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조와 비류가 우태의 아들이 맞나요?

온조와 비류가 우태의 아들이 맞나요?

작성일 2007.02.18댓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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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동안 온조와 비류는 주몽의 아들인 것으로 알았는데

드라마에서는 우태의 아들인 것으로 나오더라구요...

이게 사실인가요? 아니면 드라마 작가의 역사왜곡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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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역사책에 주몽의 아들로 나온다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딱 부러지게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되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 본기에 전혀 다른 두 가지 얘기가 실려 있거든요. 이에 따라, 비류, 온조의 세계(世系)는 (1)둘 다 주몽 아들 (2)둘 다 우태(優台) 아들 (3)온조만 주몽 아들, 이렇게 3가지 가능성이 나오게 되겠습니다. 하나 하나 검토해 봅시다.

 

(1)둘 다 주몽 아들.

 

백제 본기의 시작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百濟始祖溫祚王, 其父鄒牟, 或云朱蒙.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아버지는 추모인데, 혹은 주몽이라고도 한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비류와 온조는 둘 다 빼도박도 못 할 주몽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주몽이 죽은 해(B.C 19)에 유리가 부여에서 도망쳐 와서 태자가 됩니다. 계속해서 백제 본기를 보면,

 

"沸流溫祚恐爲太子所不容, 遂與烏干馬黎等十臣, 南行.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드디어 오간과 마려등 열 명의 신하를 데리고 남쪽으로 갔다.)"

 

자, 여기서 구구한 추측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비류, 온조의 어머니는 백제 본기에는 '졸본부여왕의 딸' 이라고 되어 있어, 주몽이 나라를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유리는 단지 주몽의 친아들이라는 것 뿐, 방금 부여에서 도망쳐 왔으므로 아무런 기반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주몽이 그를 태자로 봉했다는 것은, 바로 그 '주몽의 친아들' 이라는 사실 자체가 비류와 온조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확고 부동의 조건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의심을 풀어주는 기록은 백제 본기에서 바로 다음 문단에 나옵니다.

 

 

(2)둘 다 우태 아들

 

"一云, 始祖沸流王, 其父優台, 北扶餘王解扶婁庶孫. 其母召西奴, 卒本人延陀勃之女, 如始歸于優台, 生子二人, 長曰沸流, 次曰溫祚. (또 어떤 곳에서는 시조가 비류왕이라고 하는데, 그 아버지는 우태로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이다. 그 어머니는 소서노로 졸본 사람 연타발의 딸인데 처음에 우태에게 가서 두 아들을 낳았으니 큰 아들이 비류이고 작은 아들은 온조이다.)"

 

자, TV 드라마 "주몽" 은 바로 이 기록을 보고 설정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태가 호위무사로 나오는 점은 작가가 지어낸 것이지만요.

 

계속된 기록을 보면, 소서노는 우태가 죽고 나서 주몽과 결혼합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 처럼, 소서노는 주몽을 도와 고구려 건국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其於開其創業 頗有內助, 故朱蒙寵接之特厚. 待沸流等如己子. (그 창업하는데 크게 내조가 있었으므로, 주몽은 (소서노를)특별히 총애하고 후대하였으며 비류 등도 자기 아들처럼 대했다.)" 

 

그런데 '아들 같은 것' 뿐이지, '진짜 아들' 은 아니지요. 결국 '진짜 아들' 인 유리가 오자 주몽은 그를 태자로 삼아 버립니다. 계속해서 백제 본기는, 유리가 태자가 된 직후 비류가 온조에게 하는 말이 나옵니다.

 

"始大王避扶餘之亂, 逃歸至此, 我母氏傾家財助成邦業. 其勸勞多矣.大王厭世, 國家屬於孺留. 吾等徒在此, 鬱鬱始(月+尤)폐(고생하다, 한자없음), 不如奉母氏南遊卜地, 別立國都.

