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

발광

[ luminescence ]

발광은 열에 의하지 않은, 물질로부터의 모든 빛의 방출을 말한다. 발광은 물체를 높은 온도로 가열하였을 때 빛이 방출되는 백열광과 구분된다.

발광은 대체로 가시광선과 일부 적외선 영역에서 일어나며, 두 전자 상태 사이의 복사 전이(radiative transition)에 기인한다. 즉, 발광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높은 에너지의 전자 상태로 들뜬 물질이 에너지가 더 낮은, 보통은 바닥 전자 상태로 내려오며 에너지가 빛(광자)으로 방출되는 현상이다. 발광이 일어나려면 먼저 물질을 높은 에너지 상태로 들뜨게 해야 한다. 물질을 들뜨게 하는 방법은 빛, 열, 전기, 화학 반응 등 매우 다양하며, 일반적으로 물질을 들뜨게 하는 방법 또는 에너지원에 따라 발광을 구분한다.

목차

백열광과 발광

모든 물체는 가열하면 표면에서 빛(전자기파)이 발생한다. 물체를 높은 온도로 가열하였을 때 발생하는 (백색에 가까운) 빛을 백열광(白熱光, incandescence)이라 한다. 물체를 가열하는 온도에 따라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파장 분포는 달라지고, 따라서 빛의 색은 변한다. 약 500 °C로 가열한 물체의 색은 어두운 붉은색이지만 온도가 높아지면 점차 붉은색에서 노란색, 그리고 흰색에 가깝게 된다. 백열광의 좋은 예로는 백열전구가 있다. 백열전구는 텅스텐으로 된 필라멘트에 전류를 흘려 약 2500 °C의 높은 온도로 가열하였을 때 발생하는 빛을 이용하는 것이다.

백열광은 흑체 복사(blackbody radiation)라 부르는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흑체(blackbody)는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이상적인 물체로, 흑체를 가열하면 빛, 즉 전자기 복사선이 방출되는데 이를 흑체 복사라 한다. 흑체에서 방출되는 복사선의 파장 분포와 세기는 물질의 종류에는 무관하고 오로지 온도에만 의존한다. 이러한 흑체 복사에서 관찰된 실험 결과를 설명하려는 노력은 현대 양자 역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1)

백열광에 대비하여, 발광은 높은 온도가 필요하지 않고 열이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열에 의하지 않는 (낮은 온도에서의) 빛의 방출을 '냉광(cold light)'이라 부르기도 한다. 'Luminescence'라는 용어는 빛을 의미하는 라틴어 'lumen'에서 온 말이다. 이 용어는 1888년 독일의 물리학자이며 과학사학자인 비데만(Eilhard Wiedemann)이 '온도 증가가 유일한 방법이 아닌 모든 빛의 발생(all those phenomena of light which are not solely conditioned by the rise in temperature)'을 'luminescenz'라 부르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백열광과 발광의 차이는 빛의 방출에 관련된 물리적 과정 동안 일어나는 에너지 변환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발광에서는 원자 또는 분자 내의 전자 에너지(퍼텐셜 에너지)가 빛으로 방출되는 전자 전이가 관련된다. 백열광에서는 원자나 분자 사이의 운동 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이다.

발광의 여러 형태

모든 발광 현상에서는 공통으로 물질의 원자 또는 분자가 에너지를 얻어 들뜬 전자 상태가 생성된다. 발광은 보통 물질을 들뜨게 하는 방법 또는 에너지원을 접두어로 사용하여 발광 현상을 부른다. 그러나 일부 발광 현상은 몇 가지 다른 유형의 발광이 함께 일어난다.

