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릭

배우활동의 시작

개릭은 신분을 밝히지 않기 위해 익명으로 직업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1741년 3월, 배역을 맡은 배우가 갑자기 발병하여 굿맨스필즈에 있는 자그마한 무허가 극장에서 어릿광대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뒤 곧 극장주가 여름 공연을 위해 극단을 이끌고 입스위치로 떠나자 그곳에서도 토머스 서던의 작품 〈오루노코 Oroonoko〉에서 얼굴을 검게 칠하고 기품있는 미개인 아보안 역을 맡았고, 조지 파쿼의 작품 〈변덕쟁이들 The Inconstant〉에서 뒤르테트 대위 역을 맡았다. 그후 몇 가지 역들을 잘 해냈지만 그가 드루어리 레인과 코벤트 가든 두 극장에 출연하려 하자 플릿우드도, 코벤트 가든의 경영자였던 늙은 존 리치도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 결국 다시 굿맨스필즈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1740년 어머니의 임종시에도, 당시만 해도 일반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던 직업배우가 되었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감히 말하지 못했다. 1741년 리처드 3세 역으로 처음 출연하여 놀라운 성공을 거둔 그날 밤에야 비로소 형 피터에게 자신이 배우라는 사실을 알렸다.

젊고 이름없던 한 배우가 셰익스피어의 주요한 비극을 맡아 즉각 성공을 거둔 일은 연극사에 남아 있는 소설 같은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개릭의 신화는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프랑스 전통에 따라 거창한 암송과 위엄이 있는 척 점잔을 빼는 태도에 식상해 있던 관객들은 새로운 자연주의적 양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으므로, 곧 이 총명한 청년이 어떠한 역도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개릭은 새뮤얼 리처드슨의 소설을 극화한 〈파멜라 Pamela〉, 토머스 오트웨이의 〈고아 The Orphan〉·〈보존된 베니스 Venice Preserved〉, 콜리 시버의 〈남자는 사랑이 만든다 : 멋쟁이의 행운 Love Makes a Man : or, The Fop's Fortune〉·〈리어 왕 King Lear〉, 자신이 직접 쓴 익살극 〈거짓말쟁이 심부름꾼 The Lying Valet〉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보였다.

그가 피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하원에서 가장 위대한 연설가로 인정받는 피트 씨가 나더러 영국 무대가 낳은 최고의 배우라고 하더군요"라는 말이 씌어 있으며, 알렉산더 포프는 "배우로서 그 젊은이와 겨룰 만한 자는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토머스 그레이는 호레이스 월폴에게 하룻밤에도 수십 명의 공작들이 굿맨스필즈에 다녀간다고 편지에 썼다.

착실한 사람이 못되었더라면 그처럼 엄청난 찬사를 받으면서 수월하게 성공을 거두었을 때 타락할 수도 있었겠지만, 개릭은 몹시 긴장하는 민감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상식을 따라 행동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지구력도 대단했다.

그러자 플릿우드는 그를 드루어리 레인에 붙잡아두기 위해 이전까지 어떤 연기자에게 제안했던 것보다 더 많은 봉급을 그에게 주었다. 1742~43년의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개릭은 더블린으로 건너가 스목 앨리에 있는 극장에 출연했는데, 그곳에서 전부터 사랑했고 결혼하기를 원했던 펙 워핑턴이라는 매혹적인 여성과 공연했다.

여기에서 거둔 성공은 대단한 것이었고, 1742~45년 드루어리 레인에서도 승승장구를 계속하여 햄릿, 벤 존슨의 〈연금술사 The Alchemist〉에 나오는 순진한 아벨 드루거, 조지 파쿼의 〈멋쟁이 전략 The Beaux' Stratagem〉에 나오는 입심좋은 프랜시스 아처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극장 영업허가증이 시효가 다 되어가면서 플릿우드는 파산하고 말았다.

