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

연설

[ speech , 演說 ]

요약 많은 청중 앞에서 자기의 주의 ·주장을 말로 전달하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한 형식.
카이사르 석상

카이사르 석상

웅변술은 기원전 5세기에 남이탈리아 출신의 웅변가 코라크스, 고르기아스 등에 의해서 아테네시(市)를 중심으로 발달, 안티폰, 데모스테네스 등으로 불리는 아티카의 10대 웅변가가 배출되기도 했으나, 이를 완성한 사람은 이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한편 로마인은 BC 2세기 초엽 이후 그리스인으로부터 웅변술을 배웠으므로 그 연설은 그리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당시의 주요한 웅변가로는 로임 가토, 가이우스, 그라쿠스 등이 있으며, 특히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연설(彈劾演說)이 유명하다. 또, M.안토니우스의 카이사르 추도연설(追悼演說)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제정(帝政)시대부터 연설은 정쟁(政爭)에서의 설득과 선동의 역할보다는 교양중심으로 변화, 청소년 교육의 최고 단계로 간주되었다. 제정시대의 문예, 특히 서사시·편지·대화·역사서·문학서 등의 라틴문학에서는 웅변술적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교회 만능의 중세에는 민중 상대의 설교연설이 가장 중요한 형태가 되었다.

근대국가가 성립하고, 의회제도가 발달하면서부터는 정치적 연설이 특히 영국의 의회주의(議會主義)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연설의 나라 영국에서는 무명인사(無名人士)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정견(政見)이나 사견(私見)을 발표하기 위하여 가두연설(街頭演說)을 하는 전통도 있으며, 그 자유도 인정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J.B.보슈에, L.부르달루, V.E.플레셰 등이 웅변적인 설교가로 유명하며,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H.G.미라보, M.F.로베스피에르 등이 정치적 연설로, 그 후로는 G.E.클레망소, A.브리앙 등이 유명하다. 독일에서는 J.C.고트셰트가 라이프치히에 연설학교를 설립하였으며, J.G.피히테, F.J.G.라살, 비스마르크 등이 웅변가로 유명하였다. 과거의 연설은 수사적(修辭的) ·문학적 색채를 띠었으나, 현대의 연설은 대화적인 어조(語調)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