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경희궁

[ Gyeonghuigung Palace , 慶熙宮 ]

요약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2가에 있는 조선의 궁궐.
경희궁

경희궁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에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원래는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定遠君: 훗날 원종)의 잠저(潛邸: 임금이 즉위하기 전에 거주하던 사저)였으나, 이곳에 왕기(王氣)가 서렸다고 하여 광해군이 이 부지를 몰수하고 새 궁궐을 지었다. 원래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영조가 1760년(영조 36)에 궁궐 이름인 '경덕(慶德)'이 정원군의 시호(諡號)인 '경덕(敬德)'과 음이 같다고 하여 '경희궁'으로 고쳤다.

경희궁의 창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景福宮),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등 한양 내 모든 궁궐이 소실되었다. 광해군 때에 창덕궁과 창경궁의 재건이 완료되었으나, 풍수설을 신봉하던 광해군은 기존의 창덕궁이 풍수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창덕궁에 거처하기를 꺼려하였고, 이에 1617년부터 1623년까지 인왕산(仁王山)을 주산(主山)으로 하는 인경궁(仁慶宮)과 자수궁(慈壽宮) 그리고 경덕궁을 추가로 건립하였다. 경덕궁의 자리는 원래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원종)의 저택이 있었으나, 이곳에 왕기가 흐른다 하여 광해군은 이 부지를 몰수하고 새 궁궐을 지었다.

경희궁 창건 이후

1623년과 1624년 인조반정이괄의 난으로 인해 창덕궁과 창경궁이 전소되자, 인조는 창덕궁과 창경궁이 복구될 때까지 경덕궁을 임시 정궁으로 사용하였고, 이후에도 경덕궁은 조선 후기 양궐 체제하의 이궁(離宮)으로써 오랜 시간 사용되었다. 조선의 제20대 왕 경종(景宗), 제22대왕 정조(正祖), 제24대왕 헌종(憲宗) 등이 경희궁 숭정전의 정문인 숭정문에서 즉위하였고, 영조는 재위 기간의 상당한 시간을 경덕궁에서 보냈다. 1760년(영조 36)에는 궁궐 이름인 '경덕(慶德)'이 정원군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음이 같다고 하여 '경희궁'으로 고쳤 불렀다. 

1829년(순조 29)에는 대화재가 일어나 경희궁의 주요 건물인 회상전(會祥殿), 융복전(隆福殿) 등이 소실되었으나, 이듬해 서궐영건도감(西闕營建都監)을 설치하여 소실된 건물을 재건하였다.

경복궁의 중건과 경희궁의 훼손

고종 때에는 경복궁의 중건에 필요한 자재를 충당하기 위해 경희궁의 전각을 헐어 경복궁 재건에 이용하였다. 그 결과 경희궁의 대부분이 전각이 훼철되었고, 숭정전, 회상전, 흥정당(興政堂), 흥화문(興化門), 황학정(黃鶴亭) 등 몇 몇의 전각만이 남게 되었다. 1897년 경운궁(오늘날 덕수궁)이 대한제국의 정궁이 되면서, 경운궁 근처에 위치했던 경희궁은 국가의 주요 행사를 치르거나 군사 훈련을 하는 장소 등으로 활용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경운궁과 경희궁을 잇는 육교 형태의 운교(雲橋)가 설치되었고, 경희궁의 정전이었던 숭정전은 문과 벽을 제거하여 장대(將臺: 장수가 올라서서 지위·명령을 하던 건물)로 개조되었다. 

일제강점기와 경희궁의 훼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남아있던 경희궁의 전각들도 훼손되었다. 1910년 경희궁 터에 경성중학교가 들어섰고, 회상전, 흥정당 등의 경희궁의 전각들은 경성중학교의 건물로 사용되었다. 1926년과 1928년에는 숭정전과 회상전, 흥정당이 조계사와 광운사에 매각되어 법당으로 사용되었다. 조계사는 오늘날 필동 일대에 있었던 일본식 사찰로 오늘날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조계사와는 다른 곳이며, 광운사는 용산 지역에 있었던 일본식 사찰이다. 회상정과 흥정당은 이후 소실되었으나, 숭정전은 정각원(正覺院)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날까지 동국대학교의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1974년 1월 15일 동국대학교 정각원은 경희궁 숭정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흥화문은 1932년에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인 박문사(博文寺)의 정문으로 쓰이다가, 해방 이후에는 이 자리에 영빈관(迎賓館),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영빈관과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황학정은 1922년 일제에 의해 사직단(社稷壇)으로 옮겨져, 현재는 국궁 전시·체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1932년 경성측후소(현 서울 기상관측소)가 경희궁의 북서쪽에 설립되었고, 1940년대에는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의 폭격에 대비하기 위한 일본군의 방공호가 숭정전 동쪽에 설치되었다.

경희궁 복원 사업

경희궁지에 있었던 경성중학교는 광복 이후 1946년에 서울중·고등학교로 다시 개교하였다. 1969년 중학교 입시 폐지가 시행된 이후 서울중학교는 폐교하였고, 서울고등학교는 1980년 정부의 강남개발정책에 따라 강남구 서초구로 이전하게 된다. 현대건설이 서울고등학교 부지를 매입하여 사옥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서울특별시가 이 부지를 매입하였고, 1980년 9월 16일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경희궁 터 발굴 조사 및 복원 사업이 실시하였고, 그 결과 현재까지 경희궁 숭정전, 경희궁 자정전, 경희궁 태령전 등 경희궁의 일부 전각을 복원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희궁 숭전전의 경우 동국대학교의 정각원 건물을 다시 경희궁 터로 옮겨오려 했으나, 건물이 노후되고 변형도 심해 새로 건물 지어 복원하였고,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던 흥화문은 본래의 자리로 이전하려 하였으나, 그 자리에 구세군회관이 들어와 있어 원래의 위치에서 230m 떨어진 자리에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