(처음에 대왕이 부여의 난리를 피해서 도망하여 이곳에 이르렀을때, 우리 어머니는 집안의 재산을 기울여 나라를 세우는 일을 도와 큰 공로를 세웠다. 그런데 대왕은 우리에게 왕위를 물려주길 싫어해서, 나라가 유리에게 전해지고 말았구나. 우리들은 이대로 여기 머물러서 슬퍼하고 근심하느니,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좋은 땅에 따로 나라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

 

의붓아버지인 주몽에 대한 섭섭함과 울분, 그리고 야심이 생동감있게 드러나고 있지요. 물론 생동감 있다고 해서 꼭 사실이라는 법은 없지만...

 

아무튼 이 기록은, 어째서 비류와 온조 대신 유리가 태자가 되었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고구려 건국에 많은 자금을 댄 소서노라는 여인이 있다는 것도 전해주고 있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백제의 왕계는 원래 온조왕-다루왕-기루왕- 이렇게 이어지게 되는데, 이 기록대로라면 첫번째 왕은 비류왕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백제는 상당히 후대까지 동명묘(東明廟)에 제사를 지내는데, 여기서의 동명이 주몽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친아버지도 아닌 주몽에게 왜 제사를 지내고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3)온조만 주몽 아들

 

우선 상당히 많은 분들이 요즘도 이렇게 알고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비류와 온조를 나누어서 비류는 우태의 아들로, 온조는 주몽의 아들로 보는 시각은 원래 어떤 사료에 나오는 말이 아니라, 이병도의 1976년도 논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논문은 나중에 "이병도가 삼국사기를 부정했다." 는 시비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데요, 여기에서 이병도는 백제의 시조를 온조왕이 아니라 8대 고이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삼국사기와는 별도로, 북사(北史)백제열전에 보면 백제의 시조는 구태(仇台)라는 인물인 것으로 나오는데, 구태와 고이(古爾)의 발음이 비슷하다는것이 이유가 되겠습니다.

 

원래 이 학설 자체는, 일본 식민사관에서 백제 시조를 근초고왕(13대)으로 보던 것을 부정하기 위해 나온 것이기는 한데, 그 의도야 어찌되었건 이병도의 이때 연구 방법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요즘 재야(在野)라고 하는 사람들에 비해 별로 나을 것도 없어서, 대충 한자를 읽어보고 발음이 비슷한 것 같으니까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 혐의가 짙습니다.

 

아무튼 이병도는 비류와 온조를 둘 다 일종의 전설상의 인물로 보았는데, 그 시초는 "부여계(비류)와 고구려계(온조)의 이주민들이 각각 시조 전설을 가지고 있다가, 백제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비류가 형이고 온조가 동생이었다는 식으로 합쳐진 것" 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죠. 아마 이병도가 한창 국사학계에서 영향력을 행사 할 때 배운 분들이 고등학교 교단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아직 이런 얘기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만, 백제 시조왕을 전설상의 인물로 취급하고 기록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류=구태=백제시조왕설을 지지하기 때문에 (2)둘 다 우태 아들 항목을 좀 자세하게 썼습니다만, 독자적인 판단에 방해가 되실 것 같아서 비류=구태설의 증거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쓰지 않았습니다. 원하던 정보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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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알고있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드라마 작가의 역사왜곡도 아닙니다. 또한 왜곡이라고는 할수없죠. 왜곡은 무슨 특정한 사유가 있어서 일부러 역사를 조작하는것인데 단지 내용이 다르다고만 해서 왜곡이라고 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일단은 비류와 온조의 아버지를 알기 위해서는 『삼국사기』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사가 『삼국사기』이니 일단은 그것을 토대로 역사공부를 해야겟죠.

 

일단은 『삼국사기』「고구려본기」에 본다면 주몽이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백제본기」를 찾아본다면 「백제본기」맨 처음 기록을 본다면 시조 온조왕의 아버지는 이름이 추모이다. 라고 기록되어있지요. 이렇게 본다면 온조왕의 아버지는 바로 추모가 됩니다.

 

근대 그다음 기록이 바로 비류백제설인데 이때는 비류와 온조의 아버지가 우태이고 어머니가 소서노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이제 문제점이 많은부분입니다. 즉 우리가 흔히알고있는것은 주몽이 소서노와 결혼하여 낳은 아이가 비류와 온조라고 많이들 알고있지요.