전자기 복사선 또는 입자에 의한 발광
  • 광발광(photoluminescence): 가시광선이나 자외선을 쪼일 때 일어나는 발광. 형광인광이 여기에 포함된다.
  • 방사선발광(radioluminescence): 높은 에너지의 복사선 또는 입자에 의한 발광. 즉,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알파선(헬륨 원자핵), 베타선(전자), 감마선(높은 에너지의 전자기 복사선)이나 다른 높은 에너지의 복사선을 쪼인 물질[대개 형광체(phosphor)]에서 일어나는 빛의 방출을 말한다. 라디오그래피(radiography)에서는 관찰 스크린에 형광체를 사용하여 X-선이나 감마선에 의하여 생성되는 패턴의 사진을 찍거나 가시화한다. 자체발광 페인트(self-luminescent paint)는 약한 방사성 물질을 형광체와 혼합하여 제조한 것이다.
  • 음극선발광(cathodoluminescence): 음극선(가속된 전자빔)에 의한 발광. 구형 TV나 모니터 스크린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음극선관(cathode ray tube, CRT)이 음극선발광을 이용한 예이다. CRT 스크린의 안쪽 면은 형광체로 코팅되어 있고, 여기에 전자빔을 쪼여 빛을 발생시킨다.
전기에 의한 발광
  • 전기발광(eletroluminescence): 전기장 또는 전류에 의한 발광. 발광 메커니즘에 따라 진성 전기발광과 전하주입 전기발광으로 구분한다.
  • 전류발광(galvanoluminescence): 전기분해 동안의 발광. 브로민화 소듐(NaBr)을 전기분해할 때 전극에서 빛이 발생할 수 있다.
열에 의한 발광
  • 열발광(thermoluminescence): 물질을 약하게 가열할 때 일어나는 발광. 결정성 물질에서 이전에 흡수되었던 에너지가 가열할 때 빛으로 재방출되는 현상으로 흑체 복사와는 다르다.
  • 파이로발광(pyroluminescence): 불꽃에서 금속 원자의 발광. 알칼리 금속 염의 불꽃 반응이 여기에 속한다.
화학 에너지에 의한 발광
  • 화학발광(chemiluminescence): 화학 반응에서 화학 에너지에 의한 발광.
  • 생물발광(bioluminescence):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의하여 일어나는 화학발광.
고체의 구조 변화에 의한 발광
  • 마찰발광(triboluminescence): 고체 결정의 역학적 변동에 의한 발광.
  • 결정발광(crystalloluminescence): 결정화에 의한 발광. 예를 들면, 브로민산 스트론튬(SrBr2O6) 수용액에서 결정이 만들어질 때 빛이 발생한다.
  • 라이오발광(lyoluminescence): 물질의 용해에 의한 발광. 감마선 등을 쪼여 만들어진, 색중심(color center) 형태로 과량의 에너지를 포함한 NaCl, KCl 등 결정은 물에 용해될 때 빛을 발생한다.
음파에 의한 발광
  • 음파발광(sonoluminescence): 액체를 통과하는 강한 세기의 음파(sound waves)에 의한 발광. 특정 조건 하에서 음파에 의하여 액체 내에 생성된 기체 방울이 터질 때 충격파가 생성되어 빛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몇 가지 흥미있는 발광 현상

광발광

광발광(photoluminescence)은 물질이 가시광선이나 자외선을 흡수하여 들뜬 전자상태가 생성되며 시작된다.

흡수한 빛의 파장과 같은 파장의 빛(광자)의 방출을 공명 복사(resonance radiation)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빛의 방출이 일어나기 전 여러 가지 비복사 과정이 일어나며, 이에 따라 광발광은 보통 형광(fluorescence), 인광(phosphorescence), 지연 형광(delayed fluorescence)으로 구분한다. (자세한 내용은 '형광'과 '인광'을 참고하시오.)

무기 반도체 물질의 경우 형광과 인광을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광발광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학발광

화학발광(chemiluminescence)은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동안 화학 결합의 생성이나 해리에 의한 화학 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변환되는 현상이다. 화학발광이 일어나려면 화학 반응에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화학 반응에서 빛이 발생하려면 생성물이 들뜬 상태로 형성될 수 있도록 충분히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즉, 생성물의 들뜬 상태 에너지는 반응물의 에너지보다 더 낮아야 한다. 둘째로 생성물이 바닥 상태로 생성되는 것보다 들뜬 상태로 생성되는 것이 더 유리해야 한다. 즉, 들뜬 상태의 생성물로 가는 반응 경로의 활성화 에너지가 더 낮아야 한다.

대표적인 화학발광은 산화제에 의한 루미놀(luminol)의 산화 반응에서 볼 수 있다. 염기성의 루미놀 수용액에 과산화 수소(H2O2)를 혼합하면 약 425 nm에서 푸른색 방출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림 참고). 이것은 루미놀이 과산화 수소와 반응하여 들뜬 상태 생성물[3-아미노프탈레이트(3-aminophthalate)]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바닥 상태로 내려가면서 여분의 에너지가 빛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루미놀의 화학발광은 높은 감도로 인하여 법과학 분야에서 혈흔 검사로 사용된다. 혈액에 있는 헤모글로빈의 철 성분이 루미놀 반응의 촉매로 작용하기 때문에 혈흔이 있는 곳에 루미놀 용액을 뿌리면 발광현상을 볼 수 있다.

루미놀과 과산화 수소의 산화 반응에 의한 화학발광. ()

공연장 등에서 볼 수 있는 '야광봉'은 퍼옥시옥살레이트(peroxyoxalate)의 화학발광 반응을 이용한 것이다. 퍼옥시옥살레이트 화학발광 연구는 1960년대 초 벨 연구소(Bell Labs)의 찬드로스(Edwin A. Chandross)가 시작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1969년 아메리칸 사이안아미드(American Cyanamid)사의 라우허트(Michael M. Rauhut)는 '시알럼(Cyalume)'이라는 상표명의 옥살레이트 에스터(oxalate ester) 화합물을 만들었다.

옥살레이트 에스터 화합물이 과산화 수소와 반응을 하면 중간체로 퍼옥시옥살레이트가 생성되고, 이것은 다시 높은 에너지의 1,2-다이옥시테인다이온(1,2-dioxetanedione)으로 변환된다. 루미놀 반응과는 달리, 이 높은 에너지의 중간체는 이산화 탄소로 분해될 때 빛을 방출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반응에서는 미리 형광 물질을 넣어 두고, 중간체의 에너지가 형광 물질로 전달되도록 한다. 최종적으로 이 들뜬 형광 물질로부터 빛의 방출이 이루어진다. 이때 형광 물질을 다르게 하면 여러 가지 색의 발광을 얻을 수 있다.

