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마케도니아

다른 표기 언어 Macedonia
요약 테이블
위치 남부 유럽 발칸 반도의 중남부 지역
면적 67,100㎢
대륙 유럽
국가 마케도니아 공화국, 그리스, 불가리아, 알바니아, 세르비아 등

요약 마케도니아 공화국, 그리스 북부와 북동부, 불가리아 남서부 구석지대를 차지하는 발칸 반도의 중남부 지역. 그리스 북동부에 있는 칼키디키 반도를 포함하여 면적이 약 6만 6,355㎢이다. 선사시대 문화는 주로 그리스 및 아나톨리아와 관계가 있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과 주민
  2. 고대역사
  3. 마케도니아 문제

지리상의 동일 지역이 아니며, 고대 이후 단일 국가로 통합된 적이 없다.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은 BC 4세기에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다.

마케도니아 지역
마케도니아 지역

자연환경과 주민

그리스 북동부에 있는 칼키디키 반도를 포함하여 면적이 약 6만 6,355㎢이다.

원래부터 마케도니아는 동쪽으로 네스토스(불가리아어로 메스타) 강 하류 및 그리스-불가리아 국경에 걸쳐 있는 로도피 대산괴의 서쪽 능선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시로카·크르나고라 산맥과,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북부 경계선이 되기도 하는 사르 산맥이 경계를 이룬다. 서쪽에서는 코라브 산맥과, 알바니아-그리스 국경에 걸쳐 있는 오리드·프레스파 호수가 경계가 되고 있다.

코라브 산맥(koeab mountain)
코라브 산맥(koeab mountain)

남서쪽에서는 핀두스 산맥과 접하고 남쪽에서는 알리아크몬(비스트리차) 강 유역, 올림포스 산, 살로니카 만, 칼키디키 반도(모두 그리스령)와 각각 접한다. 특히 올림포스 산, 살로니카 만, 칼키디키 반도는 남쪽으로 에게 해와 닿아 있다. 지형은 거의 구릉이나 산악지대이다. 4대 주요강인 알리아크몬·바르다르·스트루마(그리스어로 스트리몬)·네스토스 강은 대부분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에게 해로 흘러든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세르비아 공화국 남쪽에 있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마케도니아 북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면적이 약 2만 5,700㎢이며 코주프 산맥과 니제 산맥에 의해 남쪽에 있는 그리스령 마케도니아와 구분된다. 마케도니아 공화국 대부분 지역은 높이가 2,500m에 이르는 산들이 산재해 있는 해발 600~900m의 고원이다. 기후는 대륙성으로 여름은 덥고 비가 많으며,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고 춥다.

그리스령 또는 에게 마케도니아는 면적이 약 3만 4,200㎢이며 마케도니아의 남부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스트루마 강 하류의 여러 평야가 있는 넓은 테살로니키 평야와 에게 해 해안지대가 포함된다. 이 지역의 여름은 무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온화하나 가끔 비가 내린다. 불가리아령 또는 피린 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 북동부 지역을 차지하며 전체의 세 지역 가운데 면적이 가장 작다(6,500㎢). 스트루마 강과 네스토스 강의 상류가 피린 산맥 북쪽에 자리잡은 이곳을 지나 그리스령 마케도니아로 흘러들어간다.

마케도니아인은 마케도니아 공화국에 거의 살고 있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남슬라브어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보다 불가리아어에 더 가깝다. 그밖에 알바니아인과 터키인도 상당수 살고 있다. 그리스령 마케도니아에는 그리스 소수민족이 주로 살고 있으며 마케도니아인·블라키아인·포마크인(블가리아어를 사용하는 이슬람교도), 기타 여러 민족이 약간 산다. 불가리아령 마케도니아에는 주로 마케도니아인이 살고 있다.

고대역사

선사시대 문화는 주로 그리스 및 아나톨리아와 관계가 있다.

