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형성이론

은하형성이론

[ galaxy formation theory ]

은하형성이론은 은하가 생성되고 진화되는 과정에 대한 천문학 이론이다. 은하는 암흑물질이 중력에 의해 집결되어 있는 암흑헤일로(dark halo) 및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별과 기체로 이루어진 거대한 중력집단이다. 은하보다 작은 규모인 별, 성단, 성운, 그리고 은하보다 큰 규모인 은하군, 은하단 등은 모두 중력적으로 안정된 천체이며, 비교적 단순한 대칭 타원체 구조이다. 그런데 은하는 중력적으로 안정되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원반, 나선팔, 막대 등 복잡한 구조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 기원과 형성과정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은하형성을 이론적으로 밝히는 것은 은하가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천문학 최대의 과제이다.

현대 천문학에서는 암흑헤일로의 발달과 보통물질 은하의 형성으로 이러지는 2단계 은하형성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빛과 반응하지 않는 암흑물질은 우주초기부터 꾸준히 중력집결하여 암흑헤일로를 형성하였다. 이 암흑헤일로는 일정시간 후에 보통물질을 끌어들임으로써, 보통물질이 결집된 최초의 별과 원시은하들이 만들어졌다. 이 이론의 구체적 시나리오에는 암흑헤일로의 유입과 병합, 보통물질의 가열과 냉각, 별생성, 초신성 폭발과 연관된 물질의 순환, 은하중심 초대질량블랙홀 등이 들어간다. 이런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서 준해석적 모형과 수치실험을 이용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현대 은하형성이론에 따르면 환경이 은하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초기에 밀도가 별로 높지 않았던 지역에서는 나선은하가 만들어진다. 작은 원시은하들의 충돌과 병합로 은하가 만들어진 후, 오랫동안 주변기체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면, 이 은하에 기체와 별로 이루어진 원반이 형성되고, 나선팔이 만들어진다. 반면, 밀도가 높았던 지역에서는 타원은하가 만들어진다. 이 지역에서는 여러 개의 은하가 동시 다발적으로 형성된다. 은하들간에는 빈번한 충돌과 병합이 일어나게 되고, 회전과 같은 통일된 내부 운동이 없는 거대 타원은하가 만들어진다.

목차

초기 연구

왜 그렇게 다양한 모습의 은하가 존재하는가? 나선팔, 원반, 막대 등 복잡한 구조물의 기원은 무엇인가? 왜 다양한 모습의 은하들이 서로 다른 성질을 갖는가? 왜 다른 성질의 은하가 다른 주변환경에서 더 빈번하게 발견되는가? 외부은하의 존재가 확인된 20세기 초부터, 은하의 형성을 이해는 것은 천문학 최대의 관심이었다. 암흑물질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1980년대 이전에, 은하형성 연구는 우리은하에 관한 관측자료를 중심으로 현상학적으로 수행되었다. 에겐(Olin J. Eggen), 린든벨(Donald Lynden-Bell), 샌디지(Allan Sandage)는 우리은하의 헤일로에 있는 별들(별헤일로)의 화학적, 역학적 성질에 근거하여, 우리은하의 별헤일로가 우주의 나이와 비교해서 현저히 짧은 시간 안에 중력수축하여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별헤일로의 별들이 우리은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것을 고려할 때, 이들의 주장은 우리은하 형성초기에 별헤일로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형성되었다고 풀이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은하의 경우 별헤일로는 전체 별질량의 1% 정도밖에 안되므로, 별헤일로의 기원에 관한 이해가 우리은하 전체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라고 볼 수 없다.

