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세르비아

다른 표기 언어 Serbia 동의어 세르비아 공화국, Republic of Serbia
요약 테이블
위치 유럽 발칸반도 서부
인구 7,097,028명 (2024년 추계)
수도 베오그라드
면적 77,498㎢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세르비아 공화국 (Republic of Serbia)
기후 대륙성기후, 지중해성기후
민족 구성 세르비아인(66%), 알바니아인(17%), 헝가리인
언어 세르비아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단원제
종교 세르비아정교(85%), 로마카톨릭(6%), 이슬람교(3%)
화폐 세르비아 디나르 (Dinar)
대륙 유럽
국가번호 381
GDP USD 48,279,000,000
인구밀도 81명/㎢
전압 220V/50Hz
도메인 .rs

요약 발칸 반도의 국가. 세르비아는 북서쪽으로는 크로아티아, 서쪽으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남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알바니아, 남쪽으로는 마케도니아, 동쪽으로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북쪽으로는 헝가리와 경계를 이루며, 수도는 베오그라드다. 화폐는 세르비아 디나르이며, 주요 수출 산업은 광업과 제조업이다. 국민은 세르비아아인, 알바니아인, 헝가리인으로 구성되며, 종교는 주로 세르비아정교, 로마카톨릭교, 이슬람교이다.

세르비아 국기
세르비아 국기

세르비아는 북서쪽으로는 크로아티아, 서쪽으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남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와 알바니아, 남쪽으로는 마케도니아, 동쪽으로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북쪽으로는 헝가리와 경계를 이룬다. 이전에 자치주였던 보이보디나와 코소보가 각각 북쪽과 남쪽을 차지하고 있다. 수도는 베오그라드이다.

중·남부 지역은 산지로, 서쪽에는 디나르알프스, 남쪽에는 샤르 산맥과 북알바니아 알프스(프로클레티예), 동쪽에는 발칸 산맥과 카르파티아 산맥이 있다. 이 지역에 있는 많은 봉우리들이 해발 1,800m를 넘는다. 세르비아의 가장 높은 곳은 남부의 코소보 지역을 포함하는 코소보 분지와 메토히야 분지의 산간지대이다.

중부에는 슈마디야('수목으로 뒤덮인 지역'이라는 뜻)라는 구릉지대가 자리잡고 있으며, 도나우 강이 2개의 중요한 지류인 티소·사바 강과 합류하는 보이보디나 지역에는 낮은 평원이 있다. 도나우 강은 헝가리로부터 보이보디나로 들어가 남동쪽으로 흐르며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의 경계 중 일부를 이룬다. 중·남부 세르비아에는 북쪽으로 모라바 강이 흐르는데 베오그라드 동쪽의 도나우 강과 만난다.

세르비아의 기후는 대륙성으로, 춥고 건조한 겨울과 따뜻하고 습한 여름을 보인다. 보이보디나의 7월 평균기온은 22℃이며, 1월 평균기온은 영하 2℃에서 0℃에 이른다. 강수량은 560∼1,900㎜ 정도로 고도와 방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세르비아는 주변의 나라들과 구별되는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세르비아어는 발음과 단어가 구별되기는 하지만 크로아티아어, 보스니아어, 몬테네그로어와 본질적으로 같은 언어이다. 언어학적으로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라고 일컬어지는 이 언어는 각 나라에 따라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보스니아어 또는 몬테네그로어라고 불려진다.

세르비아인은 라틴문자 대신 키릴문자를 사용하고 동방정교회를 믿는다. 크로아티아인은 로마 가톨릭교를, 보스니아인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세르비아인의 약 1/4이 세르비아 이외 지역에 살고 있으며, 대다수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에 거주한다. 코소보와 보이보디나 지역을 제외한 세르비아 본토에서는 세르비아인이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한다.

1990년대 많은 세르비아인이 코소보 지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알바니아인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알바니아인의 높은 출생률과 민족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코소보를 세르비아의 일부분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세르비아 측과 알바니아인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다.

북·중부 세르비아와 보이보디나 지역이 세르비아에서 경제가 가장 발달한 지역인 반면 코소보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한다. 보이보디나의 비옥한 평원에서 국내 곡물·담배·사탕무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중부 구릉지대에서는 낙농제품·과일 등을 생산하며 가축을 기른다. 하지만 광업과 제조업이 세르비아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금속제품·전자기기·기계류·직물·식료품 등이 생산되고 있다. 코소보에는 납과 아연이, 중부 세르비아와 코소보에는 석탄이 매장되어 있으며 동부 세르비아에는 구리가, 보이보디나에는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 대부분의 철도망은 보이보디나에 있다.

남(南)슬라브족에 속하는 세르비아인들은 7세기에 발칸 반도에 도달했다. 〈프랑크 연감 Frankish Annals〉(822)에 처음 이름이 오른 세르비아라는 말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루사티아(지금의 헝가리)에 살던 슬라브족들이 자신들을 세르비아와 비슷하게 소르브라고 불렀다. 처음에 이들은 통일국가를 형성하는 대신 같은 씨족들끼리 집단을 형성해서 정치·군사적 지도자격인 '주판'이 통치하는 지역에 거주했다. '주판' 무티미르는 879년경에 정교회를 받아들였다. 세르비아는 1331∼55년에 스테판 두샨의 통치하에서 번영을 누렸다.