1743년 개릭은 체불된 600파운드의 봉급으로 플릿우드를 고소했고 배우들의 파업을 주도했는데, 그 여파로 매클린과 다투기도 했다.

1747년 두 사람은 화해했으나 매클린의 전기작가는 개릭이 허영심 많고 탐욕스러우며 비열하고 오만불손하다고 헐뜯는 매클린의 허튼 소리를 적어놓아, 개릭에게 불리한 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745~46년 겨울 더블린에서 개릭은 극작가이자 배우·감독인 토머스 셰리던과 함께 왕립극단의 연출을 맡았다. 또한 이 기간에 드루어리 레인 극장의 공동소유주이자 경영자 자리를 놓고 협상을 시작했다.

1746~47년 시즌에 개릭은 코벤트 가든에만 출연했고, 존 리치도 고전연기에 뛰어났던 제임스 퀸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즌은 두 사람의 대결로 일관되었다.

드루어리 레인 극장의 개혁

1747년 4월 개릭은 런던 친구들의 도움으로 드루어리 레인 극장을 세내고 극장 내부를 장식하며 허가증을 갱신하는 데 자신이 부담해야 할 8,000파운드를 모았다.

그의 동업자 제임스 레이시는 코벤트 가든에서 무대감독을 하던 사람으로, 배우로서는 실패했으나 흥행에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개릭은 희곡과 배우들을 선정하고 직접 출연하는 일을 맡았고, 레이시는 연약하지만 헌신적인 개릭의 동생 '조지 형제'와 함께 경영을 담당했다. 새 단장을 한 드루어리 레인 극장이 1747년 9월에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매클린이 샤일록으로 나왔고 존슨이 서두 대사를 맡았다.

그 대사는 셰익스피어 작품에 전념하고 연극과 연기자들을 개혁하겠다는 제작자 개릭의 방침을 천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개릭은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열렬한 연기를 보여준 지난 몇 달 동안 그는 과로한 탓으로 여러 가지 병에 시달렸고, 펙 워핑턴의 부정(不貞)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고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극단의 단원들에게 자신의 규칙이 그들이 익숙해 있던 그 어떤 것보다도 엄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극단에 소속되어 있던 명배우들 중에는 매클린과 워핑턴, 개릭이 두려워한 사람으로 알려진 유일한 여배우이자 가까운 친구였던 키티 클라이브 등이 있었다.

그는 배우들은 물론 관객들까지도 바꾸어놓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무대 뒤쪽이나 무대 위에 관객을 앉히는 일을 금지시키고, 일찍 자리를 뜨거나 늦게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깎아주던 관행을 폐지하려 했다. 객석 맨 꼭대기에 있던 관현악단을 아래쪽으로 옮기고 관중석을 넓힐 계획도 마련했다.

연기자들이 걸어나와 자세를 취하고 긴 독백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던 막 앞의 돌출무대는 새롭게 등장한 자연스러운 연기방식에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조명도 도입하려 했으나 1765년이 되어서야 반사경이 있는 석유등을 각광과 측광(側光)으로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가 희곡을 선택하고 연극을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왕정복고 시대의 조잡한 언어와 효과들을 제거한 순수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더 많이 무대에 올리려고 했으므로, 개릭이라는 이름은 셰익스피어와 함께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죽는 장면을 덧붙이려 하기도 했고, 토머스 오트웨이나 콜리 시버 같은 왕정복고 시대 극작가들의 각색으로 상실했던 많은 원래의 대사들을 되살리려 했다.

그는 네엄 테이트가 1681년에 각색한 〈리어 왕〉에서 광대를 없애고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방식으로 공연했다.

