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

키케로

[ Marcus Tullius Cicero ]

요약 고대로마의 문인 ·철학자 ·변론가 ·정치가. 보수파 정치가로서 카이사르와 반목하여 정계에서 쫓겨나 문필에 종사했다.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에 안토니우스를 탄핵한 후 원한을 사서 안토니우스의 부하에게 암살되었다. 수사학의 대가이자 고전 라틴 산문의 창조자이다.
출생-사망 BC 106 ~ BC 43.12.7
국적 이탈리아 로마
활동분야 철학, 수사학, 정치
출생지 고대로마 라티움의 아르피눔
주요저서 《카틸리나 탄핵》 《국가론》 《우정에 관하여》

기원전 106년 1월 3일 라티움의 아르피눔에서 출생하였다. 로마와 아테네에서 공부하였으며 아카데미아의 교장이었던 필론이 그의 스승이다. 키케로는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로 정치가, 변호사, 철학자 등으로 활동하였고 특히 웅변과 연설에 뛰어났다. 폼페이우스와 인연으로 그의 지지자가 되었으며 처음에 그는 원로원 민중파 정치가로서 활약하였다. 기원전 64년 집정관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반란을 일으켜 로마를 차지하려는 카틸리나의 음모를 타도하여 ‘국부’의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이때 집정관 키케로는 음모에 가담한 자들에게 신속하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였다. 하지만 원로원의 의결과정이 없이 사형을 집행하였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고 정계에서 실각하여 유배형을 받았다. 폼페이우스의 도움으로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로마는 삼두정치로 인해 공화정이 무력해져 있었다. 키케로는 폼페이우스를 지지하였지만 카이사르와의 전투에서 패하여 사망하자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공화파였던 키케로는 반 카이사르파를 형성하였고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에 안토니우스를 탄핵하였기 때문에 원한을 사게 되어 안토니우스의 부하에게 암살되었다.


변론술의 대가이자 고전 라틴 산문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완성자라고 불리며, 그리스의 웅변술과 변론술의 소양(素養)에서 우러나온 문체는 '키케로풍'의 문체로 일컬어지며 라틴어, 이탈리아어 뿐만아니라 영어와 프랑스어 등에도 끼친 영향이 크다. 하지만 그의 철학과 정치사상은 절충적인 처세 도덕론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리스 사상을 로마로 도입하고 그리스어를 번역하여 새로운 라틴어를 만들어 그가 최초로 라틴어를 사상전달의 필수적인 무기로 삼은 공적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카틸리나 탄핵 In Catilinam》 외 58편의 연설과, 《국가론 De Republica》 《법에 관하여》 《투스쿨라나룸 담론(談論)》 《신에 관하여 De natura deorum》 《의무론 De officiis》 등의 철학서와 《노년론》 《우정에 관하여》 같은 소품, 그리고 친구인 아티쿠스 등에게 보낸 서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