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프랑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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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프랑스어는 25개국 이상의 공용어로 알제리, 벨기에, 캐나다, 룩셈부르크, 스위스, 저지 섬 등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와 코르시카에서는 약 4,400만 명, 캐나다에서는 625만 명, 벨기에에서는 320만 명, 스위스에서는 100만 명 이상, 모나코에서는 1만 3,000명, 이탈리아의 발레다오스타에서는 10만 명, 미국에서는 약 240만 명이 프랑스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약 500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과 400만 명의 인도차이나 사람에게 프랑스어는 중요한 국제통용어가 되어 있다.
프랑스어로 된 최초의 문서는 842년에 작성된 <스트라스부르 서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샤를마뉴의 두 손자의 서약 내용을 로망스어로 옮겨놓은 것이다. 고대 프랑스어로 기록된 2번째의 현존하는 필사본은 성 외랄리아의 짤막한 기록들이다.

프랑스어는 25개국 이상의 공용어로 알제리, 벨기에, 캐나다, 룩셈부르크, 스위스, 저지 섬 등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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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코르시카에서는 약 4,400만 명, 캐나다에서는 625만 명, 벨기에에서는 320만 명, 스위스에서는 100만 명 이상, 모나코에서는 1만 3,000명, 이탈리아의 발레다오스타에서는 10만 명, 미국(특히 메인 주와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약 240만 명이 프랑스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약 500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과 400만 명의 인도차이나 사람에게 프랑스어는 중요한 국제통용어가 되어 있으며, 많은 크리올 프랑스어 사용자들도 공식석상에서는 표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표준 프랑스어는 대략 12세기 후반에 우세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파리 방언(일 드 프랑스 방언)에서 비롯된다. 파리 방언은 원래 몇몇 북방적 특징을 지닌 북부 중앙지방의 방언이었다. 그전에는 다른 방언들, 즉 노르만 방언(브리튼에서는 앵글로노르만 방언으로 발전하여 대략 14세기까지 사용되었음)과 피카르디 방언과 같은 북부지방의 방언들이 우세했으며, 특히 문학 분야에서 그러했다.

그러나 비예코트레 칙령(1539) 이후 프랑시앵 방언이 유일한 공식언어로 정립되었다. 그때부터 표준 프랑스어가 지역방언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작가들로부터 칭송받았던 방언들은 근대 프랑스어의 문법과 어휘가 놀라울 정도로 표준화되고 정련됨에 따라 17, 18세기에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중세까지는 프랑시앵 방언과 선두를 다투었던 북부 프랑스의 피카르디왈론 방언과 서부 프랑스의 노르만 방언이 교육받지 못한 시골사람들의 말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프랑스 북부지역에서의 언어변화는 다른 로망스어 지역에서보다 더욱 신속하고 철저했으며, 14세기 이후 라틴어 어휘 차용이 점점 더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라틴어로부터의 영향은 비교적 경미했다.

게르만 프랑크족 침입자들의 영향이 강세나 이중모음과 비모음의 풍부함과 같은 고대 프랑스어의 외래적 자질들을 설명하는 데 종종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15세기경에 더욱 부드러운(단조롭기까지함) 억양으로 변화한 것, 각 단어의 강세가 없어진 것 등은 인접 언어로부터의 영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거의 모든 외국사람들이 발음상의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를 제1외국어로 채택하게 된 것은 모든 시대에 걸친 프랑스 문학의 위대함뿐만 아니라, 특히 18세기에 프랑스 문법이 세밀하게 성문화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그결과 이탈리아어가 상대적으로 습득하기 쉬운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로망스어권의 외국어 사용자들이 대부분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학습하며 종종 애정과 경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어로 된 최초의 문서는 842년에 작성된 〈스트라스부르 서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샤를마뉴의 두 손자의 서약 내용을 로망스어로 옮겨놓은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 필사본이 사건 이후 정치적 선전의 의도에서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라틴어인 것처럼 슬쩍 위장해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학자들은 라틴 문자화하려는 그러한 경향들이 당시 구어로 씌어지던 프랑스어를 문자로 기록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추측한다. 〈스트라스부르 서약〉이 북부지역 프랑스어로 씌어졌다면 그것이 어떤 방언에 속하는 것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피카르디 방언으로, 다른 사람들은 프랑스프로방스 방언으로 주장하며 그밖의 다른 견해들도 있다. 고대 프랑스어로 기록된 2번째의 현존하는 필사본은 성(聖) 외랄리아의 짤막한 기록들로서, 그 연대(880~882)와 장소(발랑시엔)가 정확하게 드러나 있으며, 피카르디 방언으로 씌어져 있다.

10세기의 두 필사본 〈그리스도의 수난 Passion du christ〉·〈성 레제의 생애 Vie de st. Leger〉에는 북부와 남부 방언의 특징들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다른 필사본 〈요나 단편 Jonas fragment〉은 최북단지역의 것임이 명백하다. 이후에는 노르만 방언이 문학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추측컨대 이 방언은 조야한 요소들이 제거됨으로써 표준어로 더욱 잘 기록되었을 것이다. 필사본은 2가지 전통인 최북단지역과 서부지역에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둘이 서로 교차함으로써 결국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는 프랑시앵 방언이 생겨난 것 같다.

오늘날의 방언들은 주로 지리적인 기준에 따라 분류되며, 대개 시골 말에만 남아 있다.

주로 벨기에에서 사용되고 있는 왈론 방언은 1600년경 이래 융성한 방언문학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예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방언들은 ① 중부지역의 프랑시앵 방언, 오를레앙 방언, 부르보네 방언, 샹파뉴 방언, ② 북부지역의 피카르디 방언, 북부 노르만 방언, ③ 동부지역의 로렌 방언, 부르고뉴 방언, 프랑스콩투아 방언, ④ 서부지역의 노르만 방언, 북브르타뉴 방언(켈트브르타뉴 지역 부근), 앙제 방언, 메네 방언, ⑤ 남서부지역의 푸아티에 방언, 생통제 방언, 앙굴렘 방언 등으로 분류된다.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는 크리올어를 제외하고, 캐나다 프랑스어가 가장 독자적인 발전을 보였다.

캐나다 프랑스어는 원래 남서부방언의 유형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내내 캐나다 프랑스어는 프랑스 본토의 주석자들에 의해 예외적으로 '순수'하다고 여겨졌지만, 1760년 이후 프랑스에 대신하여 영국의 영향이 우세해지자 파리 프랑스어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표준 프랑스어에 비해 불분명하게 발음되고, 입술의 움직임이 더 적어지며, 더욱 단조로운 억양을 갖게 된 것이다.

자음의 소리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며(t, d가 각각 ts, dz로 바뀜), i나 e에 뒤따르는 k나 g는 구개음화된다(혀가 경구개 또는 입천장에 닿으면서 발음됨). 비모음은 비음의 성질을 상실하며, 어휘와 구문이 상당히 영어화된다. 비록 지식인들이 교양상의 목적으로 프랑스어를 배우지만(대학 교육을 받은 일부 프랑스계 캐나다인 중 영어를 못할 수도 있음), 표준 프랑스어로 발음하거나 사용하게 되면 때때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의 영국인 동포들이 학교에서 파리 프랑스어를 배운다는 데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캐나다의 프랑스어 사용인구는 비교적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퀘벡 주민의 80%가 프랑스어를 그들의 일상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프랑스어는 영어만큼 사회적인 특권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분리주의 운동은 여전히 많은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갖고 있는 불만의 감정을 입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