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플레이어의 역사

포토플레이어의 역사

요약 포토플레이어(Photoplayer)는 1908년 영국의 팰리스 극장에서 시작되었다. 무성영화 상영 시 사용하기 위하여 존 컴튼 오르간사의 오르간을 주문하였는데 이것을 최초의 포토플레이어로 볼 수 있다. 포토플레이어는 191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짧은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소형 영화관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악기였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무성영화에 최적화된 포토플레이어는 유성영화가 등장한 1930년대 이후로는 쇠퇴하였다. 전성기에 1만여 대 이상 제작된 포토플레이어는 1930년대 이후 방치되거나 파손되어 현재는 백 대 이하만 남아있다.

1. 포토플레이어의 탄생

포토플레이어는 1908년에 처음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1951년 발행된 『극장 오르간 리뷰』(Theatre Organ Review)에 실린 글 “극장 오르간의 발전”(The Evolution of the Theatre Organ)에서는 포토플레이어의 시초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1908년 영국의 포터리스 디스트릭트(Potteries District) 지방의 팰리스 극장(Palace Theatre)에서 무성영화의 반주를 하던 피아니스트와 트리오 연주자들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극장주는 이들을 내보내고 대신 오르간을 들여오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존 컴튼 오르간사(John Compton Organ Company)에 연락을 하여 바로 배달할 수 있는 오르간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존 컴튼 오르간사에서는 전기로 작동하는 자동피아노를 운송해주었는데 이 자동피아노에는 여섯 개의 오르간 파이프와 드럼이 달려있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포토플레이어가 되었다. 존 컴튼 오르간사는 이 포토플레이어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 포토플레이어의 전성기

이렇게 자동피아노를 적당히 개조한 포토플레이어는 무성영화가 전성기를 맞으며 1910년대 후반에서 1920년대 중반까지 큰 인기를 얻었다. 영화 반주를 위해 오케스트라를 고용할 능력이 있는 대형 영화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관들은 적은 비용으로 영화에 필요한 음악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포토플레이어를 애용하였다.

1) 포토플레이어 제작사와 모델

아메리칸 포토플레이어사(American Photoplayer Company)에서는 ‘Fotoplayer’라는 모델을 생산하였다. 이 모델이 포토플레이어의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 시카고의 오퍼레이터스 피아노사(Operators Piano Company)에서는 ‘Reproduco’라는 모델을, 바르톨라 악기사(Bartola Musical Instrument Company)에서는 ‘Bartola’를 제작하였다. 그 외 시버그사(Seeburg)와 월리처사(Wurlitzer)도 포토플레이어를 제작하였다.

시버그사의 대표적인 모델은 ‘시버그 스타일 R’이다. 이 모델에는 두 개의 사이드 체스트가 있으며 건반도 2단으로 되어있다.

시버그 스타일 R

시버그 스타일 R

월리처사는 1913년부터 포토플레이어 사업에 뛰어들어 ‘Theatre Orchestra’, ‘Duplex Orchestra’, ‘One Man Orchestra’, ‘Wurlitzer Style K’, ‘Pipe Organ Orchestra’ 등을 제작하였다.

몸체가 큰 포토플레이어는 매우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월리처사의 듀플렉스 오케스트라(Duplex Orchestra) 모델은 트럼펫의 음역이 3옥타브나 되었고 스톱들은 오르간처럼 베이스(bass) 음역, 트레블(treble) 음역으로 나뉘었다. 플루트의 베이스 섹션은 현악의 트레블 섹션과 함께 연주될 수 있었다. 몸체가 큰 포토플레이어에는 파이프뿐 아니라 의 자유리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피아노, 오르간 파이프, 유율 타악기, 자유리드의 조합은 당시 에어컨이 없는 극장에서 음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메리칸 포토플레이어사의 모델인 ‘Fotoplayer Style 50’이 1920년에 10,750달러에 설치되었는데, 이 모델에는 여덟 개의 파이프가 달려있고 플루트 다모르(Flute A’mour), 비올 드 오케스트라(Violed’Orchestre), 복스 미스티카(Vox Mystica), 플루트(Flute), 겜스호른(Gemshorn), 코넷(Cornet), 멜로디아(Melodia)의 음색을 낼 수 있었다. 오르간으로는 65음을 연주할 수 있었고 오케스트라 벨, 실로폰, 대성당 차임(Cathedral chime)을 비롯하여 말발굽 소리 등 사운드 효과를 낼 수 있는 장치들이 달려있었다.

