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위임통치와 독립국가로서 레바논 공화국 시대

프랑스의 위임통치와 독립국가로서 레바논 공화국 시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레바논은 프랑스 군정의 통치를 받았다. 1920년 베이루트와 일부 해안도시, 베카계곡(Beqaa Valley)를 포함한 지역이 레바논 자치구역에 포함되어 대레바논(Greater Lebanon)지역이 형성되었다. 1943년 대레바논은 레바논공화국의 이름으로 독립 국가를 선포했다. 정부는 기독교인과 무슬림 간의 국민협약(National Pact)에 기반하여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국무총리는 수니파 이슬람, 그리고 국회의장은 시아파 이슬람에서 선출되도록 결정하였다. 이 국민협약은 문서화 되지 않은 무슬림과 기독교 지도자들 간의 협정이다.

초대 대통령으로 비샤라 알 쿠리(Bishara al-Khuri, 1890~1964, 재위 1943~1952) 선출되었다. 그는 프랑스의 과거 흔적을 지우기 위해 헌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프랑스 정부의 개입으로 실패하였다. 1952년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카밀 샴운(Camille Chamoun, 1900~1987, 재위 1952~1958)은 이스라엘을 후원하는 서양에 친화적 행보를 보였다. 이에 아랍민족주의를 추종하는 국내 이슬람 세력이 크게 반발하였다. 특히 1958년 시리아와 이집트가 형성한 아랍연합공화국 연합에 샴운 대통령이 합류하지 않자 북서부 지중해 연안 도시 트리폴리에서 무슬림들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제3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푸아드 셰합(Fouad Chehab, 1902-1975, 재위 1958~1963)은 무슬림들의 불만을 진정시키는 정책을 대내외적으로 지속하며 종파 간 안정적 체제를 형성했다. 이 시기에는 전 정권부터 이어진 경제 호황이 지속되었다.

1970년대 들어서 도시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격차가 형성되었고, 이는 정치적 양극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1970년대 초 요르단에서 축출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이 양극화는 극화되었다. 팔레스타인 난민 대부분은 무슬림으로 레바논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속했고, 이들의 존재로 인해 레바논의 정치·종교적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역참조항목

레바논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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