 

근대 온조가 추모의 아들이라면 소서노는 전혀 연관이 없게 되는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소서노를 추가 하자면 비류와 온조의 아버지는 바로 우태가 된다는점이지요.

 

또한 소서노는 「고구려본기」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근대 중국사서들을 보자면 비류와 온조가 추모의 아들이라는 기록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수가 없습니다. 즉 『삼국사기』의 내용이 어찌보면 틀렸다고 볼수도 있지요. 즉 중국사서에 대부분이 백제가 부여로 부터 나왔다는 기록과 마한에서 나왔다는 기록이 서로 대립을 합니다.

 

또한 백제의 초기 무덤양식이 고구려가 아닌 부여와 같은 점에서 어찌보면 백제가 고구려가 아닌 부여에서 본디 나왔음을 말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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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확실치 않습니다.

 

김부식의 , 일연의 의 기록에 의하면 비류와 온조가

 

주몽의 아들이라는 설과 우태의 아들 또는 비류는 우태의 아들이고 온조는 주몽의

 

아들이라는 총 세가지를 모두 암시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비류와 온조가 주몽의 아들들 이라는 설의 경우 졸본부여왕의 둘째딸로,

 

그리고 비류와 온조가 우태의 아들들일 경우 소서노라는 것의 차이가 있습니다.

 

결론은 백제를 형성하는 비류와 온조가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은 분명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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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분 말씀 대로 세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 둘다 고주몽과 소서노 사이에서 나왔다.

둘째 비류는 우태와 소서노 온조는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서 나왔다.

셋째 둘다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나왔다......

 

아직 확실히 이렀다 하긴 어렵습니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도 헷갈려 했고 삼국유사 저자 일연도 헷갈려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열했더라고요.

 

 여기서 가장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둘째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우태라는 사람이 비류를 낳고 고주몽이 온조를 낳고요.

드라마 주몽을 통해서 역사를 보실려는 자세를 갖는 것은 좋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상당히 가치가 떨어지는 역사판타지 입니다. 주몽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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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처음에 우태에게 시집을 가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째가 비류이고 둘째가 온조였다. 이 기록으로 보면 비류온조우태와 소서노의 자식이라 유추할 수 있겠죠....

소서노의 아들 - 비류, 온조?

... 비류온조가 주몽의 친아들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소서노는 이미 우태와 한 번 결혼을 했던 몸으로 아마....비류온조우태의 자식이 아닌가 합니다.

비류온조의아버지

... 혼인을하였는데 비류온조가 어느분은 우태의 아들이라는분도있고 주몽의아들이라하시는분도있는데 정확히 누군지는 알수없을까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2가지 설이...

온조와 비류는 누구의 자식인가요?

... 왜 백과사전에는 주몽은 아이 둘을 밴 과부 소서노와 혼인하였다 그리고 또 아들을... 소서노는 졸본사람 연타발의 딸로, 우태와 처음 혼인하여 비류온조를 낳게 됩니다....

소서노의 아들 비류온조에 관해서...

저기여 소서노의 아들이 비류온조가 있자나요.. 둘중 우태의 자식은 누구인가요? 둘다 우태의 자식인가여???? 그리고 지금 부영이 임소영이 빠지고 예소야라고 그 송지효가...

비류온조는 친형제가 아니다 사실맞죠?

비류우태의 아들이온조는 추모의 아들이 맞는거같은데? 말이 다 다른데 하나는 둘다 추모의 자식이라는 설이 있고 두번째는 둘다 우태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몽-온조와비류

... 이미 우태라는 남편이 있었죠 그러나 우태는 전쟁터에서 사망하고, 비류온조우태의 아들들이고 소서노가 주몽과 재혼한 후 왕자가 되나, 본처의 아들,그것도 주몽...

주몽의 아들 비류온조에 대해서

... 서손인 우태와 졸본 사람 연타발이 딸인 소서노가 결혼해 형제를 낳았다. 첫째 아들비류이고 둘째 아들온조였다."라고 나와있지만 온조설화에는 이들 형제의 부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