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학

기록문학

다른 표기 언어 記錄文學

요약 개인이 겪거나 보고 들은 사실을 별다른 문학적 장치없이 기록한 글.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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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류
    1. 개요
    2. 전기류
    3. 실기·야사류
    4. 유기·여행기류
    5. 잡기류
  2. 역사
    1. 개요
    2. 삼국시대
    3. 고려시대
    4. 조선시대
    5. 현대

문학 장르의 명칭은 아니다. 장르가 잡다하거나 분화되어 있지 않으며 사실성과 기록성을 중시한다. 기록문학도 문학인가, 기록문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자에 따라,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유동적이다.

종류

개요

우리나라 기록문학을 소재에 따라 분류하면 대개 전기류(傳記類)·실기(實記)·야사류(野史類)·유기(遊記)·여행기류·잡기류(雜記類)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기류

특정인물의 행적이나 일생을 기록한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한문학의 장르로는 전(傳)·행장(行狀)·사략(事略)·묘비·묘지·묘지명 등이 있으며, 근대 이후의 전기·인물평전·자서전 등도 포함된다. 전·행장·사략은 흔히 전장류(傳狀類)라고 불린다. 이 특정인물의 면모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일화나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하되 기록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가치평가가 들어가는 형식인 데 비해, 행장은 죽은 인물의 일생을 공식적으로 기술하며 기록자의 주관적인 견해를 넣지 않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묘지·묘비·묘지명 등은 흔히 비지류(碑誌類)라 일컫는 것으로서 죽은자의 일생을 기록하고 기념하는 실용문적인 성격을 많이 갖는다. 이밖에 제문(祭文)·조문(弔文)·애사(哀詞) 등의 추도문들도 죽은자의 행적을 회고하고 내용을 곁들이므로 기록문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중에서 기록자의 창의(創意)가 개입될 수 있고 대상인물의 개성이 생생하게 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장 많이 지닌 것이 전(傳)이다. 전의 유산은 풍부하고 다양하다. 뛰어난 승려들의 행적을 기록한 고승전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나타났으며, 조선시대에는 충신·효자·열녀·신선·예술가·협객·하층민 등의 전이 다양하게 창작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근대적인 전기의 창작으로 이어지면서 장편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실기·야사류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한 글이다.

공식적인 역사기록에는 미처 오르지 못한 사실들을 기록하거나 공식적인 가치평가와는 다른 각도에서 역사를 기술하고자 할 때 개인에 의해 씌어졌다. 사화와 당쟁을 겪으면서 자파(自派)의 입장에서 역사를 정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대부 사회에 일반화된 것도 야사 기록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임진·병자의 양란, 20세기 전반 등 역사적인 변혁기에 많이 나왔다. 이들은 '○○록', '○○일록', '○○일기' 등의 명칭으로 되어 있다. 조선 후기부터 20세기초에 걸쳐 한글이 널리 보급되면서 나온 가사의 형식을 빌려 역사적 경험을 기록한 작품들도 표기수단이나 장르는 다르지만 실기·야사류의 전통을 잇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유기·여행기류

개인적으로 또는 국가의 소임을 맡아 국내외를 여행한 기록들이다.

명승지를 찾아 호연지기를 기르고 도학의 세계에 침잠하는 산수기(山水記), 유배여행의 기록, 양란(兩亂)으로 인한 피난의 기록, 명(明)의 사신으로 간 여행기록인 40여 종의 조천록, 청(淸)의 기행인 100여 종의 연행록, 일본 기행인 20여 종의 해사록 또는 동사록이 있다. 국토지리에 대한 관심이 컸던 조선 후기와 서양 여행이 시작되고 서양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20세기 전반기에는 많은 여행기록물들이 쏟아져나왔다.

잡기류

사대부 문인이 전해 들은 일이나 생각을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기록한 것이다.

