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병동맹사건

학병동맹사건

[ 學兵同盟事件 ]

요약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좌우익 학생들의 충돌사건.

모스크바 3상회의(三相會議)에 따른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찬탁(贊託)과 반탁(反託)으로 좌우익(左右翼)의 투쟁이 한창이던 1946년 초 찬탁파인 좌익계 '학병동맹원(學兵同盟員)'들이 반탁을 외치며 시위하던 우익계 학생단체인 '반탁 전국학생총연맹(위원장 이철승)'계 학생들을 습격하여 2∼3일간 서로 습격전을 벌여 사상자를 낸 좌우익 충돌사건이다.

1946년 1월 18일 '반탁 전국학생총연맹'은 (貞洞敎會)에서 '반탁 시국강연회'를 개최한 뒤, 약 600여 명의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벌이자, 미리 잠복해 있던 좌익계 학병동맹원들이 무기와 곤봉 등을 가지고 시위 학생들을 습격, 40여 명의 학생들이 부상을 입고, 그 중 몇 명은 중상을 입어 입원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학병동맹이란 말에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귀환한 자들 중 좌익사상을 가진 자들이 1945년 9월 1일 조직한 '조선학병동맹'으로서 의 전위부대이며 행동대였던 극렬 좌익분자들의 모임이었다. 이러한 좌익 행동대의 습격을 받은 우익학생들은 곧 대열을 가다듬어 을지로 입구에 있던 《인민보사(人民報社)》와 인민당(人民黨) 본부 및 서울시인민위원회 등을 습격한 데 이어 학병동맹 본부를 습격하는 보복행동을 취하였다. 그때 학병동맹측에서는 미리 준비한 무기를 이용하여 반탁학생들을 후퇴시켰다.

이에 경찰이 학병동맹 본부에 출동하여 학병동맹원 2명을 검거하여 조사한 결과 많은 현금, 8개, 도화선 및 (雷管) 등을 은닉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서로 습격사건을 벌인 좌우익 청년 및 학생단체 주모자들이 다 같이 입건되었는데, 좌익계 85명, 반탁학생 9명 등 94명이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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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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