〈한여름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에서는 익살스러운 장인(匠人)들을 빼고, 〈햄릿 Hamlet〉에서는 무덤파는 사람들과 오필리아의 비극적 운명을 삭제하여 무대에 올렸다. 〈겨울 이야기 The Winter's Tale〉에서 각색한 〈플로리젤과 페르디타 Florizel and Perdita〉와 드라이든이 각색한 〈폭풍우 Tempest〉는 유쾌한 경가극으로 고쳤고, 카테리나 역이 키티 클라이브에게 잘 들어맞도록 〈말괄량이 길들이기 The Taming of the Shrew〉도 다시 고쳐 썼다.

보통 개작된 셰익스피어 작품에 익숙해 있던 관객들은 개릭이 개작한 작품들을 순순히 받아들였는데, 그런 개작들의 장점은 작품을 당시의 기호에 맞춤으로써 적어도 계속 연극을 공연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개릭의 연기와 배역선정은 셰익스피어의 의도에 더 가까우면서도 관객들에게는 새롭게 느껴지도록 인물을 해석하는 데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개릭은 1749년 6월 22일 에바 마리아 바이겔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빈의 오페라 무희로서 열렬한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

라 비올레트라는 예명으로 활동한 그녀는 1746년 헤이마켓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관객을 매료시켰고, 1748년에는 드루어리 레인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개릭의 요구를 거절했으나 이듬해 개릭과 결혼한 뒤로는 은퇴하여 개릭 부인으로서 만족하고 작품활동은 하지 않았다. 비록 아이는 없었으나 결혼생활은 행복했고, 그들 부부는 손님을 환대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성공과 실패

드루어리 레인에서 개릭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중요한 배역들은 대부분 연기해보았고 모두 호평을 얻었다. 키가 좀 작고 당시에는 살이 쪘기 때문에 젊은 인물의 역할은 포기하고 아벨 드루거, 리어 왕, 맥베스, 리처드 3세 등 좀더 나이든 역을 맡아 명성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무대 안에서나 밖에서나 표정이 풍부한 얼굴, 가무잡잡한 안색, 감정이 풍부하고 꿰뚫는 듯한 빛나는 눈빛으로 유명했다. 그는 작품의 소재를 찾기 위해 법정이나 국회의사당을 자주 찾았고, 심지어는 불행을 당한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비평가들은 그가 비극과 희극 중 어디에서 더 뛰어난가에 관해 견해가 엇갈렸으나, 개릭은 언젠가 한 젊은 연극지망생에게 희극이야말로 더 능숙한 기교를 요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궁핍에 빠져 있던 드루어리 레인 극장이 재정적으로 놀랍게 성공하도록 이끌었고 1747~48년, 1762년에는 자신의 개작들과 극단 단원들의 연기로 런던에서 가장 번창한 극장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도 걸림돌은 있었다. 그는 지극히 역사적이고 고전적인 비극을 연기자들에게 강요했으나 재난을 성공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1755년 11월 불량배들이 난입하여 극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을 때, 그는 자신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던 관중에게 용감하게 맞섰다. 1769년 난데없이 비가 많이 내려 기대하던 스트랫퍼드 온에이번 셰익스피어 기념축제를 망쳐놓자, 그는 런던 공연을 위해 의상과 각본을 재정비한 후 초만원을 이룬 관중 앞에서 〈The Jubilee〉를 공연하여 이윤을 남겼다.

그는 남몰래 많은 자선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탐욕스럽다고 비난받았고, 허영심이 지나쳐 거대한 저택에 살기 좋아한다고 비웃음을 샀다.

그는 성미가 급하며 독설적인 작가나 배우와 일련의 '지상전'(紙上戰)에 말려들었는데, 찰스 처칠은 개릭을 칭찬하다가 공격하기도 했고 새뮤얼 푸트는 사치스러운 셰익스피어 축제를 비웃었다. 개릭은 초기에 버킹엄 공작이 쓴 〈리허설 The Rehearsal〉이라는 작품 속에서 동료 배우들을 희화화했던 일 때문에 큰 반감을 사기도 했다. 코벤트 가든에서 리치와 경쟁했던 일은 쓰라린 것이었지만 때로는 새로운 성공을 안겨 주기도 했다.

