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양좌

나양좌

[ 羅良佐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희릉참봉(禧陵參奉), 공조좌랑(佐郞), 삭녕군수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706년 처음으로 사헌부장령(掌令)을 지냈다.
출생-사망 1638 ~ 1710
본관 안정(安定)
현도(顯道)
명촌(明村)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명촌잡록(明村雜錄)》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자는 현도(顯道), 호는 명촌(明村)이다. 만갑(萬甲)의 외손자이자 목사(牧使) 성두(星斗)의 아들이며 윤선거(尹宣擧)의 문인이다.

송준길(宋浚吉)의 천거를 받아 희릉참봉(禧陵參奉) ·동몽교관(童蒙敎官) ·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683년(숙종 9) 평강현감을 잠시 지내다가 사직하였다. 1685년 공조좌랑(工曹佐郞) ·충청도도사(忠淸道都事) ·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 ·삭령군수(朔寧郡守) 등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모두 사퇴하였다. 

1687년 스승 윤선거의 누명을 벗기려고 상소하다가 영변(寧邊)에 유배된 후 이듬해 풀려났다. 1689년 기사환국 때 자형 김수항(金壽恒), 매제 이사명(李師命)이 극형을 당하자 천리길을 달려가서 상을 치르고 돌아오니 모두들 의협심에 감탄하였다. 1706년 처음으로 사헌부장령(掌令)을 지냈다. 문집에 《명촌잡록(明村雜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