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론파

마론파

[ Maronites ]

요약 귀일교회에 속하는 한 종파로, 그 시초는 AD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마론파는 레바논에서 가장 유력한 종교 집단의 하나이다.

오늘날 마론파는 150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레바논에 약 85만 명이 분포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 사이프러스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본래 마론파는 아람어(Aramaic)를 사용했으나, 이슬람이 전파되며 약 9세기 경부터는 아랍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마론파 교회에는 여전히 시리아계(系) 아람어가 예배와 성서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마론파의 근거지인 안티오크(Antioch) 지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초기 기독교 세력이 활동하던 곳이었으며, AD70년에 예루살렘이 몰락한 뒤 기독교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뒤로 안티오크 지역은 기독교의 5대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기독교적 환경에서 수도자 성 마룬(St. Maroun : ? ~ 423)이 은둔자적 명상과 신앙 생활을 전파하며, 이를 따르는 신자들을 중심으로 마론파가 형성되었다. 성 요한 마론의 사후 마론파는 그를 기리며 수도원과 교회를 설립했으며, 산악 지역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유지했다.  

7세기 말엽에 이르러 동지중해안 지역에 이슬람이 전파되자 마론파는 이를 피해 레바논 산맥 안으로 숨어들었다. 이 때 마론파를 이끈 지도자는 비잔틴 교회로부터 최초의 마론파 주교로 임명받은 요한 마론(John Maron, 혹은 Joannes Maro : ? ~ 707)이었고, 그의 지도 하에 여러 기독교 유파들이 마론파 교회로 통합되어 이슬람 세력에 함께 저항했다. 비잔틴 황제 콘스탄틴 4세는 마론파에게 종교적, 군사적, 정치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이슬람 세력의 공격을 막아낸 마론파는 AD685년에 비잔틴 교회에서 분리해 나와 독자적인 교회를 세웠으며, 직접 주교를 임명하기 시작했다. 또한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세르기우스(?~638) 교리, 즉 특이한 그리스도론(論)인 단의론(單意論)을 따랐기 때문에 이단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 후 약 400년간 로마 교회와 관계가 소원했던 마론파는 12세기에 들어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자 이슬람 제국에 맞서 십자군 측에 합류하며 로마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했다. 십자군 전쟁에 기여한 마론파에게 로마 교회가 1182년에 그 정통성을 인정해 주어 가톨릭 교회의 일원이 되었으며, 마론파 고유의 예배 전통을 지키는 것도 허용되었다. 제 1차 십자군 원정 이후로도 마론파는 맘루크 왕조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탄압을 받았으나, 로마 교회 및 유럽 국가들의 지원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했으며, 동지중해 연안에서 가톨릭 세력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1585년에는 로마 교황과 예수회(Jesuits)의 후원으로 로마에 마론파 대학이 설립되었으며, 이 대학은 이후 350년간 유럽 마론파 신자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16세기 중반 맘루크 왕국이 멸망하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마론파 거주지를 통치하게 되었으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은 마론파에게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자치구를 설치해 주어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다. 특히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마론파가 이슬람의 한 종파인 드루즈파(Druze)와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되자, 1635년, 군사력을 투입하여 드루즈파를 진압하며 마론파에게 종교적 관용을 보였다. 이러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종교적 관용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에 의한 기독교 박해가 증가하자 1638년, 프랑스는 마론파를 포함하여 오스만투르크 제국 내의 기독교 집단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후 마론파는 프랑스와 오늘날까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프랑스와의 이러한 관계는 훗날 마론파를 주류로 하는 레바논 독립 국가 설립으로 이어졌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동지중해 연안 지역에 대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다양한 소수종교집단 간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마론파와 드루즈파가 있었다. 1860년 5월 31일, 드루즈파의 공격으로 마론파 신자 약 150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마운트레바논 지역은 전쟁상태에 들어가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자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마론파에게 자치를 허락해 주었으며, 마론파에 대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마론파는 자진해서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받아들였으며, 프랑스는 1926년 마운트 레바논의 마론파 지도자들과 협력하여 기독교 지역을 확장시켰다. 그 결과 무슬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베카 계곡(Beqa Velly)에서부터 트리폴리, 베이루트, 티레(Tyre)까지 기독교 지역이 확대되었으며, 프랑스의 통제 하에 1943년 레바논으로 분할 독립되었다. 독립 당시, 레바논을 구성하고 있던 4개 종파, 마론파, 수니파 이슬람, 시아파 이슬람, 그리스 정교 등이 국민협약을 통해 권력을 분리했으며,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마론파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권한을 갖는 등 가장 많은 권력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