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3상회의

모스크바 3상회의

[ ─三相會議 ]

요약 1945년 12월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영국·소련 3국의 외상회의(外相會議)로, 한국 문제를 비롯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여러 지역의 문제점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원어명 Moscow Conference

1943년 미국·영국·중화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수행과 전후 처리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카이로회담(Cairo Conference)을 개최하였고, 그에 따른 카이로선언(Cairo Declaration)을 발표하였다. 카이로선언에 따라 3국은 대일전(對日戰)에 협력하고, 일본이 패전할 경우 영토 처리에 대한 기본 사항을 합의하였다. 또한 한국에 대해 적절한 시기(in due course)에 독립시킬 것임을 명시하였다. 카이로회담 직후인 1943년 11월 28일 테헤란회담(Teheran Conference)에서 미국·소련·영국은 독일 공격을 위한 북프랑스(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독일 패배 이후 소련의 대일전(對日戰) 참전에 합의하였다. 아울러 이때 미국이 소련에게 한국에 관해 묻자 소련은 한국이 독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고, 미국이 재차 소련에게 한국에 40년간의 신탁통치가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자 소련은 이에 구두 동의하였다. 미국·소련·영국은 1945년 개최된 포츠담회담(Potsdam Conference)에서 카이로선언의 모든 조항이 이행되어야 함을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모스크바 3상회의(또는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 회의)가 1945년 12월 16일에 개최되었다. 회의에는 미국 국무장관 번즈(James F. Byrnes),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Vyacheslav Molotov), 영국 외무장관 베빈(Ernest Bevin)이 참석하였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 구추축국(舊樞軸國)인 이탈리아·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핀란드와의 평화 조약 체결, 극동위원회 및 연합국일본관리이사회 설치, 원자력 통제를 위한 기구 설립 등이 합의되었다. 그리고 한국, 중국, 루마니아, 불가리아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중국에 관해서는 미국·소련의 중국 내정 불간섭 및 군대 철수, 루마니아에 관해서는 친소련 성격의 그로자(Petru Groza) 정부가 민주주의적 요소를 갖춘다면 미국과 영국이 그들을 인정하겠다는 내용, 불가리아에 관해서는 루마니아와 마찬가지로 친소련 성격의 정부가 민주주의적 요소를 갖춰져야 함이 명시되었다. 한국에 관해서는 ①한국에 민주임시정부 수립 ②한국의 임시정부 수립 및 제반 현안을 논의하는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하며, 미소공동위원회는 이를 한국의 정당·사회단체와 협의 ③한국 임시정부와 협의 후 미국·소련·영국·중국 4개국 공동의 최대 5년의 신탁통치 실시가 합의되었다.

모스크바 3상회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의 하나였으며, 한국에 관한 문제 역시 그 일부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과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정되었다는 오보가 국내에 전해지면서 대대적인 신탁통치반대운동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