잡기나 잡록의 창작은 고려 후기에 시작되어 조선시대에 일반화되는데, 여기에는 사대부사회의 일화, 시화(詩話),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의 단편적 기록,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음담(淫談)까지 다양하게 실려 있다. 서술목적이나 표현형식이 엄격하게 요구되지 않았던 만큼 누구나 쉽게 편집하고 지을 수 있었으나 문학사의 발전에 따라 시의 비평·문학론과 관련된 것은 시화로, 민간설화는 초보적인 형태의 설화집으로, 세상사에 대한 관심은 야담으로 나누어졌다.

작가에 따라서는 이것저것 잡다하게 기록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밖에 일기도 기록문학에 포함시킬 수 있는데, 일기는 따로 분류하기보다는 내용에 따라 자전적인 것, 역사적인 경험을 기록한 것, 여행기록 등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한국문학

역사

개요

중국으로부터 한자를 수용하기 전 우리민족이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논란이 있으나 구체적인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우리나라 기록문학은 한자의 도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한문학). 그뒤 국가적인 사업으로서 공동체의 역사와 왕실의 위업을 기리는 기록물들이 이루어졌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경우 건국초에 어떤 사람이 기사 100권을 짓고 그것을 〈유기 留記〉라고 이름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고구려 건국의 위업과 관련된 고대의 전승을 기록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뒤에 나온 고구려의 〈신집〉, 백제의 〈서기〉, 신라의 〈국사〉 등과 광개토왕릉비·진흥왕순수비 등의 비문은 이른 시기의 기록문학이다.

한문을 읽고 쓸 수 있는 지식층이 늘면서 국가적인 기록만이 아닌 개인적인 체험과 견문을 담은 산문양식이 차츰 등장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신라시대의 기록문학은 전기류로서 김대문의〈고승전〉, 최치원의〈현수전〉·〈부석존자전〉·〈석이정전〉·〈석순응전〉 등이 있었고 김대문의〈계림잡전〉·〈화랑세기〉, 최치원의〈선사〉 등은 인물전과 야사의 성격이 혼합된 저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여행기로는 혜초의〈왕오천축국전〉이 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과거제가 정착되면서 한문학이 크게 발달했고 문인관료 집단에 의해 다양한 갈래의 한문학들이 정착되었다.

공적인 기록과 사적인 기록의 차이가 뚜렷하게 인식되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역사서술과 문인의 개인적인 기록이 분명히 구분되었다. 그러므로 고려시대 이후 기록문학의 범위는 개인적인 기록으로 국한해야 한다.

고려시대의 전기류로는 혁련정의〈균여전〉, 각훈의 〈해동고승전〉이 있다. 고려 후기 신진사대부의 등장과 더불어 전이 활발하게 창작되면서 이규보의〈백운거사전〉, 최해의〈자산은자전〉처럼 자전적인 전이 나왔다. 그밖에 이곡·이색·이숭인·정도전·권근 등의 신진사대부에 의해 자기 계층과 하층인물에 대한 전이 집중적으로 창작되었다.

묘지를 쓰는 풍속도 일반화되었다. 실기·야사류로서 전하는 것은 일연의 〈삼국유사〉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야사와 문학이 혼합된 기록이다.

고려 후기에는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 이제현의 〈역옹패설〉 등 잡기류가 처음 나타나 발달했다. 여기에는 문인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시화(詩話), 시작(詩作)과 관련된 일화, 시 비평, 작가론·역사적인 문제에 대한 견해 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기록문학은 양적·질적으로 크게 발전한다.

문인들의 문집에는 전·행장·묘지 등이 1~2편 이상씩 실려 있으며, 야사·잡기가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드물게 보이던 여행기록도 많이 나타났다. 조선 전기의 전기류는 주자학의 정착과 더불어 주자학의 이념에 맞는 충신·효자·열녀·도학자의 전이 많이 창작되었다. 이 시기 전기류에서 눈여겨볼 만한 작품은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남효온의 〈육신전〉이다.