암흑물질 우주와 2단계 은하형성 이론

은하형성 연구에 빛을 내지 않는 암흑물질은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미 1930년대에 츠비키(Fritz Zwicky)가 암흑물질의 증거를 제시하긴 했지만, 암흑물질(dark matter)의 존재가 본격 수용된 것은 1970년대 루빈(Vera Rubin) 등이 은하의 회전속도곡선으로부터 암흑물질의 증거를 제시하면서부터이다. 별과 기체를 구성하며 빛을 낼 수 있는 보통 물질(원자, 양성자, 중성자로 분해할 수 있는 물질. 바리온이라고 통칭) 외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질량의 빛을 내지 않는 암흑물질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많은 은하공간분포연구로, 암흑물질이 차가운(cold) 성질을 가지고 중력에만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우주엔 바리온 물질보다 6배쯤 많은 암흑물질이 있고, 이 두 물질 사이의 총질량비는 시간에 대해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차가운 암흑물질(cold dark matter)의 존재는 현대 은하형성이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사실 보통 물질로만 이루어진 우주에서는 은하의 형성과 오늘날 우주의 물질 분포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오늘날 우주의 물질분포는 우주가 지금의 1000분의 1만큼 작았던 최후의 산란(the last scattering, 빅뱅 후 38만 년) 당시의 물질분포에서 기원한 것이다. 최후의 산란 당시의 물질분포는 우주배경복사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대략 10만분의 1정도의 밀도불균일도를 가진 것으로 관측된다. 즉, 바리온 밀도분포가 지역에 따라 단지 10만분의 1 정도로만 다를 정도로 고른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밀도요동 발달이론(theory of small perturbation growth)에 따르면 최후의 산란부터 오늘날까지 우주의 규모가 1000배 가량 팽창하는 동안 중력에 의해 밀도불균일도도 우주 규모와 비례해서 증폭된다. 즉, 10만분의 1정도이던 밀도불균일도가 100분의 1로 증가하는데 그치게 되어 밀도불균일도가 아주 큰 현재 우주의 물질분포나 은하의 존재를 전혀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이 문제의 돌파구가 바로 차가운 암흑물질이다. 최후의 산란 이전의 우주는 매우 고온이어서 전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광자들과 충돌하게 되어 바리온 물질들의 중력집결(중력에 의해 모임)을 방해했다. 하지만, 빛과 충돌하지 않는 암흑물질은 급팽창(Inflation, 빅뱅 이후 약 10-32 초) 이후 꾸준히 중력집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최후의 산란 시점에 바리온은 10만분의 1의 밀도불균일도를 갖는데 그쳤지만, 암흑물질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밀도불균일도를 갖게 되었다. 최후의 산란 이후 우주의 온도가 낮아지면서 자유전자들은 양성자들과 결합하여 수소원자가 되었다. 이제 중성원자 상태가 된 바리온 물질은 광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중력집결을 하게 되었는데, 이미 우주엔 다양한 크기의 암흑헤일로가 만든 중력웅덩이가 곳곳에 준비되어 있었다. 아직 규모가 작긴 하지만 미리 준비된 암흑헤일로에 바리온 기체가 끌려 들어가고, 중심부에 모인 기체 더미가 다양한 과정을 거쳐 최초의 별(first stars)을 만들었다.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에서는 원시은하가 탄생했다. 그 후 138억 년 동안 암흑헤일로들 간의 중력병합에 따라 그 안에 있던 작은 은하들끼리 병합이 이뤄지고, 큰 은하로 성장하면서 은하의 모습이 변했다.

이와 같이 은하형성과정을 앞선 암흑헤일로의 발달과 뒤따른 바리온 은하의 형성으로 설명하는 것을 2단계 은하형성 이론(two-stage theory for galaxy formation and clustering)이라고 한다.

