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층분해

농민층분해

[ differentiation of peasantry , 農民層分解 ]

요약 자립을 한 소규모 경영의 농민이 상품경제의 진전에 따라 토지와 생산수단을 상실하여 몰락하는 다수자(多數者)와, 반대로 토지와 생산수단을 집적하여 부유화하는 소수자로 분극(分極)하는 과정.

봉건사회에 있어서 영주와 농민관계를 재생산해 나가는 분해, 즉 봉건적 분해의 존재를 주장하는 설도 있으나 이 견해는 통설이 아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분해과정은 봉건사회의 해체기에서 비롯되어 자본주의의 전기(全期)를 통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봉건적 지배가 이완되어 영주들이 지대(地代) 등으로 농민의 잉여생산물을 모두 수탈할 수 없게 되면, 농민은 소상품생산자의 입장이 되어 서로 상품교환관계를 맺음으로써 일정 범위의 농민적 상품경제가 성립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상품경제 속으로 농민층이 빠져들게 되면 개개 농민이 생산해 낸 상품의 개별적 가치(가치형성)와 시장가치(가치실현) 사이에 발생하는 격차, 즉 농민 각자의 조건의 차에 의해서, 그들은 부유화하는 농민과 빈곤화하는 농민으로 분해해 간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해가 비록 봉건사회를 어느 정도는 해체한다 하더라도 봉건적 제관계가 계속 존속, 농민적 상품경제가 제약된다면 분해의 본격적 진행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농민은 부농의 지주화와 빈농의 소작화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현상을 ‘농민층분해의 왜곡(歪曲)’ 또는 ‘지주적 분해’라고 하는 설도 있다.

반대로 생산제력(生産諸力)의 집중적 발전에 의해 농민적 상품경제가 봉건적 제관계의 제약을 타파하고 더욱 발전하게 되면 농민층분해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한쪽의 극에는 자본가적 경영을 영위하는 농촌 부르주아가, 다른 한쪽의 극에는 임금노동자화하는 농촌 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되어 각기 성장해 간다. 이와 같은 분해를 특히 농민층의 양극분해 또는 부르주아적 분해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 분해는 봉건사회를 최종적으로 해체하고, 농업과 공업에 있어서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형성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런데도 역사상 농민층이 완전히 양극으로 분해해 버린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서, 자본주의사회의 형성 이후에도 대량의 농민층이 존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같은 농민층은 결국 그 후에 자본주의의 작용으로 점차 분해되고 만다.

그러나 영국 이외의 상대적 후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란 반드시 농민층의 분해를 완성하는 체제가 아니며, 오히려 저렴한 노동력의 원천으로서의 극소농(極小農)의 대군을 잔존시키거나, 열악한 소작제도를 존속시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독점자본주의의 단계에 들어가면 농민층의 분해는 각양각색의 왜곡을 낳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각종 농업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농민층분해’는 자본축적에 대응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계급구성을 결정하는 조건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역참조항목

농촌계급구성,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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