조선 전기 집권세력인 훈구파 계열의 인물들이 세상사에 대해 다양한 관심을 갖고 흥미로운 이야기 위주의 기록물을 많이 남긴 데 비해, 사림파의 기록문학은 기록자의 입장이나 이념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많았다.

남효온의〈사우명행록〉은 김종직과 그 제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김정국의〈기묘록〉, 이사온의〈을사록〉은 각기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전 형식으로 기록한 것인데 그 보유록도 여럿 나왔다. 이들은 실기와 전기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조선 전기의 유기·여행기로서 눈여겨볼 만한 작품은 김종직의〈두류기행록〉, 김일손의〈속두류록〉, 이이의〈풍악행〉, 조식의〈유두류록〉 등이 있다.

유배의 기록으로는 이주의〈금골산록〉, 김정의〈제주풍토록〉이 있다. 최보의〈금남표해록〉은 일종의 표류기로서 당시 중국의 사정을 흥미롭게 전하고 있다. 조선 전기의 잡기류로는 서거정의 〈필원잡기〉, 성현의 〈용재총화〉, 이육의 〈청파극담〉, 어숙권의 〈패관잡기〉 등이 있다. 문학·민속에 관한 이야기·사대부일화·민간설화 등이 다양하게 실려 있으나, 부분적으로는 시화와 민간설화가 잡기로부터 나뉘어 독립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조선 전기에 본격화된 야사·잡기류는 조선 후기에도 계속 창작되어 〈대동야승〉·〈청구패설〉·〈패림〉 등의 방대한 총서로 집대성된다.

임진·병자의 양란을 겪으면서 기록문학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작자의 체험이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넘어 그가 속한 공동체 일반의 보편적 경험과 만나면서, 그리고 그 경험이 심대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면서 기록문학의 질도 높아졌다. 임진·병자의 경험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생생하고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임진왜란의 기록은 유성룡의〈징비록〉, 이로의 〈용사일기〉, 이순신의〈난중일기〉 등이 대표적이며, 병자호란의 기록 가운데는〈남한해위록〉·〈병자일기〉 등 하급관원이 남긴 기록도 있다.

양란 이후 조선사회는 중세적인 지배질서가 무너지면서 일상적인 경험의 폭이 확대되었고, 변화하는 현실을 주목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찾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그러한 모색은 다른 어떤 문학 장르보다 기록문학에서 더 다양하고 심각하며, 폭넓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평민층의 문화적 역량이 성장하면서 한글로 된 기록문학이 많이 창작·보급되어 국문 기록문학의 시대를 준비했다.

조선 후기의 전기류는 주자학적인 인간상을 내세운 인물전이 여전히 창작되는 한편,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인물을 다룬 일사전(逸士傳), 중세 질서에 대한 회의에서 신선사상을 믿는 인물을 다룬 신선전이 나왔다.

중인 이하층 인물들의 뛰어난 행적을 기록한 〈호산외기〉·〈이향견문록〉·〈희조일사〉 같은 전기집에서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중세 신분제의 모순을 비판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도시의 확대와 상공업의 발달, 상업 예술의 등장으로 생겨난 새로운 인간유형인 협객, 서민 예술가의 전도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허균·박지원·김려·이옥 등이 이 시기의 뛰어난 전 작가이다.

정약용이 지은 권철신의 묘지명 〈자찬묘지명〉은 조선 후기 사상사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국문전기로서는 천주교 순교자의 전기집인 〈기해일기〉와 〈이벽전〉이 있다. 행장이나 묘지명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나왔으나 기록문학으로서 뛰어난 가치를 가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실기·야사류는 전대에 이어 계속 창작되었다.

