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다른 표기 언어 Luxembourg 동의어 룩셈부르크 대공국, Grand Duchy of Luxembourg
요약 테이블
위치 서부 유럽
인구 661,594명 (2024년 추계)
수도 룩셈부르크
면적 2,586.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룩셈부르크 대 공국 (Grand Duchy of Luxembourg)
기후 온대성기후
민족 구성 이탈리아계, 포르투갈계, 켈트계
언어 독일어,룩셈부르크어,프랑스어
정부/의회형태 입헌군주제 / 양원제
종교 로마가톨릭(87%), 개신교(13%)
화폐 유로 (€) 환율계산기
국화 장미
대륙 유럽
국가번호 352
GDP USD 72,461,000,000
인구밀도 256명/㎢
전압 220V / 50Hz
도메인 .lu

요약 유럽에서 작은 나라 중의 하나이자, 북해 연안 저지대 국가들 중의 하나. 수도는 룩셈부르크, 화폐는 유로이다. 대체로 중공업·국제무역·은행업에 기반을 둔 선진시장경제이며,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높다. 문맹률은 아주 낮고, 15세까지의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목차

접기
  1.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 교류·교민 현황
  2. 자연환경
  3. 국민
  4. 경제
  5. 정치와 사회
  6. 문화
  7. 역사
룩셈부르크 국기
룩셈부르크 국기

유럽 대륙 북서부에 있으며, 수도는 룩셈부르크 시이다. 남북 최대 길이는 82km이며, 동서 최대 길이는 56km이다.

북쪽과 서쪽으로 벨기에, 남쪽으로 프랑스, 동쪽으로 독일과 접한다. 독일과의 동쪽 국경은 우르 쉬르, 모젤 강들에 의해 형성된다.

지도
룩셈부르크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한국은 1962년 룩셈부르크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1965년 설립된 주벨기에 유럽연합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룩셈부르크의 영사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북한과는 2001년에 수교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3년 기준 한국의 룩셈부르크 수출액은 3,283만 달러, 수입액은 4,706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목은 철강, 자동차, 플라스틱 등이며 수입품목은 원자로 및 보일러, 구리, 레이더기기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 해운협정(1987년), 항공협정(2003년) 등이 있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룩셈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846명이며,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룩셈부르크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31명이다.

자연환경

지형적으로 뚜렷이 구별되는 2개 지역으로 나뉜다. 이 두 지역은 이 나라의 1/3을 차지하는 북쪽의 외슬링과 남쪽의 봉페이 혹은 구트란트이다.

프랑스어 봉페이와 독일어 구트란트는 모두 '좋은 땅'을 뜻한다. 외슬링은 빽빽하게 삼림이 들어찬 평균고도 400∼490m인 아르덴 산맥의 동쪽으로 뻗은 연장부인데, 깊은 강이 흐르는 계곡들로 팬 높은 고원을 형성하고 있다. 최북단에 있는 높이 559m의 부르크플라츠는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비교적 얕고 척박한 토양이지만 염기성 슬래그 비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개발했고, 보리·귀리·호밀·감자 등을 생산한다. 언덕 비탈의 풍부한 목초지에서는 육우가 사육되며, 숨은 듯한 골짜기에서는 약간의 낙농업이 이루어진다.

평균고도 274m의 기복이 있는 봉페이 고원은 파리 분지의 북동쪽 연장부이며, 20∼35%의 철을 내포하고 있어 유럽에서 가장 풍부한 철광석층의 하나인 사암 준령이 특징이다. 농경지는 북쪽보다 이곳이 더 비옥하며, 밀·과일·포도들을 고도의 기계화된 농법으로 재배한다. 전체 토지 면적의 1/3에 못미치는 수림지는 약간의 침엽수·관목덤불숲·잡목림과 함께 거의 낙엽수이다.

기후는 습도가 높은 해양성과 대륙성기후 사이의 과도기적인 온대기후이다. 연평균 기온은 8℃이며 평균 강우량은 810㎜이고, 아르덴 산맥의 높은 곳에서는 눈이 내린다.