리치는 크리스마스 무언극을 자랑으로 내세웠으나, 폴란드계의 젊은 무대미술전문가였던 필립 제임스 드 루테르부르의 탁월한 효과와 조명 덕분에 개릭의 무언극은 리치의 것을 훨씬 능가했다. 윌리엄 보이스가 음악을 맡았던 자신의 크리스마스 호화극 〈아를르켕의 침입 Harlequin's Invasion〉(1759)을 위해 그는 애국적인 노래〈떡갈나무의 심장 Heart of Oak〉을 쓰기도 했다.

〈떡갈나무의 심장〉은 아마도 개릭의 것으로 기억되는 유일한 시로서 연극에 부쳐진 노래들과 펙 워핑턴에게 보낸 시들(깊이 사랑에 빠진 젊은이가 쓴 초기의 것들로 '적나라한 진실'을 폭로하는 〈워핑턴 부인에게 보내는 서한 Epistle to Mrs. Woffington〉), 그리고 아내에게 바친 여러 시에도 시인으로서의 그의 자질이 드러나 있다.

극작가로서 그는 20여 편의 희곡과 오락물을 썼고 수많은 작품들을 각색했다. 그러나 그는 특정 극단이나 관객을 위해 썼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가 쓴 소극(笑劇)과 광대극들은 활기 넘치는 것들이었으나 무대에는 걸맞지 않았다.

조지 콜먼과 함께 쓴 〈비밀결혼 The Clandestine Marriage〉(1766)만이 아직도 성공적으로 재공연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쓴 편지들은 계속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생애에 걸쳐 많은 편지를 썼는데, 마치 연기를 하는 것처럼 쉽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다재다능하게 써내려갔다.

그 편지들은 그의 분망한 삶의 소상한 것들, 당대의 얽히고 설킨 연극사, 그리고 그의 성격과 견해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말년

1763년 개릭 부부는 대륙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귀족 친구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관광했는데, 개릭 부인은 디스크로 보이는 병에 걸려 고통을 받았고 개릭은 베네치아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뮌헨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빈사상태였다. 파리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개릭은 프랑스의 문학가들과 연극계 명사들, 셰익스피어의 팬들, 철학자들과 교분을 쌓았다.

1765년 봄 영국으로 돌아온 뒤 더이상 새로운 역을 맡지 않았고, 10년 뒤에는 드루어리 레인 극장의 특허권 중 자기 몫을 팔았다.

여러 고별공연에서는 햄릿, 베네딕, 리처드 3세, 리어 왕 등 셰익스피어 작품의 4가지 역과 아벨 드루거 역, 존 벤부르그 경의 〈약오른 아내 The Provok'd Wife〉에 나오는 존 부르트 경 역, 〈멋쟁이 전략〉의 아처 역, 마지막으로 수재나 센틀리버의 〈여자가 비밀을 지키다니 놀라운 일 The Wonder : A Woman Keeps a Secret〉에서 돈 펠릭스 역을 맡았다.

개릭의 은퇴생활은 행복했다.

런던에서는 존슨 문학클럽과 브룩스 문학 클럽의 회원이었으며 햄프턴에서는 지방 유지였고, 정원과 도서관을 갖춘 집에서 개, 조카들과 함께 생활했다. 평생 신장병으로 고생했던 그는 1779년에 새해를 보내기 위해 노샘프턴셔 주 알솝 파크의 오랜 친구인 스펜서 경 부처의 집에 머무르던 중 발병했고, 그후 얼마 안되어 아델피테라스에 있던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개릭은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의 시인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리치필드 성당의 한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존슨의 유명한 말이 새겨져 있다.

"온 세상의 기쁨을 앗아가고 대중에게 무해한 즐거움을 준 원천을 메마르게 한 당신의 죽음 때문에 나는 실의에 빠졌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