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테트

모테트

다른 표기 언어 mottete

요약 13세기 초 기존의 음악에 새로운 가사를 붙임으로써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라틴어 가사를 써 교회 예배용으로 만들었지만 이외의 각국어로도 작곡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세속가사를 덧붙이는 경우가 잦았고 리듬 패턴이 자유로워지고 다양해졌다. 14세기에는 역사적 주제 같은 진지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복잡한 리듬 패턴을 곡 전체에 걸쳐 반복하는 동질서 리듬 기법을 사용했다.
15세기 후반의 모테트는 대개 모든 성부를 노래로 불렀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종교적 내용을 지니되 예배의식 밖에서 가져온 진지한 가사로 된 곡을 지칭하게 되었다. 바로크시대가 끝난 뒤 중요성이 약화되었지만 18세기 후반의 모차르트, 19세기의 브람스, 20세기 디스틀러, 풀랑크에 의해 그 전통이 이어졌다.

모테트
모테트

주로 라틴어 가사로 된 종교합창곡이 많지만 세속곡 또는 순수합창곡이 아닌 독창자와 기악반주를 위한 곡일 수도 있으며, 라틴어 가사 이외의 각국어로도 작곡되었다.

모테트는 13세기초에 기존의 음악오르가눔(13세기 혹은 그 이전의 다성음악 양식으로, 테너 성부에 단성성가 선율을 놓고 그 위에 1~3개의 선율이 동시에 움직였음)에 새로운 가사, 즉 말(mot)을 붙임으로써 비롯되었다.

특히 가사를 붙인 곳은 오르가눔 중 디스탄투스 양식으로 된 클라우술라 부분의 가사 없는 상성부들이었다. 디스탄투스 양식으로 된 클라우술라는 오르가눔의 다른 부분과 달리 모든 성부들이 모두스 리듬이라 불리는 리듬 선법에 의해 일정하게 움직였다.

디스칸투스 양식에 의한 클라우술라는 위의 2~3성부에 각각 새롭게 가사가 붙음으로써 모테트가 되었다.

처음에는 대개 라틴어 가사에 의해 교회 예배용으로 만들었지만, 얼마 후 프랑스어-라틴어, 영어-라틴어 같이 성부의 가사가 각기 다른 언어로 된 모테트도 만들어졌고, 가사의 내용도 세속가사와 종교가사가 혼합되거나 아예 세속가사로만 되기도 했다. 특히 13세기말 프랑스에서는 세속가사를 덧붙이는 경우가 잦았고 심지어 단성성가로 되어야 할 테너 성부까지도 프랑스의 인기있는 세속 노래에서 가져올 때가 있었다.

리듬 패턴이 좀더 자유로워지고 다양해져서 모두스 리듬은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모테트는 또한 아래 성부를 기악으로 연주하여 가수의 상성부 노래에 대해 반주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무반주 합창곡에서 반주가 붙은 독창곡으로 변하게 되었다.

14세기에 와서 세속 모테트는, 예를 들어 역사적 주제 같은 진지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각종 종교, 세속 행사에 사용되었다. 종교 모테트와 세속 모테트는 흔히 동질서 리듬(isorhythm)이라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 기법은 복잡한 리듬 패턴을 곡 전체에 걸쳐 반복하는 기법으로, 이 리듬 패턴 단위는 종종 겹쳐졌지만 항상 선율반복 단위와 일치하지는 않았다(동질서 리듬).

15세기 후반부의 모테트는 대개 모든 성부를 노래로 불렀는데 대부분 모든 성부의 가사가 같았고, 대위법적 짜임새(독립된 선율들이 얽히는 다성음악적 짜임새)를 지녔다.

따라서 음절과 낱말들은 성부마다 달리 움직였고, 다만 화음에 기초한 대비 부분(화성적 짜임새로 된 부분)에서만 서로 일치되었다. 주로 단성성가에서 비롯된 테너 선율은 대부분 라틴어로 된 종교가사로 되어 있다. 단성성가를 정선율로 사용하던 관습은 16세기에 조금씩 쇠퇴했다. 16세기에는 종종 특정 종교 축일에 부르기 위해, 혹은 미사 중 신앙고백송(Credo)과 거룩송(Sanctus) 사이, 성무일도(Office) 중 만과(Vespers : 일몰시 저녁기도) 때 불렀고, 흔히 연관된 가사내용으로 된 단성성가에 기초해서 만들었다.

미사곡은 동일한 음악주제를 가지고 만듦으로써 전예배시간을 통틀어 음악적으로 통일성을 주었는데, 이러한 관습은 J. S. 바흐 등 후대 교회음악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테트가 단성성가의 단편에 기초하지 않을 경우에도 작곡가가 동일한 주제에 기초해서 모테트나 미사곡을 작곡할 수 있었다.

한편 16세기 미사곡은 기초로 사용된 모테트나 단성성가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예로 로마의 작곡가 프란체스코 소리아노의 〈미사 노스 아우템 글로리아리 Missa nos autem gloriari〉는 조반니 다 팔레스트리나의 모테트 〈노스 아우템 글로리아리 Nos autem gloriari〉를 기초로 만든 것이다. 모테트가 2개의 완결된 부분(악장)으로 되어 있을 경우, 대개 2번째 부분은 첫번째 부분의 마지막 악구 및 가사로 끝났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모테트는 종교적 내용을 지니되 예배의식 밖에서 가져온 진지한 가사로 된 곡을 지칭하게 되었다.

한편 16세기말에 조반니 가브리엘리 같은 베네치아 작곡가들은 모테트를 복합창과 이와 대비되는 악기군을 위한 곡으로 작곡했으며, 17~18세기에 독창과 반주악기를 위한 모테트는 바흐의 합창 모테트같이 좀더 큰 규모의 독창 및 반주 모테트로 변했다. 독일 루터교에서는 모테트를 코랄(chorale : 루터 개신교의 찬송가) 가사를 기초로 해서 만들었고 때로는 음악도 코랄에서 가져왔다. 영국에서 사용한 영어 가사에 의한 국교회 예배용 모테트는 특히 앤섬이라 불렀다.

앤섬은 합창곡(full anthem)일 수도 있고 독창(들)과 합창을 위한 곡(verse anthem)일 수도 있으며, 두 유형 모두 대체로 기악반주가 따랐다. 18세기 중엽 바로크시대가 끝난 뒤 모테트는 전보다 중요성을 덜 갖게 되었지만 계속해서 작곡되었다. 모테트는 18세기 후반에는 모차르트에 의해, 19세기에는 브람스에 의해, 20세기에는 독일의 후고 디스틀러와 프랑스의 프랑시스 풀랑크에 의해 그 전통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