스스로를 마케도니아인이라고 부르던 미지의 민족이 BC 700년경에 왕인 페르디카스 1세와 그 부하들의 지휘 아래 원래 살고 있던 알리아크몬 강 유역을 떠나 동쪽으로 이주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BC 5세기경 마케도니아인은 그리스어를 받아들이고 통일 왕국을 세웠다. 아테네가 이곳 해안지역을 통치하게 되자 마케도니아 왕들은 어쩔 수 없이 고지대와 평야지대를 개간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이것은 아민타스 3세(BC 393~370/369 재위)에 이르러서야 끝났다. 아민타스의 두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2세와 페르디카스 3세의 통치기간은 비교적 짧았으며 아민타스의 셋째 아들 필리포스 2세가 페르디카스의 어린 상속자를 대신하여 통치권을 장악했다. 그는 칙령을 고쳐 스스로 왕(BC 359~336 재위)이 되었고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내에서 강력한 위치로 끌어올렸다.

필리포스 2세(Philippos II)
필리포스 2세(Philippos II)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BC 336~323 재위)는 아케메네스(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나일 강과 인더스 강까지 영토를 넓혔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에서 죽자 그를 따르던 장군들이 제국 각 지방을 분할하여 지배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제국 전체를 차지하려는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BC 321~301년에 계속되었다.

마케도니아 자체는 제국의 중심부로 계속 남아 있었으며 그리스 통치권과 함께 이곳을 얻고자 하는 날카로운 대립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유럽 지역 섭정인 안티파트로스와 그의 아들 카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가까스로 통치해나갔으나 BC 297년 카산드로스가 죽자 마케도니아는 내란을 겪게 되었다. 디미트리오스 1세 폴리오케테스가 6년 동안(BC 294~288) 통치하고 난 후 마케도니아는 다시 내란 상태에 빠졌으며 북쪽의 약탈자인 갈라티아인에게 심하게 공격받았다. BC 277년 디미트리오스의 유능한 아들인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갈라티아인을 물리쳐 마케도니아 군대로부터 왕으로 추대받았다. 그후 BC 277~168년 안티고노스 왕조가 지배하는 동안 나라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다.

필리포스 5세(BC 221~176 재위)와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BC 179~168 재위) 때에 마케도니아는 로마와 충돌해 패배했다(→ 마케도니아 전쟁). 로마의 지배를 받는 동안 처음에는 공통된 유대관계가 전혀 없는 4개의 자치 공화국을 형성하다가(BC 168~146) 이들 지역을 한 행정단위로 하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의 보루로 계속 남아 있었으며 북쪽 변경에서는 이웃 부족을 정벌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마케도니아 전쟁(Macedonian Wars)
마케도니아 전쟁(Macedonian Wars)

마케도니아 문제

고대부터 마케도니아가 격동의 역사를 겪었던 것은 구성 민족이 복잡하고 지리적으로 그리스와 발칸 제국을 잇는 교역로에 걸쳐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이 지역을 지나 국가간 경계선을 실질적으로 긋는다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4세기에 로마 제국이 동부와 서부로 분할되었을 때 마케도니아는 비잔틴 제국이 된 동부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까지 많은 주민들이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그리스 민족이 대부분이던 마케도니아의 주민구성은 6~7세기에 침략한 슬라브족 때문에 크게 바뀌었다. 슬라브족은 이곳에서 영구정착하면서 다수민족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후 9세기에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11세기에는 다시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중세시대 동안 여러 지역은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비잔틴 제국, 세르비아인으로 알려진 슬라브족 등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이같은 배경은 현대로 들어오자 나라들간에 마케도니아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을 초래하게 되었다. 14세기말에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마케도니아는 그후로 상당수의 투르크계 이슬람교도들이 이주하게 됨으로써 민족구성이 보다 복잡해졌다. 15세기말에는 스페인에서 쫓겨난 상당수의 세파르디 유대인이 테살로니키 같은 마을들에 정착하여 교역문제로 그리스인과 경쟁을 벌였다.

