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주의

데카르트주의

다른 표기 언어 Cartesianism

요약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저작에서 나온 철학적·과학적 전통.

목차

접기
  1. 데카르트주의 체계
  2. 정신·육체·인간
  3. 과학과 종교
  4. 말브랑슈와 기회원인론
  5. 데카르트주의 기계론
  6. 데카르트주의 기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
  7. 데카르트주의가 후대에 끼친 영향
    1. 후대 철학자들
    2. 관념의 방식과 자아
    3. 현대에 끼친 영향

데카르트주의 체계

근본원리면에서 데카르트주의는 합리론적·플라톤적이며 따라서 이성은 본유관념에서 확실한 지식을 이끌어낸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모든 지식이 개연적이고 감각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경험론적·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와 대립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데카르트주의자는 경험론자와 마찬가지로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하여 개연론적 과학관을 발전시켰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이 과학의 불확실성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신은 전능하고 신의 의지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에서 물질세계뿐 아니라 수학의 진리와 자연법칙 등의 모든 진리를 창조한 신이 무한한 지성과 자유의지가 있기만 하면 모순조차도 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간 지성은 유한하다. 따라서 인간은 '코기토'(cogito)와 계시종교에 대해서만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주의자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처럼 종교적 지식에서 과학의 진리를 이끌어내지는 않았다. 따라서 실제로 그들은 과학지식을 불확실하고 개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세계가 정신과 물질이라는 2개의 유한실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주장했다.

정신의 본질은 자기의식적인 사유이고 물질의 본질은 3차원의 연장(延長)이다. 신은 필연적 실존을 본질로 하는 제3의 무한실체로서 정신과 육체를 결합하여 제4의 복합실체인 인간을 만든다. 인간은 본유관념을 사유함으로써 정신·물질·신에 대한 일반지식을 갖는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특수한 지식을 얻을 때는 감각기관에서 신경을 거쳐 두뇌로 전달되어 지각가능한 관념이 정신 속에 일어나도록 하는 운동들에 의존한다.

이처럼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정신 안에 존재하는 지각가능한 관념들에 의해 외부세계를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은 인과적 상호작용과 앎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인간이 정신과 물질이라는 본질적으로 다른 2개의 실체로 이루어진 복합실체라면, 육체는 어떻게 정신이 지각가능한 관념들을 갖도록 할 수 있는가, 정신은 어떻게 육체가 움직이도록 할 수 있는가, 정신은 어떻게 감각가능한 정신적 관념들에 의해 물질세계를 알 수 있는가 등이다.

데카르트주의 철학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서로 다르게 답하면서 여러 노선으로 발전했다.

정신·육체·인간

대부분의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정신과 육체가 상호작용한다고 믿었다.

어떻게 작용하느냐는 물음에 레지스는 인간존재가 그 상호작용을 실제로 경험하며 또한 인간이 이해할 수는 없어도 신이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 실제로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대답은 명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한 비철학적이고 신비적인 답변이었다. 관념이 어떻게 대상을 표상하는가에 관해 의사 로오는 모든 데카르트주의자를 대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신적 관념이 물질적 물체와 유사성이 없이도 물질적 물체를 표상하는 까닭은 신이 그 관념을 만들었기 때문이며 더 이상의 어떤 설명도 필요없다.

그러나 이 대답도 신비주의와 신학을 위해 철학을 저버린 것이었다. 토마스주의자들(토마스 아퀴나스가 발전시킨 철학과 신학체계의 옹호자들)은 영혼이나 정신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형상이나 본성이며, 중립적인 물질을 특정한 사물로 만드는 힘이나 능력이라고 말한다. 도토리의 예에서 도토리를 상수리 나무로 만드는 것이 바로 형상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형상(영혼)과 중립적인 물질로 이루어진 단일한 실체이고, 형상과 중립적 물질은 모두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토마스주의자들에 따르면 인간 영혼은 기적적으로 물질과 독립해서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생존할 수 있는 실체적 형상이다. 데카르트는 이와 같은 실체적 형상이라는 개념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정신이나 영혼을 물질과 독립해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라고 봄으로써, 영혼-형상을 실체로 만드는 기적에 호소하지 않고도 영혼불멸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은 데카르트주의자들에게 인간의 궁극적 본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프랑스 의사 루이 드 라 포르주는 정신이나 영혼은 인간이 죽을 때 개별적인 육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지식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다고 결론지었다. 그 까닭은 데카르트주의자들이 보기에 지각가능한 관념들은 정신과 육체의 결합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인간존재는 경험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피해야 할지를 배우며, 이러한 경험에 대한 기억은 두뇌 속에 보존된다. 그러나 일단 육체가 죽으면 지각가능한 관념과 두뇌 속에 있는 경험에 대한 기억이 모두 파괴된다. 사후에 영혼이 물질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연장에 관한 일반관념뿐이다. 즉 영혼은 수학을 알지만 친구들의 얼굴을 기억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견해가 일으키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육체에 대한 연상과 기억은 죽을 때 사라지기 때문에 개별 인격도 사라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 영혼을 다른 영혼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데카르트의 원리에 따르면 인간은 비인격적 영혼으로서만, 즉 육체가 없는 다른 모든 영혼과 동일한 것으로서만 사후에도 존속한다. 이와 같은 데카르트의 결론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과학과 종교