양란을 겪으면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려는 욕구가 커졌으며, 당쟁의 과정에서 반대파의 역사 해석과 평가에 대항하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야사류가 저술되었다. 여기에는 광해군, 인조 때의 기록인〈광해군일기〉·〈계해정사록〉·〈정무록〉·〈청백일기〉·〈연평일기〉·〈응천일기〉 등이 있다. 국문 실기류인〈계축일기〉·〈인현왕후전〉·〈한중록〉은 한문 기록문학을 능가하는 섬세하고 구체적인 표현법을 개척했다.

해외여행의 기록은 〈조천록〉·〈연행록〉·〈해사록〉 등 방대한 유산이 있다.

그중에서도 홍대용의 〈담헌연기〉,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국외사정의 소개를 통해 중화(中華) 중심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민족현실을 반성적으로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조선 후기 지성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밖에 김육의 〈조경일록〉, 김창업의 〈연행일기〉, 남용익의 〈부상록〉, 신유한의 〈해유록〉 등도 뛰어난 기행문학이다.

국내여행의 기록으로는 김창협의 〈동유기〉·〈송경유〉, 박제가의 〈묘향산유기〉, 박종의 〈백두산유록〉·〈동경유록〉·〈청량산유록〉 등이 있어 사대부들의 국토지리에 대한 관심과 자연철학을 엿볼 수 있다.

한문 유배기록으로는 이건의 〈제주풍토기〉, 이형상의 〈남환박물지〉, 국문 유배기록으로는 유의양의 〈남해문견록〉·〈북관노정록〉, 이세보의 〈신도일기〉 등이 있다.

개인의 관심사를 자유롭게 기록한 잡기류는 부분적으로 야사나 야담과 겹치기도 하면서 지속적으로 나왔다. 이덕형의 〈죽창한화〉, 김시양의 〈자해필담〉·〈하담파적록〉, 홍만종의 〈순오지〉 등이 있다.

현대

20세기에 들어와 기록문학의 중심은 한글기록으로 옮겨갔으며 작자층도 거의 사회 전계층에 걸치게 되었다.

서양 및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기록물들은 투쟁의 경험을 정리하고 대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여러 차례의 의병투쟁 경험이 한문·국한문·국문 등으로 정리되었고, 갑신정변의 주체였던 김옥균의 〈갑신일록〉, 개화파의 입장에서 서양문명을 소개한 유길준의 〈서유견문〉, 지조있는 선비의 입장에서 개항기의 민족현실을 날카롭게 관찰한 황현의 〈매천야록〉 등이 이 시기 기록문학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

애국계몽운동의 한 방법으로 신문·잡지에 창작 발표된 역사 전기물 가운데는 신채호의 〈을지문덕〉·〈이순신전〉·〈최도통전〉, 박은식의 〈안중근전〉·〈연개소문전〉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기록문학은 비록 근대문학의 주변 영역으로 밀려나기는 했으나 민족사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훌륭한 작품을 남겼으며 올바른 역사인식을 형성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민족해방운동에 투신한 인물들의 고난과 투쟁의 기록 가운데 김구의 〈도왜실기〉·〈백범일지〉, 장준하의 〈돌베개〉, 김태준의 〈연안행〉 등은 기억할 만하다. 1941년 뉴욕에서 간행되어 1984년에야 한국어로 출판된 김산의 〈아리랑〉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감동적인 기록이다.

1950년대초의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빨치산의 활동은 1980년대에 와서 이태의 〈남부군〉 등으로 뒤늦게 기록되었다.

1970~80년대에는 지식인들의 민중에 대한 관심의 확대, 민중운동의 성장과 더불어 수많은 르포·수기가 등장했고 이것들은 대중의 사회의식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 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은 모순의 본질을 드러내기보다는 세태묘사에 치중한 한계가 있으나 소외계층의 삶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의의가 있으며,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 석정남의 〈불타는 눈물〉,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 등은 노동자 자신의 수기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같은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록, 〈분단을 뛰어넘어〉를 비롯한 일련의 북한기행문 등은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다룸으로써 충격을 주었다. 민중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다룬 조영래의 〈전태일평전〉도 기록문학의 한 봉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