레미히 주(Kanton Réimech )
레미히 주(Kanton Réimech )

국민

1980년대 초기에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사실상 0%였고, 출국이민 수와 입국이민 수가 대충 비슷했다. 1980년대 초 이후 인구는 점차 증가하기 시작해 1980년 364,200명이었던 인구는 2000년 436,300명까지 증가했다. 2024년 추산 인구는 66만 1,594명, 인구밀도는 256명/㎢이다. 전체 인구의 90.43%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며, 16%가 15세 미만이다.

여러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프랑스인과 독일인들이 압도적이며, 중요한 소수민족은 이탈리아인이다. 켈트족·리구리아인·로마인·트레베리족·프랑크족 등이 선조이다. 프랑스어·독일어, 게르만계의 레체부르크어가 공용어이다.

1980년대 초 약 6만 명의 외국인이 거주했는데, 이들은 광산업과 철강업체 또는 외국인 회사에서 일했다. 로마 가톨릭 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대부분 루터 교회 신자인 그리스도교도들과 유대교도들이 약간 있다(→ 프랑스어, 독일어, 룩셈부르크어).

경제

룩셈부르크의 철강 산업
룩셈부르크의 철강 산업

대체로 중공업·국제무역·은행업에 기반을 둔 선진시장경제이다. 아르베드사(ARBEDSA)가 지배하고 있는 철강업은 정부의 장려로 다변화를 위해 외국 회사들에 의한 투자계약을 했다. 국민총생산(GNP)은 1980년에 52억 달러였고,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하는 1만 4,510달러였다. 농업은 GNP와 노동력의 극히 적은 일부를 차지한다. 농장은 규모가 작고 고도로 기계화되어 있는 편이다. 농산물 생산은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 수요를 충족시킨다. 목초가 전토지의 1/4을 덮고 있으며, 모젤 골짜기에서는 유명한 포도주를 생산한다.

이 지역의 철광석층은 대부분이 고갈되어, 남부의 주물공장들은 차츰 프랑스에서 수입하는 철광석에 의존하고 있다. 코크스와 석유 역시 수입하고 있다. 제조업은 GNP와 노동력의 약 1/3을 차지한다. 공업생산량은 1974∼81년에 1/5 이상 줄어들었는데, 이 나라 최대의 고용업체인 ARBEDSA의 축소가 생산량 감소의 상당한 원인이 되었다. 코머셜하이드롤릭스사·제너럴모터스사·셸사·뒤퐁사·굿이어사·유니로열사를 포함한 미국의 여러 다국적 기업들이 이 나라에 공장을 열었다.

전력생산량은 1980년에 11억 1,500만㎾h였는데, 주로 수입된 연료에 의해 발전되며 1/4은 수력발전에 의해 얻어진다. 민간소유의 룩셈부르크대공국전력회사가 전기 분배를 조절한다. 1919년에 조직된 노동총연맹이 주된 노동조합이다. 1970년대 후반에 정부·노동조합·고용주들은 파업을 불법화시킴으로써 국가경제 발전을 촉진시키고자 시도했다. 수많은 근로자들이 프랑스·벨기에·독일로 통근한다.

100개 이상의 은행들이 룩셈부르크에 지점을 두고 있으며, 자산은 주로 미국 달러와 독일 마르크로 거래된다. 유럽 공동체(EC)의 유럽투자은행 본점이 있다. 룩셈부르크는 벨기에 중앙은행의 결정에 참여하며, 베네룩스 경제동맹에 가입해 있다. 대외무역은 EC에 의해 지배되는데, EC는 룩셈부르크 수입의 90%까지 공급하며 그중 대부분을 독일과 벨기에가 차지한다. 주요무역상대국은 독일·벨기에·프랑스 등이며, 그 가운데 독일은 1980년대 초반 룩셈부르크에서 수출하는 제품의 거의 1/3을 수입했다.

정치와 사회

의회형태의 정부를 갖춘 입헌군주국으로 1868년 채택되어 1956년 수정된 헌법은 단원제 의회에 입법권을 부여한다.