넓은 의미의 데카르트주의에는 정신-물질 이원론 외에 합리론적 형이상학과 기계론적 물리학 사이에 또 하나의 이원론이 있다.

합리론적 형이상학은 정신·물질과 신의 필연적 존재의 본유관념에 대한 일반적 추론이 확실하다는 데 의존하며, 기계론적 물리학은 물질세계의 특수자에 대한 관찰과 경험에 바탕을 둔 개연성을 축적함으로써 과학적 지식을 발전시킨다. 이 이원론 때문에 데카르트를 거의 그리스도교 옹호론자로만 보았고, 일부 주석가들은 데카르트가 물리학에만 관심을 가진 무신론적 유물론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플랑드르의 칼뱅주의자 아르놀트 횔링크스는 데카르트주의의 결정론적 윤리학을 발전시켰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들은 신이 의지한 것만을 할 수 있지만, 이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자유롭다. 칼뱅주의와 얀센주의의 예정론과 비슷한 이 스토아주의적 윤리학은 데카르트의 물리학만큼이나 결정론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학은 인간 의지가 예정된 육체적 행동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특성 행동을 자유롭게 선택하거나 행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주장과 모순된다.

말브랑슈기회원인론

니콜라 말브랑슈는 데카르트의 정신과 물질은 본질적인 차이 때문에 상호작용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말브랑슈는 인간 육체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신이 그들의 정신 속에 적절한 지각가능한 관념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움직이려고 할 때에는 항상 신이 그 육체를 움직이게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신과 육체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적 상호작용이 전혀 없으며 신에 의해 매개된, 별개의 평행적인 일련의 정신적·물질적 사건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견해를 기회원인론이라 한다.

말브랑슈는 자신이 데카르트주의자임을 부인했다. 데카르트와는 달리, 그는 내성이 정신의 본질에 대해 어떠한 지식도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영향을 받아 영국 철학자 존 로크는 물질도 사유능력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모두 이러한 가능성에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정신·영혼과 육체의 분리가 인간영혼이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존속한다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지지하기 때문이었다.

데카르트주의 기계론

프랑스 최초의 데카르트주의자들은 물리학적·생물학적 현상들에 대해 기계론적 설명을 제시한 물리학자와 생리학자였다(→ 생리학). 프랑스 신학자이자 철학자 니콜라 말브랑슈 신부는 동물을 기계라고 생각했다. 파리에서 피에르 실뱅 레지스가 행한 데카르트 물리학에 관한 강의는 루이 14세가 강의를 금지할 정도로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데카르트주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지를 받고 있던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에 도전했는데, 교회는 왕의 신성한 지배권의 비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루이 14세는 전통의 권위에 대한 비판이 혁명을 가져올까 두려웠던 것이다.

데카르트가 각 개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사유할 능력을 갖고 있음을 강조한 것은 18세기 공화주의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기계제작 기술의 진보는 데카르트주의 기계론에 실질적 기초가 되었다. 17세기에는 지렛대 등을 이용한 걷고 말하는 조상이나 수력으로 움직이는 기관과 같은 기계들이 발명되었다. 파스칼은 방직기의 발명가나 시계제작자들이 이용한 원리를 바탕으로 계산기를 발명했다.

기계론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가상디의 에피쿠로스적 원자론과 갈릴레오의 움직이는 물체실험이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물질적 우주는 무한히 나눌 수 있는 물질로 꽉 찬 광대하고 불변하는 공간이며, 이 물질은 신이 전달한 일련의 운동량에 따라 공간을 채우는 미세한 물질과 물체 속으로 응집된 물질로 분리된다. 물체들은 소용돌이 속에 말려든 나뭇잎처럼 회전한다. 물체들 사이의 결합과 분리는 모두 기계적이고 움직이는 물체들이 서로 충돌한 결과이다. 운동량은 자연법칙에 따라 보존되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물질세계는 결정론적이다. 최초의 충격 이후에 세계는 법칙에 따라 발전한다. 만일 특정 시간에 우주에서 회전하는 모든 물질의 운동속도와 위치를 기술할 수 있다면, 운동법칙을 바탕으로 한 연역을 통해 그 이후 특정시간에서의 상태를 기술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신만이 이러한 계산을 하는 데 필요한 무한한 지성을 가지고 있다.