한편 스테판 두샨은 1346년 세르비아인과 그리스인들의 차르(황제)라는 칭호를 받고 알바니아·에피로스·아이톨리아·테살리아를 다스렸다. 1355년 그가 죽은 후 차르 우로슈(1355∼71 재위)하에서 세르비아는 쇠퇴해갔다. 1389년 6월 28일(구력 6. 15) 세르비아는 코소보 전투에서 투르크에게 대참패를 당했으며 군주 라자르 흐레벨랴노비치가 생포되어 참수를 당했다. 이 전투에서 세르비아인들은 항복보다는 죽음을 택했는데 이것은 세르비아인들에게 민족의식의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1459년 이후 세르비아는 투르크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세르비아의 모든 영토는 술탄의 재산이 되었고 세르비아인들은 그 영토에 묶인 노예로 전락했다. 그들의 민족적 동질성은 1557년 페치를 중심으로 한 세르비아 총대주교구가 복구되고 나서야 비로소 회복되었다. 1716∼18년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은 파사로비츠 조약으로 끝났으며 그 결과 오스트리아는 바나트 지방, 베오그라드, 슈마디야라고 알려진 도나우 강과 사바 강 남부의 세르비아 인근 지역까지를 얻었다. 그러나 투르크의 국경지역은 1739년에 회복되었다.

세르비아의 독립운동은 카라게오르게(1804∼13)와 밀로슈 오브레노비치 1세(1828∼29)가 이끈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러시아-투르크 전쟁 전쟁(1828∼29) 이후 세르비아는 투르크의 속국이면서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 자치공국임을 국제적으로 승인받았다. 러시아-투르크 전쟁(1877∼78) 당시 세르비아는 러시아편에서 싸웠다. 1878년 7월 베를린 회의에서 세르비아의 독립을 승인했으며 몇 개의 작은 지역들이 추가되었다. 세르비아는 1882년 3월 6일 왕국임을 선포했다. 1908년 10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하자 세르비아는 발칸 동맹을 결성했다.

1912년 10월 세르비아·불가리아·몬테네그로·그리스는 함께 투르크에 선전포고를 했고, 그 결과 세르비아는 마케도니아 북부를 얻어 영토가 2배로 커졌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보스니아 출신의 세르비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 전쟁으로 인해 세르비아 인구의 23%가 희생되었다.

1918년 세르비아는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으로 구성된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 왕국은 1929년 유고슬라비아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다(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 1946년에 제정된 유고슬라비아 헌법에 따라 세르비아 연방공화국의 영토는 1918∼29년의 세르비아보다 작아졌으며 동시에 몬테네그로와 과거 세르비아 영토였던 마케도니아도 세르비아와는 별개의 연방공화국이 되었다. 그후 40년 동안 세르비아 공산주의자들이 유고슬라비아의 정치를 이끌어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계획경제제도와 세르비아 사회주의당의 주도적인 역할을 고수하려한 것이 결국 유고슬라비아의 해체를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유고슬라비아는 1980년대에 국내 경제가 악화되면서 해체되기 시작했다.

1991년 슬로베니아가 독립한 후, 위기감을 느낀 유고슬라비아 군대 내의 세르비아 군인들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들을 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동부와 북부에서 이슬람교도 및 크로아티아인을 몰아내는 데 가담했다. 결국 1992년 유고슬라비아는 해체되었고,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와 함께 신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을 구성했다. 그 후로도 그치지 않던 이 지역의 분쟁은 결국 1995년 데이턴 협정(Dayton Peace Agreement)으로 겨우 진정되었다.

세르비아에서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20세기 말 내내 권력을 장악했는데, 여기에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이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면서 1998~99년에, 싸움은 또 다른 국면으로 들어섰다. 이 지역의 폭력사태가 극한으로 치닫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공습으로 대응했고, 1999년 6월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2000년 후반 유고슬라비아는 정권이 교체되면서 국제연합(UN)에 재가입했다. 2003년, 몬테네그로 정부가 독립을 선포하겠다고 위협했지만 결국 두 나라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라는 이름으로 연방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연방을 유지하면서도 몬테네그로의 독립 요구는 계속되었다.

몬테네그로는 2006년 5월 21일 실시된 연방분리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독립 찬성표가 55.4%로 나와 EU가 정한 독립가결기준인 55%를 초과했다. 6월 3일 몬테네그로 의회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연방에서 분리독립을 결정한 국민투표 결과를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독립을 공식 선언했다.

몬테네그로가 연방에서 독립함으로써 세르비아·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마케도니아·슬로베니아 6개 공화국으로 구성됐던 옛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해체되었다.

지도
세르비아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한국은 1989년 12월 유고슬라비아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1991년부터 약 4년간 이어진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따라 주 유고슬라비아 한국대사관이 철수했으나 2002년 세르비아와의 대외관계가 회복되면서 주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연방 한국대사관을 다시 설치했고, 2004년 11월 세르비아도 주한국대사관을 다시 설치했다. 2009년 9월 대한민국-세르비아 수교 20주년을 기념, 대통령 특사가 세르비아를 방문했으며 2010년 6월에는 세르비아의 미르코 츠베트코비치 총리가 방한하여 양국 간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모색했다.

경제·통상

한국과 세르비아의 교역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으며 한국은 세르비아에서 옥수수와 같은 곡물을 수입하고 전자기기, 자동차와 같은 공산품을 주로 수출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세르비아 수출액은 1억 8,436만 달러, 수입액은 6,252만 달러이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한국과 세르비아는 2009년 6월 양국간 문화교류협정을 체결하여 교육과 문화분야의 협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베오그라드 국립대학교에 교양선택과정으로 한국어강의가 개설되었다. 2023년 기준 세르비아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145명이며, 2023년 기준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세르비아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71명이다.

참고문헌

  • ・ 국가통계포털
  • ・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