그당시 소수민족이던 블라키아인과 알바니아인은 오늘날까지도 거주하고 있다. 19세기에 들어와 발칸 제국 사람들의 민족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하자 마케도니아는 국제적인 문제지역이 되었으며, 그 문제는 통틀어 '마케도니아 문제'로 불리게 되었다.

마케도니아에서의 민족주의 운동은 발칸 반도의 다른 지역들에서보다 늦게 일어났다. 1877~78년의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1878년 산스테파노 조약에 의해 오스만 제국이 불가리아 독립을 인정하고, 테살로니키와 칼키디키 반도를 제외한 마케도니아 전역을 부활한 불가리아에 넘겨주도록 강제했다.

산 스테파노 조약(Treaty of San Stefano)
산 스테파노 조약(Treaty of San Stefano)

그러나 이 협정은 유럽 열강에 의해 곧 뒤집어졌다. 유럽 열강은 같은 해의 베를린 회의에서 그리스도교에 입각한 통치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조건으로 마케도니아를 터키에 되돌려주었다. 그후 20년 동안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는 각자가 마케도니아인과 민족적 연결성이 더 가깝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마케도니아를 차지하려 했다.

모든 비이슬람교 마케도니아인들은 마케도니아가 투르크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했으며 이를 위해 1893년 마케도니아 국내혁명기구(IMRO)라고 하는 적극적인 혁명 운동조직이 생겨났다. 조직의 구호는 '마케도니아인을 위한 마케도니아'였지만 장차 결성될 발칸 연방의 구성국으로서 불가리아·세르비아·그리스가 저마다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증대시키기 위해 게릴라 부대를 파견했다.

IMRO는 1903년 8월 2일 투르크의 지배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투르크에게 곧 유혈 진압을 당했다.

1912년 불가리아·세르비아·그리스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잠시 접어둔 채 투르크를 몰아내기 위한 군사동맹을 결성했다(발칸 동맹). 이들은 제1차 발칸 전쟁(1912~13)에서 목적을 달성했으나 마케도니아를 어떻게 분할할 것인지의 문제를 놓고 서로 싸우게 되었다.

세르비아·그리스·몬테네그로는 루마니아의 도움을 받아 불가리아를 상대로 벌인 제2차 발칸 전쟁(1913)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 이후 1913년에 맺어진 협정에 따라 마케도니아의 남부 절반은 그리스에, 북부 절반의 대부분은 세르비아에 할양되었으며 북부 일부 지역이 불가리아령으로 넘어갔다. 불가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동맹국(Central Powers)편을 들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 전역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이 패배함에 따라 불가리아의 소유 영토는 다시 줄어들어 현재의 피린 산맥 지역만 갖게 되었다.

발칸 전쟁(Balkan Wars )
발칸 전쟁(Balkan Wars )

1912~23년 마케도니아에서 몇 차례의 인구이동이 일어났다. 이중 가장 규모가 컸던 인구이동은 로잔 조약(1923)의 조항에 따라 일어난 것인데, 이때 37만 5,000명에 달하는 투르크인이 그리스령 마케도니아를 떠나 투르크로 갔으며 투르크에서 온 64만 명의 그리스 난민이 그리스령 마케도니아에 다시 정착했다.

제1·2차 세계대전 동안 마케도니아 문제가 여전히 발칸 반도에서 주요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었다.

1941년 추축국(Axis Powers)이 유고슬라비아를 침략해서 영토를 분할했을 때 불가리아는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테살로니키를 제외한 마케도니아 전역을 다시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이 패한 뒤 마케도니아의 내부 경계선은 이전의 상태로 대충 되돌아갔으며, 그리스·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 사이에 분할된 상태로 남아 있다가 유고슬라비아령 마케도니아는 1991년 11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