생물발광

생물발광은 생물체에 의한 화학발광이라 말할 수 있다. 생물발광의 널리 알려진 예는 반딧불이와 그 유충이지만, 많은 해양생물, 버섯, 균류, 박테리아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반딧불이(Photinus pyralis)의 생물발광. ()

모든 생물발광에는 공통적으로 루시페린(luciferin)이라는 물질이 루시페레이스(luciferase)라는 효소의 도움을 받아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 관여한다. 그러나 생물종에 따라 루시페린은 다른 구조의 화합물이고, 따라서 발생하는 빛의 특성도 다르다. 반딧불이(Photinus pyralis)의 경우 Photinus 루시페린이 관여하는데, 이것은 ATP와 함께 산소에 의해 산화되어 들뜬 상태 산화루시페린을 생성한다. 들뜬 상태 산화루시페린은 562 nm에서 초록색 빛을 방출한다. 이 반응은 매우 높은 에너지 변환 효율(~0.4 - 0.6)을 나타내므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해파리(Aequorea victoria )의 생물발광. ()

해파리(Aequorea victoria)의 생물발광도 잘 알려져 있다. 이 해파리는 갓(umbrella) 아랫 부분에 있는 광기관에서 초록색 빛을 발생한다 (그림 참고). 일본의 생화학자 시모무라(Osamu Shimomura)는 1961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해파리로부터 물질을 추출하여 발광 메카니즘을 규명하고, 발광 물질인 녹색 형광 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의 구조와 생화학적 성질을 밝혔다. 녹색 형광 단백질은 현대 생명과학 연구에서 아주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에 대한 업적으로 시모무라는 다른 두 과학자와 함께 200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전기발광

전기발광(eletroluminescence, EL)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번개는 전기발광으로, 기체에 전류를 통하면 기체 방전, 스파크, 아크 등에서와 같이 빛이 발생할 수 있다. 진성 전기발광(intrinsic EL) 또는 데트리오 효과(Destriau effect)에서는 고분자 등에 분산시킨 형광체(phosphor) 분말에 교류 전기장을 걸어, 전기장에 의해 가속된 전자의 충돌로 빛을 방출한다. 전하주입 전기발광(charge injection EL)에서는 전기장에 통해 전자와 정공을 주입하고, 이들의 재결합에 의하여 빛을 방출한다.

최근에 여러 가지 조명, 표시등, 디스플레이에 응용되고 있는 발광 다이오드(light-emitting diode, LED)는 전하주입 전기발광을 이용한 것이다.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이용하여 p-n 접합 구조를 형성하고, 여기에 전압을 가하여 전자와 정공 쌍이 재결합할 때 반도체의 띠간격(band gap)에 해당하는 파장의 빛을 방출하는 것이 LED이다. (자세한 내용은 '발광 다이오드'를 참고하시오.)

전하주입 전기발광을 응용한 또 다른 예로는 유기 발광 다이오드(organic light-emitting diode, OLED)가 있다. LED는 무기 반도체 물질의 전기발광을 이용한 것인데, 유기 화합물에서도 전기발광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유기물의 전기발광은 1963년 안트라센(anthracene)에서 처음 관찰되었지만 효율이 낮아서 큰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87년 미국 코닥(Eastman Kodak) 사의 탱(Ching W. Tang)이 유기금속 킬레이트 화합물로 이중층 유기물 박막을 형성하여 효율과 안정성이 개선된 전기발광 현상을 발견한 이래 유기 전기발광을 이용한 OLED 소자에 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4.1인치 프로토타입 플렉서블 OLED 디스플레이 데모. ()

현재 휴대폰 화면이나 대형 TV 등에 사용되는 OLED 디스플레이는 자체발광형으로 우수한 디스플레이 특성을 나타내고, 간단한 소자 구조로 초박형, 초경량 디스플레이 제작이 가능하다. 또한 유리 기판 뿐 아니라 플라스틱 기판에도 제작이 가능하여 유연한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에 적합하다 (그림 참고).

마찰발광

마찰발광은 고체 물질의 결정, 예를 들어 설탕, 수정, 다이아몬드 등을 갈거나 깨뜨리거나 자를 때 일어나는 발광 현상을 가리킨다. 스카치 테이프와 같은 접착 테이프를 떼어낼 때 발생하는 빛도 마찰발광과 비슷한 메커니즘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마찰발광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620년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Francis Bacon)이 어둠 속에서 설탕 결정을 깨뜨릴 때 빛이 발생되는 것을 관찰한 것이다.

마찰발광의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하를 띤 결정 표면이 새롭게 생성되는 동안 강한 전기장이 형성되고, 이 전기장으로 가속된 전자에 의해 표면에 흡착된 질소 원자들로부터 발생한 음극선발광으로 생각된다.

참고 자료

1. 1900년 독일의 물리학자 플랑크(Max Planck)가 '양자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하여 흑체복사 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한 것은 양자 역학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