의회는 직선으로 선출되는 임기 5년의 의원 59명으로 구성된다. 21명으로 구성되는 국가위원회는 대공에 의해 임명되며, 본질적 기능은 2차적 입법기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나 의회에 비해 권한이 작다. 집행권은 대공에게 부여되어 있으나 총리가 이끄는 정부 위원회에 의해 행사된다. 사법부는 대공이 임명하는 판사들로 구성되는 대법원이 최고기구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이며, 비교적 규모가 적고 지원병으로 구성된 군대를 보유한다.

앙리 드 나사우(Henri de Nassau)
앙리 드 나사우(Henri de Nassau)

사실상 전인구에게 해당되는 사회복지제도는 고용인들과 고용주들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로 구성된 반관반민 기구를 통해 실시된다. 사회보장제도에는 의료보험·연금·산업재해보상·가족수당·실직수당 등이 있다.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비교적 높고, 평균수명은 70세를 약간 넘으며, 1인당 식품소비량은 1일 3,500㎈이다. 질병형태는 다른 선진국의 경우와 비슷하여 순환계 질환이 주요사망원인이다.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6∼15세까지는 의무교육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주요언어로 독일어를 가르치고 중학교에서는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등 전 교육과정을 통하여 어학과정을 매우 강조한다. 중등교육 대신에 3년제와 5년제 직업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4년제 대학이나 대학교는 없다.

1848, 1880년에 각각 창간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일간지 2개와 발행부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간지가 발행된다. 신문들은 일반적으로 정당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서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달리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들이 상업적인 민간회사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문화

룩셈부르크 도시역사 박물관(Luxembourg City History Museum)
룩셈부르크 도시역사 박물관(Luxembourg City History Museum)

음악과 연극에서 훌륭한 작품들을 만드는 몇 개의 유럽 국가들 및 그밖의 나라들과 문화교환협정을 맺고 있다. 고유의 주요문화기관은 대공국 연구소로, 예술과 고전어 연구를 촉진하고 언어·민속·예술·문학·자연과학에 관한 전시회를 후원한다.

역사

BC 57∼50년의 로마 정복 시기에 벨기에 종족인 트레베리족이 거주했다. AD 400년 이후 게르만족이 이 지방에 침입하여, 이곳은 프랑크족의 아우스트라시아 왕국과 나중에는 샤를마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843년 이 지역은 3부분으로 분할되었고, 963년에는 아르덴 백작 지그프리트 밑에서 독립체가 되었다. 지그프리트의 후손인 콘라트가 1060년 룩셈부르크의 백작 칭호를 얻었고, 그의 후계자들은 결혼을 통해 소유령을 확대했다.

룩셈부르크 백작인 하인리히 4세는 1312년 하인리히 7세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후 보헤미아를 덧붙인 세습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1440년대에 이 지역은 부르고뉴가에 넘어갔다. 16세기초에는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았고, 16세기 후반에는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일부가 되었다.

하인리히 4세(Heinrich IV)
하인리히 4세(Heinrich IV)

1701∼14년의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 뒤이어 스페인령으로부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지배 밑으로 들어갔다. 빈 회의(1815) 결과 이곳은 네덜란드 빌렘 1세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830년 벨기에인들이 빌렘 1세의 지배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룩셈부르크의 대부분이 합세했다. 이 반란 이후 룩셈부르크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에게 각각 분할되었다. 네덜란드에 속했던 부분은 1867년까지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는 대공국이 되었다.

1867년 후 유럽 강대국들에 의해 룩셈부르크의 중립이 보장되었고, 그 공국은 나사우가로 넘어갔다. 1890년 대공국은 나사우-바일부르크의 아돌프 공에게 넘어갔는데, 그의 아들 빌헬름이 그를 계승했다(1905). 이곳은 1914년 독일에 점령되었다. 1919년 공국의 해방후 빌헬름의 맏딸은 자매인 샤를로트(1919∼64)를 위하여 공의 지위를 포기했다.

1921년 벨기에와 경제동맹을 맺었고, 국제연맹에 가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공국은 다시 독일군에 점령되었고, 대공 가족은 영국으로 도피했다. 1944년 해방된 후 중립노선을 포기하여, 1949년 NATO에 가입하고 나서 유럽경제공동체(EEC)에도 참여했다. 1964년 장 대공은 그의 어머니를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