신은 물질적 우주와 자연법칙의 제1원인이다. 그러나 모든 물질적 사건, 즉 물체들의 운동과 상호작용은 2차적 원인의 결과이다. 신은 단지 자연법칙들의 제일성(齊一性)과 무모순성을 대표할 뿐이다.

데카르트주의의 합리론적 물리학은 17세기말에 이루어진 관찰과 경험으로 무너졌고 뉴턴의 수학적 물리학이 단순한 기계론보다 훨씬 뛰어난 설명력을 보여주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데카르트의 운동법칙이 틀렸고 운동량 보존의 원리가 뉴턴의 에너지 보존법칙으로 대체되어야 함을 인정했다.

데카르트주의 기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데카르트(René Descartes)
데카르트(René Descartes)

데카르트주의 기계론은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교 신학자 모두의 지지를 받은 스콜라주의의 아리스토텔레스 과학과 대립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에 따르면 사물의 추진력은 사물이 갖고 있는 본성의 내적 힘이다. 예를 들면 사물의 본성의 내적 힘이 도토리를 상수리 나무가 되게 한다.

개별 사물은 모두 이처럼 독자적인 존재를 부여하는 본질이나 본성, 정령이나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영혼은 살아 있는 것들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반면 기계론자들에 따르면 생명있는 물체는 매우 복잡한 기계일 뿐이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주의자들이 볼 때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의 말처럼 영혼이 육체를 떠나기 때문에 육체가 죽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분해되기 때문에 영혼이 떠나는 것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덕이나 욕구를 가지고 있고 예정된 목적에 이르려고 애쓴다. 따라서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며 사물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목적이나 궁극원인을 알아야만 한다.

데카르트는 목적론적·정령론적 견해와 사물에는 생명력이 있다는 연금술 이론을 모두 거부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신과 인간만이 영혼·의지·목적 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살아 있는 물체와 생명없는 물체는 어떤 목적도 없으며 단순히 수동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데카르트주의자들에게 과학은 궁극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물체들의 기계적 법칙을 찾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과학에는 신비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영혼이나 정신을 결정론적 자연 바깥에 내놓는다. 그런데 육체는 결정론적 자연의 일부이므로, 정신이 육체의 움직임을 지배한다는 것은 기적일 뿐 아니라 기계론적 결정론을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데카르트의 체계에 따르면 인간정신은 마술로서의 의지력에 의해 육체를 움직이는 정령적 힘과 그 능력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주의가 후대에 끼친 영향

후대 철학자들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의 합리론적 형이상학은 데카르트에게서 비롯했다.

스피노자는 신이라는 오직 하나의 실체만이 있고 신은 인격(유신론자들의 주장처럼)이 아니라 세계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의 형이상학은 일원론·범신론·이신론(理神論)이다. 이 실체는 무한한 수의 속성을 갖고 있고, 그 속성들 각각은 신 혹은 세계의 총체성을 표현한다. 모든 속성은 모든 면에서 평행적이므로 정신과 물질은 비록 상호작용하지 않더라도 마치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도 정신-육체 문제에 대해 평행론적 답변을 제시했다.

라이프니츠의 단자(單子) 혹은 실재의 정신적 단위(데카르트가 세계에서 추방한 내적 힘)는 자기완결적이다. 각각의 단자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전 우주를 반영한다. 단자는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각 단자는 다른 모든 단자와 예정조화 속에 있기 때문에 외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지 버클리는 일원론적 체계를 제시했다. 그는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물리적 사물은 지각가능한 관념과 같은 것이라는 믿음을 옹호했다.

그리고 신이 인간정신에 부여한 지각가능한 관념이 과연 사물에 대한 참된 앎을 제공하는가에 대해서도 회의하지 않았다. 버클리에 따르면, 사물이나 현상은 직접적으로 알려진다. 또한 정신-육체의 상호작용의 문제도 없다. 왜냐하면 육체는 정신적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정신은 그 관념들 중 일부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토머스 홉스는 물질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정신을 제거했다. 사유하고 지각하는 정신은 단지 두뇌활동의 현상일 뿐이다. 사유된 것들은 부수현상이다.

