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현

송상현

[ 宋象賢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재직하였고 왜적을 맞아 싸우다 전사했다.  사후 충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동래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충렬사

충렬사

출생-사망 1551 ~ 1592
본관 여산
덕구
천곡·한천
시호 충렬

본관 여산(礪山). 자 덕구(德求). 호 천곡(泉谷)·한천(寒泉). 시호 충렬(忠烈). 1570년(선조 3) 진사에, 1576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경성판관(鏡城判官)을 지냈다. 1584년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귀국 뒤 호조·예조·공조의 정랑(正郞) 등을 거쳐 동래부사(東萊府使)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정발 장군이 지키던 부산진성이 함락되고 왜적이 동래성으로 쳐들어 왔다. 왜적들은 '싸울 테면 싸우고 싸우지 못하겠으면 길을 비켜달라(戰則戰矣 不戰則假道)' 고 쓴 팻말을 동래성문 앞에 세우자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키기는 어렵다(戰死易假道難)'는 글을 내걸었다. 군관민이 합심하여 항전했으나 동래성이 함락되게 되자 조복(朝服)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은 채 적병에게 살해되었다. 충절에 탄복한 적장(敵將)은 시(詩)를 지어 제사지내 주었다. 이조판서·찬성이 추증되고, 동래 안락서원(安樂書院)과 충렬사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