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조가 주몽의 아들인 이유

온조가 주몽의 아들인 이유

작성일 2024.04.24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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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온조가 왜 고구려 주몽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유와 함께 부탁드리겠습니다 ㅠㅠ 최대한 길게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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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아들 아닙니다.

소서노의 아들이죠.

둘이 부부 이긴 했지만.... 자식을 낳지는 않았어요.

둘 다 자식 딸린 호래비와 과부가 만나 재혼을 한 관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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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온조가 왜 고구려 주몽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유와 함께 부탁드리겠습니다 ㅠㅠ 최대한 길게 부탁드려요

ㅡ 본래 아닙니다~

ㅡ 주몽의 친자식은 유리며~ 훗날 유리왕이 친자입니다~

ㅡ 소서노+행수+사이에서 태어난~ 비루(장남)+온조(차남)~

ㅡ 남편이였던 행수는 죽고~ 장남인 비루도 죽고~ 차남인 온조가~

ㅡ 지역제장 10명으로 10제 결성~ 이때는 나라 아니고 단체임~

ㅡ 후대 제장늘려 100제로 바꾸는데~ 이때부터 나라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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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백제후손이 늘 말하지만

온조는 가공인물입니다. 김부식이가 부여와 백제의 연결고리를 끊고 백제를 구려의 일개 찌끄러기로 만들려는 수작으로 만든 창작물이라는 겁니다.

중국정사기록들에는 하나같이 백제시조를 3세기의 인물인 울구태(고이왕)로 규정했어요.참고로 신라는 4세기에 건국되고요.

ㅡㅡㅡ

1. 부여는 세 차례에 걸쳐 한반도로 남하합니다. 제1차 남하는 고구려의 건국기를 즈음하여 부여 일부의 소수세력이 남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이 한강유역에 정착한 소국 백제(伯濟)로 추정됩니다.

제2차 남하는 고이왕 계열로 3세기 초·중엽에 요동지역의 부여는 극심한 국가적 위기에 봉착하여 그 주요 세력들이 남하하여 반도부여의 기초를 세우게 됩니다. 이 때의 주체세력이 부여왕 울구태이고 이 분이 고이왕으로 추정되며 바로 백제의 건국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3차 남하는 4세기 초로 이 때는 동호계의 선비가 강성해지면서 만주에서 부여가 큰 핍박을 받게 되자 근초고왕(재위 : 346~375) 계열이 한반도로 대거 남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근초고왕 시기에는 만주에서 백제의 활동이 사라지고 백제는 한반도(전라도, 낙동강, 황해도)에서 왕성한 정복활동을 전개합니다.

2. (부여시조)동명의 후손 가운데 구태(仇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인정이 많고, 어질고 믿음이 있었다. 구태가 '대방'의 옛 땅(요동)에 나라를 세우고, 한나라 요동태수 '공손도'의 딸과 결혼하여 아내로 삼았고 이로 이 나라는 동이(東夷) 가운데서도 강국(强國)이 되었다. 처음 100 가(家)의 집으로 나라를 시작하여 '백제'라고 했다 한다.-북사(北史)"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仇台)가 있으니,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처음으로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한나라의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는 딸을 시집보냈는데, 마침내 동이(東夷)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여 가[百]가 건너 왔다[濟]고 해서 백제(百濟)라고 불렀다-수서(隋書)

"부여왕 울구태는 다시 요동군에 복속되었고 당시 구려(고구려)와 선비가 강성했는데 공손도는 부여가 두 적 가운데 위치하므로 종실(宗室)의 딸(=소서노)을 울구태에게 시집보냈다-(『三國志』「魏書」東夷傳)."

3. 여러 사서들은 백제를 건국한 지역을 대방(帶方) 지역 즉 울구태의 남부여(요동부여)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북사(北史)』에는 "백제는 처음으로 그 나라를 대방의 옛 땅에 세웠다"23)고 하고 『수서(隋書)』에도 이 기록은 그대로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방은 황해도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요동 만주 지역을 의미합니다.