2) 포토플레이어 광고

포토플레이어의 수요가 늘어나자 각 제조사들은 영화관의 소유주들을 타겟으로 하는 다양한 광고를 제작하였다.

어떤 포토플레이어의 광고에는 “당신 극장의 문제를 해결해드립니다.”라는 카피 문구에 “이 포토플레이어 하나로 최고 수준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1916년 월리처사의 광고에는 자사에서 제작한 포토플레이어가 영화관에서 매일 연주되는 것을 “매일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월리처의 뮤직을 듣는다.”고 표현하며 어필하였다.

아래는 아메리칸 포토플레이어사의 모델 ‘Fotoplayer’의 광고를 재현한 것이다. “두 개의 유니트에서 놀라운 오케스트라와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나오며 소규모 영화관을 위해 특별 제작되었다.”라고 되어있다.

‘Fotoplayer’의 광고(재현)

‘Fotoplayer’의 광고(재현)

3) 짧은 인기를 얻었던 포토플레이어

포토플레이어는 생명이 짧았지만 사용되는 기간만큼은 집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1910년대 후반부터 1925년까지 약 8천 대에서 1만 대 이상의 포토플레이어가 생산되었다. 영화관에서 매일 매시간마다 포토플레이어가 연주되었다. 전기 모터로 작동하는 포토플레이어가 나오면서부터 영화의 중간 휴식시간에 피아노롤을 재생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음악의 멜로디를 연주해 주기도 했다.

특히 상영시간이 짧은 영화, 코미디 영화를 상영할 때 포토플레이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그 외 비중있는 중요한 영화에서는 오케스트라를 보충하는 역할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래의 사진은 무성영화 시대의 대표적인 코미디언 벤 터핀(Ben Turpin, 1869~1940)이 1922년 어느 영화관의 포토플레이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포토플레이어 앞에 앉은 벤 터핀, 1922년

포토플레이어 앞에 앉은 벤 터핀, 1922년

4) 신문에 실린 포토플레이어 관련 기사

포토플레이어는 특별한 기술 없이도 작동시킬 수 있었지만 음악적인 감각이나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연주하여 영화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한 픽처롤을 영화의 분위기에 맞지 않게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Everyone's』라는 당시의 신문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 신문에서는 영화관에서 포토플레이어 연주자가 영화를 망쳐 놓는 경우가 많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영화의 제목은 ‘무명의 용사를 위한 장례’(The Burial of the Unknown Warriors)였는데 이것을 반주하는 포토플레이어에서는 활기찬 렉타임(ragtime)이 나왔다. 영화 상영 전 나온 뉴스 때 썼던 배경음악을 다시 사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전사자를 기리고자 하는 엄숙한 분위기의 영화는 우스꽝스럽게 되어 버렸다. 사려 깊지 못한 음악 담당자가 많은 관객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Everyone's, 1921년 5월 11일)

또한 포토플레이어 연주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기사가 실리기도 하였다.

“형편없이 연주되는 자동피아노(포토플레이어)는 정말 최악이다; 반면 이것을 잘 연주하면 청중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준다. 형편없는 음악이 좋은 영화들을 망치고 있다. 우리는 매주 이런 일을 겪는다. 돈을 조금만 더 쓰면 유능한 연주자가 와서 분위기에 맞는 적합한 음악의 픽처롤을 골라서 연주할 텐데 말이다.” (Everyone’s, 1922년 6월 7일)

3. 포토플레이어의 쇠락

무성영화와 함께 인기를 누리던 포토플레이어는 1928년 이후 경제 대공황과 유성영화의 등장으로 짧은 전성기를 마감하고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하여 1930년대에는 완전히 시장에서 사라졌다. 1920년대에 사용되던 만 여대의 포토플레이어들 중 대다수는 1930년대와 40년대를 지나며 방치되거나 파손되었다.

오늘날에는 과거에 사용되었던 포토플레이어 중 1%에 못 미치는 백 대 이하의 포토플레이어만 남아있으며 연주 가능한 상태의 포토플레이어는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조 리나우도(Joe Rinaudo)는 오늘날까지 활동하는 포토플레이어 복원 기술자 겸 연주자이다. 2006년 2월 18일 휴엘 하우저(Huell Howser)가 진행하는 ‘California’s Gold’라는 프로그램에서 포토플레이어와 조 리아누도의 연주가 소개되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참고문헌

  • Mark Palkovic. Wurlitzer of Cincinnati: The Name That Means Music to Millions, History Press, 2015.
  •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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