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교태전

경복궁 교태전

[ Gyeongbokgung Gyotaejeon , 景福宮 交泰殿 ]

요약 경복궁의 내전으로 왕비의 침전(寢殿)으로 사용되었던 전각.
경복궁 교태전

경복궁 교태전

국가 한국
소재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시대 조선시대
건립자 조선 세종
건축양식 익공계 목조건축
규모 정면 9칸, 측면 4칸
별칭 중전, 중궁

경복궁 강녕전 뒤편에 위치한 왕비의 침전(寢殿)으로, 왕비가 일상을 보내던 공간이다. 전각의 명칭인 '교태(交泰)'는 《주역(周易)》의 64괘 중 11괘인 '태괘(泰卦)'의 '천지교태(天地交泰)'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판의 글씨는 완림군 이재원(李載元,1831 ~ 1891)이 썼다. 

역사

세종대에 지어진 전각으로, 조선 초기에는 왕비의 침전이 아닌 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의하고 연회를 베푸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553년(명종 8) 경복궁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듬해에 중건되었고,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과 함께 완전히 소실되었다. 1867년(고종 4)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교태전도 새로 지어졌고, 이때부터 교태전이 왕비의 침전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876년(고종 13) 화재로 다시 소실되었으나, 1888년(고종 25)에 다시 복원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의 내전을 복구하기 위해 교태전을 해체하여 창덕궁 대조전의 부재로 사용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 경복궁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역사바로잡기의 일환으로 1996년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훼손된 경복궁의 전각들을 복원하였다. 경복궁 1차 복원 사업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1년 동안 진행되었는데, 교태전 및 침전 권역 복원은 1995년에 완공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구조 및 형태

정면 9칸, 측면 4칸 규모의 건축물로, 일정한 길이로 가공한 장대석을 쌓아 기단을 만들었다. 방형의 주춧돌 위에 사각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이익공 형식의 공포를 올렸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용마루는 없으며, 박공마루, 추녀마루에는 회반죽을 발라 양성바름을 하였고, 용두와 잡상 등을 설치하여 지붕 위를 장식하였다. 기단의 양 끝에는 작은 초록색 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문 안에는 아궁이가 위치한다. 교태전의 내부는 중앙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이 놓여있고,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정면 2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참조항목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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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동영상

진짜 강녕전과 교태전은 창덕궁에 있다고?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