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영주

[ lord , 領主 ]

요약 중세 유럽의 봉건사회에서 농민을 보호 지배한 정치권력자.

농업사회에서 이루어진 인격화된 지방적 정치권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12~13세기 유럽에서 집단부락이 형성되고 이것이 조직화된 농촌공동체 또는 자치부락으로서의 직능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이를 주요 권력기반으로 하여 전형적인 모습으로 출현하였다.

전형적인 봉건영주는 거성(居城)을 중심으로 여러 마을을 일원적으로 지배함으로써 농업사회에 있어서 지역방위 권력으로서의 기능도 발휘하였다. 도시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지역간에 광역 경제권이 형성되고 왕권(王權)이 점차 신장되어 중앙집권화(절대주의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영주권(領主權)은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나 근대국가가 성립될 때까지는 영주가 존속하였고 영주는 경찰권과 하급재판권을 가지는 지방의 유력자였다.

영주의 역할

영주는 그가 지배하는 지역의 행정권·경찰권·재판권을 장악하고 조세(租稅)를 부과하며 생산물 연공(年貢)이나 화폐의 형식으로 이를 징수하여 지역 내의 질서유지를 책임지는 동시에 대외적인 군사방위를 담당하였다. 이런 점으로 보아 오늘날의 국가와 공통된 기능을 발휘하였으나, 권력이 항상 인격화되어 1인 지배자의 형태로 출현한다는 점과 그 성격이 지방적이며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근대나 현대 국가와는 그 존재방식이 다르다.

농업사회에서는 토지방위가 생활안정을 위하여 중시되었고, 대내적(對內的) 질서유지는 원칙적으로 마을 사람들의 자치에 맡겨졌다. 그것은 사회집단의 규모가 작고 서로 얼굴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은 해도 좋고 무엇은 해서 안 된다는 사회적 여러 규범은 불문율(不文律)로 정해져 있어서 누가 보아도 명확하였기 때문이다. 이 점은 국제적인 경제·정치상의 상호 의존관계의 유지와 국내의 경제적·사회적 질서의 조정 유지에 크게 신경을 써야 할 현대의 산업국가와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싸우는 특수 기술을 몸에 익혀 지역방위에 임할 능력을 가진 인간, 즉 전사(戰士)가 지역의 보호와 지배의 임무를 맡을 존재로서 결정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 봉건영주의 필요성이 있다. 

재판영주

영주에는 고전장원(古典莊園)영주·재판영주, 동부 독일의 구츠헤르(Guts-herr)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나 봉건영주의 전형은 재판영주이다. 고전장원영주는 7, 8세기로부터 11, 12세기에 걸쳐 북서부 유럽에, 중세에는 영국에서도 존재하였으나 다 같이 분산된 영토에서 강력한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하였으므로 조직적인 지역방위 권력이 되지 못하였다.

이에 비하여 12, 13세기 북프랑스와 서부 독일에 나타난 재판영주는 교통의 요충지에 석성(石城)을 쌓고 그 주변 일원에 있는 여러 마을을 지역적으로 방위함과 동시에, 그 지역 내에 사는 모든 주민, 즉 농민을 영민(領民)으로 삼아 그의 보호 지배 아래에 두고 봉건영주를 대표하였다. 이를 가능하게 한 객관적 조건은 집단부락의 일반적 성립과 농업상의 기술혁신, 농사법의 보급에 따른 농업생산의 비약적 발전이었다.

재판영주는 영민에 대하여 사형집행권을 포함, 유혈(流血) 재판권을 행사하고, 영내에 있어서의 유일한 치안유지권자가 된 동시에 영민으로부터는 여러 가지 조세를 징수하였다. 재판영주는 14, 15세기 이후 절대왕정(絶對王政)의 성립을 위하여 왕권(王權)이 강화(중앙집권화)되자 그 정치적 독립성을 잃고 쇠퇴하였다. 

구츠헤르

12, 13세기에 영주(기사)의 주도에 의하여 대규모적인 ‘동부 독일 식민운동’을 전개한 엘베강(江) 동쪽 지방에서는 15, 16세기에 이르러 영주가 구츠헤르로 성장하였다. 구츠헤르(Gutz-herr)란 재판(裁判)영주의 일종이지만 영민(領民)으로부터의 조세징수에 의한 지역방위에 흡족하지 않고, 그 권력으로 영주 자신의 직영지(直營地)를 확대하여 영민에게 부역을 시킴으로써 상품생산자로서 등장한 것이다.

직영지에서 생산된 곡물은 여러 도시에서 매각되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13세기 영국의 대고전장원 영주, 즉 교회나 수도원의 태도와 공통되는 점이 있으나, 구츠헤르는 후진적 농업지대에 늦게 출현한 재판영주가 당시의 도시경제에 대응하면서 농민지배를 강화하고 상품생산자적인 성격까지 장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