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철신

권철신

[ 權哲身 ]

요약 조선 후기의 성호학파의 학자였으며 천주교 신자였다. 1777년 경기도 양주에서 정약전·정약용 등의 남인의 실학자들과 함께 서학교리연구회(西學敎理硏究會)를 열면서부터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하였고 세례명은 암브로시오이다.
녹암권철신묘

녹암권철신묘

출생-사망 1736 ~ 1801
본관 안동
녹암
별칭 세례명 암브로시오
활동분야 종교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녹암(鹿庵), 세례명은 암브로시오다. 고려말 권근(權近)의 후손이며 권흠(權歆)이 증손이다. 증조부인 권흠은 숙종 때 대사성에 올랐으나 갑술옥사로 인해 관직을 잃고 낙향하여 양근 땅에서 살았다. 그의 부친은 권암이다. 집안은 기호 남인(畿湖南人)에 속하였고 남인 집안과 혼인관계를 맺었다. 그의 셋째 아우인 권일신(權日新)이 남안 안정복의 딸과 혼인하였다. 권철신은 부친에게서 학문을 익혔고 그가 24세 때 성호 이익(李瀷)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그는 기호 남인계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점차 성호학파의 거유가 되었다. 그의 학문 형성에 영향을 준 인물로는 이병휴, 안정복, 윤동규, 홍유한 등이 있지만 특히 이병휴의 영향이 컸다. 이병휴가 사망하고 그의 문하에는 홍낙민,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이윤하, 이벽, 윤유일 등이 제자가 되었다. 권철신의 학문은 현실 사회와 경제적 개혁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성향으로 처음 천주교를 접하면서 새로운 학문 즉 서학으로 이해했으나 점차 종교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승훈(李承薰)에 의해 천주교에 입교(入敎)하였고, 이벽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777년(정조 1)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정약전(丁若銓) ·정약용(丁若鏞) ·이벽(李蘗) 등의 남인(南人) 실학자(實學者)들과 함께 서학교리연구회(西學敎理硏究會)를 열면서부터 본격적인 서학의 탐구와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고 토론과 강학과 신앙 활동은 경기도 여주 주어사(走魚寺)에서 이루어졌다. 권철신은 천주교 신자 였지만 드러나게 신앙 활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그의 동생인 권일신은 신앙 생활에 열중하였고 신해박해 때 체포되어 귀양을 가는 중에 길에서 사망하였고, 그의 양아들인 권상문도 천주교로 인해 체포되었다. 그는 천주교를 전파한 주동적인 인물로 거론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제자들이 대부분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정약종 ·이가환(李家煥) ·이승훈 및 중국신부(神父) 주문모(周文謨) 등이 체포되었고 권철신도 그들을 천주교로 인도했다는 죄목으로 양근에서 체포되었다. 국문(鞠問)을 받을때 그는 시종일관 천주교를 배교(背敎)하지 않았다. 1801년 (순조1년) 4월 4일 국문을 받으면서 매를 많이 맞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