힘이 특수하고도 부분적으로 현현한 것이다. 욕망에는 대상 a라는 유일한 대상이 존재하고, 이것은 다양한 부분충동 속에서 다양한 부분대상으로 나타난다. 대상 a는 욕망이 향하는 대상이 아니라 욕망의 원인이며, 욕망은 대상이 아니라 결여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

라캉의 유명한 명제인 '인간의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다.'는 다음 5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1.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의 대상이자 타인의 인정에 대한 욕망이다.
2. 주체는 타인의 관점에서 욕망한다. 즉 나의 욕망의 대상은 다른 누군가가 욕망한 대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대상을 욕망하게 만드는 것은 대상에 있는 특질이 아니라 다른 이의 욕망 여부이다. 이때 타인은 욕망의 매개자가 되는 셈인데, 이는 히스테리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히스테리 환자는 타인의 욕망을 지탱하는 자이자 타인의 욕망을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바꾸는 자이다. 그래서 히스테리 환자의 분석에서는 피분석자의 욕망 대상을 찾는 게 아니라, 피분석자의 욕망이 시작하는 자리 혹은 피분석자가 동일시하는 다른 주체를 찾아야 한다.
3. 욕망은 대타자를 위한 욕망이며, 근본적 욕망은 시원적 대타자인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의 욕망이다.
4. 욕망은 항상 다른 무언가에 대한 욕망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욕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망의 대상은 계속 연기되는데, 그래서 욕망은 환유인 셈이다.
5. 욕망은 대타자의 영역, 즉 무의식에서 발원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욕망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즉 욕망은 개인의 내밀한 사안이 아니라 다른 주체들의 욕망을 자각하고 그들과 변증법적 관계를 맺으면서 구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