사고와 느낌은 '끽' 하는 소리가 바퀴에 기름칠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내듯이 육체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그러나 사고는 완전히 파생적이고 육체 기계의 작동에 어떠한 영향력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홉스의 일원론적 유물론도 정신과 육체의 상호작용 문제를 제거해버리고 있다.

관념의 방식과 자아

이밖에도 데카르트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다음의 2가지이다.

하나는 표상적 관념에 의해 이루어지는 데카르트의 인식이론에서 비롯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코기토'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자는 갈릴레오가 물체의 실재적 1차 성질(모두 양적인 크기·형태·위치·운동 혹은 정지)과 정신 속에만 존재한다는 지각 가능한 성질 혹은 2차 성질(색·촉감·소리·향기·맛)을 구별한 데 뿌리를 두고 있다. 물체의 2차 성질은 1차 성질이 감각기관에 작용해 정신에 지각 가능한 관념을 만들어낸 결과로 나타나는 성질이다.

로크는 크기·형태·위치·운동 혹은 정지 등 지각가능한 관념은 있는 그대로의 물질적 대상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관념은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도 물질적 대상과 유사할 수는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은 관념이 물체를 표상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버클리의 현상론(정신과 지각가능한 관념만이 존재한다는 이론)은 이러한 회의적 문제에 대한 모범적 해결책이다.

그에 따르면 물체는 지각가능한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알려진다. 데이비드 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 역시 관념의 다발일 뿐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G. E. 무어와 버트런드 러셀, 독일의 실증주의자 모리츠 슐리크, 루돌프 카르나프, 오스트리아 태생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등은 흄을 따라 지각가능한 관념들을 감각자료라고 불렀다.

그들은 이 감각자료로부터 세계에 대한 논리적 구성물을 만들었다. 에트문트 후설은 지각가능한 관념들을 기술함으로써 현상학을 확립하고자 했다. 러셀과 미국 실용주의자 윌리엄 제임스는 중립적 단자로부터 정신과 물질 모두를 구성하려 했다. 이 체계들은 모두 데카르트가 제시한 관념의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하나의 영향은 데카르트의 '코기토'에서 비롯했다.

'코기토'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 폴 사르트르는 각 개인은 무(無)에서 존재로 나타나기를 선택한다고 주장했다. 사르트르는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주장한 무의식을 부정함으로써 자아가 의식적이라는 데카르트의 관점을 지지했다.

현대에 끼친 영향

데카르트 형이상학의 몇몇 측면은 20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미국 언어학자 놈 촘스키는 모든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본유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생리학자 존 C. 에클스와 영국 영장류(靈長類) 학자 윌프레드 E. 르 그로스 클라크는 정신을 비물질적 실체라고 전제한다.

20세기에 데카르트 이원론을 가장 강력하게 공격하기 시작한 사람은 영국 분석철학자 길버트 라일이다.

라일은 〈정신의 개념 The Concept of Mind〉(1949)에서 정신을 기계 속의 유령의 오류로 설명한다. 그는 정신-유령은 단지 육체의 지적 행동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의 많은 분석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라일은 존재와 실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문제는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실체들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무의미한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철학자 J. J. C. 스마트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그의 견해도 정신은 두뇌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유물론적이다.

미국 실용주의자 리처드 로티는 〈철학과 자연의 거울 Philosophy and the Mirror of Nature〉(1979)에서 확실한 지식에 대한 데카르트의 요구는 신에 대한 인간의 잘못된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로티는 데카르트의 전통을 따르는 철학은 신학에 대한 20세기의 대체물이고 신과 마찬가지로 휴식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영향은 매우 침투력이 강해 모든 서양철학자는 데카르트주의를 거부할 때조차도 데카르트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견해는 필연적으로 데카르트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반응이다. 또한 데카르트는 현대 수학의 시초에 서 있다. 그는 해석기하학을 고안함으로써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을 창시하는 데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다. 흄이 사실과 가치를 구분한 것도 데카르트가 수학적·객관적인 것을 감정적·주관적인 것보다 우위에 놓은 데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데카르트의 회의적·수학적 방법은 현대 과학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의 합리성은 서구인의 현대 의식을 형성하고 있다. 정신과 물질을 지배하려 했던 그의 강렬한 바램은 현대 과학과 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속적 목적과 일치한다. 이처럼 인간을 포함해 자연에 대한 지배를 강조하는 오늘날의 시대 분위기에서 '데카르트주의적'이라는 말은 과학·기술·사회에서 유물론적·논리적·무감정적·비인간적인 모든 것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