백제의 시조가 요동·만주 땅의 부여왕 울구태라는 것은 백제의 건국이 한반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동안 반도의 사학계가 한반도에서 온조·비류가 백제를 건국해서 남북조의 위기 상황에서 서로 연횡 합종하여 강력한 백제로 거듭났다는 논리는 철저히 사실을 무시하고 신화적인 요소만으로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다시 말해서 고주몽의 아들들이 내려와 한강유역에 백제를 건국하여 대국 백제를 건설했다는 것은 확실히 신화라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요동 만주 지역에서 부여왕 울구태가 백제를 건국했다는 것은 부여왕이 요동 만주 지역에서 보다 강력한 새로운 국가를 준비했다가 국가적 위기를 맞아 한강으로 이동해왔음을 보여주는 주요한 단서가 됩니다.

결국 만주의 부여계가 망국적 상황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해온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망국적 상황이란 위나라에 의한 요동정벌을 말합니다. 만주 부여계의 한반도에로의 이동은 한강유역에 선착한 부여계와 무관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백제의 시조에 대해서도 울구태(蔚仇台)라고 새롭게 볼 필요도 없이 동명(東明)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백제는 존재하지 않았고 부여계인데다 울구태는 부여왕이므로 '부여의 시조 = 백제의 시조'이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한 가지는 백제의 모든 왕들이 하나같이 시조 동명왕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설령 중시조가 있다고 해도, 그 중시조는 시조에 제사를 지낼 것이 아닙니까? 중시조에 대한 제사는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그 후손들이 지내는 제사지요). 즉 부여의 시조와 백제의 시조가 완전히 같지요. 다만 그 중시조(中始祖)는 울구태이며 반도에 일찍 남하했던 무리들이 온조와 비류라는 것이고 이들은 후일 요동과 만주지역의 부여세력과 연합하여 부여계의 국가로 다시 태어나는데 그 이름이 백제였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만주나 요동 지역으로부터 이주하는 사람들과 토착민 사이의 관계를 원활히 하고 덕업(德業 : 왕업)을 일신한다는 의미에서 백제(伯濟)라는 말을 사용하되 좀 변경된 이름인 백제(百濟)를 사용한 듯합니다.

그러나 이 국호도 6세기에 들어서 남부여(538)로 다시 바뀌어 원래로 돌아갑니다. 결국 백제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아마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까지 많아도 1세기 남짓할 것입니다. 참고로 만주지역의 부여가 완전히 역사의 무대에 사라진 것은 494년입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부여의 정통은 반도로 이전되게 됩니다.

부여계가 백제라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민족의 원래 이름으로 돌아가자는 성왕의 부여 중흥의 논리는 결국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적 신념에 의한 것입니다. 성왕은 백제를 버리고 부여를 선택했으며 그 부여를 강화하기 위해 불교를 결합시킵니다. 이로써 쥬신의 역사상 쥬신의 뿌리를 유지하면서 가장 세련된 국가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문화국가가 탄생하게 된 것이고 이것은 이내 열도로 연장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백제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도 없고 반도부여(백제)라고 부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요동만주의 부여계가 한강으로 이주하여 한강유역에 이미 정착했던 약소한 온조계를 정복하는 것 역시 평화적인 방식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사람의 몸에서 빼낸 혈액도 후일 수혈을 받게되면 몸이 이를 거부하는 현상이 생기듯이 '권력과 생존'이라는 문제는 형제라고 예외일 수만은 없습니다. 다만 강력하고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채 남하하였기 때문에 이 과정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요동의 부여계는 세련되고 체계적인 한족(漢族)의 행정원리나 사회구성의 운영원리를 깊이 터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강 유역의 소수 부여계를 제압하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지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삼국지』「공손도전」에 따르면 공손씨와 부여계는 서로 연합하여 중원 정벌을 도모하기도 할 정도로 포부가 큰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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