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우

나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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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독일의 역사적인 지역이자 수세기 동안 대대로 이 지역의 통치자들을 배출해낸 왕족의 이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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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2. 발람령 나사우
  3. 오토령 나사우
  4. 발람령 나사우
  5. 오토령 나사우
나사우(Nassau)
나사우(Nassau)

개요

현재의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의 왕족들은 나사우 가문의 후손들이다.

나사우 지역은 독일연방공화국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금의 헤센 주 서부와 라인란트팔츠 주의 베스터발트 지방이 이곳에 속한다. 란 강이 나사우의 중심을 관통해서 흐르고, 남쪽에는 타우누스 산맥이, 북쪽에는 베스터발트 산맥이 있다. 12세기에 이르러 로렌부르크의 지방 백작들이 나사우 읍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들 중 발람(?~1198)이 처음으로 나사우의 백작 칭호를 받았다.

그 후 발람의 손자인 발람 2세와 오토 1세가 각각 나사우의 남부와 북부를 상속받았다.

발람령 나사우

발람 2세의 아들인 나사우 가문의 아돌프는 1292~98년에 독일의 왕을 지냈다.

그러나 아돌프의 후손들은 그들의 영토를 제각기 나누어 가졌고, 18세기말경에는 나사우바일부르크 분가(分家)와 나사우우싱겐 분가가 발람의 유산을 나누어 가졌다. 1801년에는 나폴레옹이 이끌던 프랑스가 라인 강 서쪽에 있는 발람의 땅을 손에 넣었지만 1803년에는 나사우바일부르크와 나사우우싱겐 두 분가가 다시 결합해 프랑스로부터 훨씬 더 넓은 영토를 보상받았다. 1806년 발람령 나사우는 나폴레옹 1세의 라인 동맹에 가입했으며, 그해에 베르크 대공국(大公國)에 떼어준 부분은 주로 오토령 나사우에서 보충해 균형을 맞추었다.

또한 이 시기에 발람령 나사우는 공국이 되었다. 1816년에는 우싱겐 분가의 대가 끊어져 바일부르크 분가의 빌헬름이 나사우의 유일한 대공이 되었다. 빌헬름의 후계자 아돌프 대공은 '7주 전쟁'(1866)에서 지고 있던 오스트리아를 돕다가 프로이센에게 공국을 빼앗겼다. 그후 이 지역은 프로이센의 헤센나사우 지방에 있는 비스바덴 구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오토령 나사우

오토 1세의 후손들도 영토를 가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중 한 분가가 네덜란드의 넓은 영토를 손에 넣으면서, 나사우딜렌부르크브레다 분가로 알려졌다.

1544년 이 분가의 마지막 통치자가 죽으면서 사촌인 나사우 가문의 빌렘(장차 오라녜 대공, '조용한 빌렘'으로 불림)이 그 분가의 네덜란드 오라녜 공국을 물려받아 그후로 이 가계(家系)의 사람들을 '오라녜 나사우의 왕자들'이라 불렀다. '조용한 빌렘'은 16~18세기 네덜란드에 대대로 뛰어난 총독들을 배출한 왕조의 창시자였다.

1702년 잉글랜드 왕 윌리엄 3세의 죽음으로 윌리엄의 남자 직계손이 단절되자, 네덜란드와 나사우에 있던 오토계 소유의 영지가 오토계에서 분가한 나사우디츠가의 요한 빌헬름 프리소 백작에게로 넘어갔다. 나사우디츠 분가는 오토계 사람들이 나누었던 독일 영토를 18세기에 마침내 결합했다.

오라녜 공국의 오토계 통치자 빌렘 6세는 1806년 나폴레옹에게 독일의 영지를 빼앗겼지만, 그 보상으로 1815년 빈 회의에서 룩셈부르크를 받았다.

또한 빌렘 6세는 그해에 네덜란드의 왕위를 물려받아 빌렘 1세가 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오라녜나사우라는 왕가의 이름으로 네덜란드를 통치하고 있다. 1890년 빌렘 3세의 죽음으로 오토계 분가의 직계가 단절되자, 그의 딸인 빌헬미나가 네덜란드의 여왕이 되고, 룩셈부르크는 발람계 분가인 나사우 가문 아돌프 백작에게 넘어갔다.

지금도 발람의 가계는 룩셈부르크 대공국을 통치하는 가문을 이루고 있다.

발람령 나사우

발람 2세의 아들인 나사우 가문의 아돌프는 1292~98년에 독일의 왕을 지냈다. 그러나 아돌프의 후손들은 그들의 영토를 제각기 나누어 가졌고, 18세기말경에는 나사우바일부르크 분가(分家)와 나사우우싱겐 분가가 발람의 유산을 나누어 가졌다.

1801년에는 나폴레옹이 이끌던 프랑스가 라인 강 서쪽에 있는 발람의 땅을 손에 넣었지만 1803년에는 나사우바일부르크와 나사우우싱겐 두 분가가 다시 결합해 프랑스로부터 훨씬 더 넓은 영토를 보상받았다. 1806년 발람령 나사우는 나폴레옹 1세의 라인 동맹에 가입했으며, 그해에 베르크 대공국에 떼어준 부분은 주로 오토령 나사우에서 보충해 균형을 맞추었다. 또한 이 시기에 발람령 나사우는 공국이 되었다.

1816년에는 우싱겐 분가의 대가 끊어져 바일부르크 분가의 빌헬름이 나사우의 유일한 대공이 되었다. 빌헬름의 후계자 아돌프 대공은 '7주 전쟁'(1866)에서 지고 있던 오스트리아를 돕다가 프로이센에게 공국을 빼앗겼다. 그후 이 지역은 프로이센의 헤센나사우 지방에 있는 비스바덴 구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오토령 나사우

오토 1세의 후손들도 영토를 가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중 한 분가가 네덜란드의 넓은 영토를 손에 넣으면서, 나사우딜렌부르크브레다 분가로 알려졌다. 1544년 이 분가의 마지막 통치자가 죽으면서 사촌인 나사우 가문의 빌렘(장차 오라녜 대공, '조용한 빌렘'으로 불림)이 그 분가의 네덜란드 오라녜 공국을 물려받아 그후로 이 가계(家系)의 사람들을 '오라녜 나사우의 왕자들'이라 불렀다.

'조용한 빌렘'은 16~18세기 네덜란드에 대대로 뛰어난 총독들을 배출한 왕조의 창시자였다. 1702년 잉글랜드 왕 윌리엄 3세의 죽음으로 윌리엄의 남자 직계손이 단절되자, 네덜란드와 나사우에 있던 오토계 소유의 영지가 오토계에서 분가한 나사우디츠가의 요한 빌헬름 프리소 백작에게로 넘어갔다. 나사우디츠 분가는 오토계 사람들이 나누었던 독일 영토를 18세기에 마침내 결합했다.

오라녜 공국의 오토계 통치자 빌렘 6세는 1806년 나폴레옹에게 독일의 영지를 빼앗겼지만, 그 보상으로 1815년 빈 회의에서 룩셈부르크를 받았다. 또한 빌렘 6세는 그해에 네덜란드의 왕위를 물려받아 빌렘 1세가 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오라녜나사우라는 왕가의 이름으로 네덜란드를 통치하고 있다.

1890년 빌렘 3세의 죽음으로 오토계 분가의 직계가 단절되자, 그의 딸인 빌헬미나가 네덜란드의 여왕이 되고, 룩셈부르크는 발람계 분가인 나사우 가문 아돌프 백작에게 넘어갔다. 지금도 발람의 가계는 룩셈부르크 대공국을 통치하는 가문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