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후재

신후재

[ 申厚載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강화부유수, 개성부유수, 한성부판윤을 지냈고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서인에 의해 여주에 유배, 1697년 석방되었으나 은퇴하여 충주 오갑장에서 학문에만 전심했다. 주요 저서에《규정집》이 있다.
출생-사망 1636 ~ 1699
본관 평산(平山)
덕부(德夫)
규정(葵亭) ·서암(恕庵)

본관 평산(平山). 자 덕부(德夫). 호 규정(葵亭) ·서암(恕庵). 1660년(현종 1)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가 지평 ·부교리 등을 역임했다. 1679년(숙종 5)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고 이듬해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南人)이 제거될 때 삭직되었으며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도승지 등을 지냈다. 그후 사은 겸 진주주청부사(謝恩兼陳奏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강화부유수 ·개성부유수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을 지냈고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서인(西人)에 의해 여주(驪州)에 유배, 1697년 석방되었으나 은퇴하여 충주 오갑장(鰲甲庄)에서 학문에만 전심했다. 저서에 《규정집(葵亭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