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제

시황제

[ 始皇帝 ]

요약 중국 최초의 중앙 집권적 통일제국인 진(秦)나라를 건설한 전제군주. 강력한 부국 강병책을 추진하여 중국대륙의 군소 국가를 모두 통일했다. 중앙집권정책을 추진하여 법령을 정비하고, 군현제를 실시했으며,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하였다.
만리장성

만리장성

출생-사망 BC 259 ~ BC 210
본명 영정
국적 중국 진(秦)
활동분야 정치

성 영(嬴). 이름 정(政). 조(趙)나라의 대상인 여불위(呂不韋)의 계략으로 즉위한 장양왕의 아들이며 장양왕이 즉위 3년만에 죽자 정의 나이 13세에 왕위에 올랐다. 처음에는 태후의 신임을 받은 여불위와 노애(奴毐)가 권력을 장악하였으나 BC 238년 친정을 시작하였다. 노애의 반란을 평정하고 여불위를 제거한 후, 울요(尉繚)와 이사(李斯) 등을 등용하여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추진하여 BC 230~BC 221년에 한(韓) ·위(魏) ·초(楚) ·연(燕) ·조(趙) ·제(齊)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하였다. 통일 후 스스로 시황제라 칭하였다. 이때부터 황제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는데 중국의 전설에서 나오는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에서 명칭을 가져왔다. 강력한 중앙집권정책을 추진하여 법령을 정비하고 전국적인 군현제 실시하였다. 문자 ·도량형 ·화폐의 통일, 전국적인 도로망의 건설, 구 6국의 성곽 요새의 파괴 등을 강행하였다. 또 천상을 본떠 대대적으로 확대 건설한 수도 셴양[咸陽]으로 전국의 부호 12만 호를 강제 이주시키는 한편, 민간의 무기소지를 금하여 반란의 소지를 제거하였으며, 사상의 통일을 위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였다.

대외정책에도 적극성을 보여 북으로는 흉노족(匈奴族)을 격파, 황하 이남의 땅을 수복하고 전국시대 각국의 장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요동에서 간쑤성[甘肅省] 남부 민현[岷縣]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건설하였다. 그는 성격이 사납고 신하를 엄격히 다스렸으며, 남을 신용하지 않았으나 대단히 정력적이고 유능한 군주의 자질을 갖추어 만기(萬機)를 직접 처리하였다. 또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5차에 걸쳐 전국을 순행(巡行)하며 자신의 공덕을 찬양하는 비석을 여러 곳에 세웠다. 그러나 아방궁(阿房宮)과 리산[驪山] 기슭의 수릉(壽陵)을 비롯한 대규모 토목공사에 국력을 낭비하였고, 특히 만년에는 불로장생의 선약을 구하는 등 어리석음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가혹한 법치를 수단으로 지나치게 급격히 추진된 통일정책은 인민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마지막 순행 도중 사망하자 수행한 이사와 조고(趙高)는 유언을 위조하여 황자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였으나, BC 209년 이후 시작된 반란으로 진(秦)제국은 급속히 와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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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만리장성

중국 만리장성 멀리 제 1구 망루가 보인다. 시황제가 대외정책으로 만든 성.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