준해석적 은하형성 모형

2단계 은하형성이론을 바탕으로, 준해석적 은하형성 모형(semi-analytic model of galaxy formation)이 먼저 은하형성 연구에 활용되었다. 준해석적모형이란, 암흑헤일로의 병합역사, 별생성 과정, 블랙홀 에너지 순환 등 복잡한 물리현상을 비교적 간단한 해석적 방법으로 근사하여 우주거대 공간에서 어떻게 은하가 탄생하고 성장하는지를 재현하는 방법이다. 준해석적모형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은하형성의 첫 단계인 암흑헤일로 병합역사(halo merger history)를 구축하는 것이다. 초창기 준해석적모형은 암흑헤일로 병합역사를 통계적으로 기술하다가(Press-Schechter 방법), 컴퓨터를 사용한 대규모 우주론 수치모의실험이 가능해진 1990년대 후반부터는 수치모의실험에서 도출된 병합역사를 직접 사용하게 되었다.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암흑헤일로의 병합역사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체냉각, 별생성, 에너지순환 등 중요한 바리온 물리현상을 적용하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준해석적 은하형성모형으로 알게 된 은하형성의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암흑헤일로에 유입되는 바리온 기체는 처음에는 암흑헤일로의 중력장에 의해 충격가열(shock heating)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원자나 분자 상태에서 냉각된다. 충분히 냉각된 기체더미 중심에서 별이 탄생하고 이런 별들이 많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 원시은하가 탄생한다. 일부 질량이 큰 별은 초신성 폭발 등으로 많은 에너지를 기체에 환원하고, 이러한 에너지 순환(feedback)은 은하가 별생성 역사를 적절히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크고 작은 암흑헤일로가 병합할 때마다, 그 안에 있는 은하들도 병합한다. 병합에 걸리는 시간은 경우에 따라 다양하여, 매우 큰 암흑헤일로에 작은 헤일로가 유입되는 경우엔 헤일로 사이의 병합시간이 우주의 나이보다 큰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은하단 내에 수백 개의 은하가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다. 은하가 병합할 때마다 별생성률이 증가되고 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블랙홀도 병합과 기체유입으로 성장한다.

은하형성이론이 재현하고자 하는 기본관측사실은 최우선적으로 1) 은하의 광도분포함수(luminosity function of galaxies) 혹은 그로부터 도출한 별질량분포함수(stellar mass function of galaxies)이며, 그 외 2) 은하형태와 환경관계, 3) 은하질량과 초대질량블랙홀질량 관계, 4) 우주규모 별생성률 변화, 5) 은하질량과 기체량 관계, 6) 은하질량과 중원소함량 관계 등이 있다. 20세기 이후에 개발된 준해석적 은하형성 모형은 이러한 은하의 다양한 기본성질을 꽤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수치모의실험

컴퓨터 성능이 향상되면서 유체역학 효과를 모두 포함하는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은하형성을 연구하는 방법이 가능해 졌다. 2014년 서로 다른 세 연구팀(EAGLE, Horizon-AGN, Illustris)이 거의 동시에 한 변이 약 3억 광년인 큰 우주공간에 대한 유체역학 수치모의실험으로 수십만 개의 은하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기본적으로 수치모의실험으로부터 얻은 결과는 앞서 기술한 준해석적모형으로부터 얻은 개괄적인 이해와 일치한다. 준해석적이론은 은하의 다양한 성질을 빠른 계산으로 재현해 내는 장점이 있지만 각 은하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구현해 낼 수 없는 반면, 유체역학 수치모의실험은 은하의 모습을 더 사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가진다. 예를 들어, 충격파, 나선팔 등 비선형적인 물리현상은 유체역학실험에서만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유체역학실험은 은하형성 연구에 점차로 더 빈번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하지만, 유체역학실험은 막대한 계산시간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위의 세 프로젝트는 각각 대략 1000만 시간(5000개의 컴퓨터 코어를 동시에 연속으로 사용할 때 2천 시간 또는 83일) 이상의 계산시간을 소모했는데, 이는 국제적으로도 거대한 수치모의실험에 속한다. 관측을 재현하는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 한번의 계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중요한 한계다.

그림 1: Illustris 유체역학 모의실험이 만든 은하모형(출처: )

다양한 은하의 기원

지금까지 준해석적이론과 유체역학 수치모의실험으로부터 얻어진 정보와 해석을 사용하면 다양한 은하의 형성 과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나선은하의 기원을 살펴보자. 처음 암흑헤일로에 바리온기체가 유입될 때 방향성을 갖게 되어 엉성한 원반의 형태를 띄기 쉽다. 하지만, 은하가 만들어지는 초기에는 작은 원시은하들간의 충돌과 병합이 잦아서 빠른 시간 내에 중력수축하고, 암흑헤일로의 모습을 따라 무작위운동을 하는 별들이 많아지게 된다. 에겐 등이 제안한 별헤일로의 기원설이 원시은하형성과정을 효과적으로 기술하는 듯 하다. 그 후 수십억 년 이상의 시간으로, 주변기체가 계속 유입되어 기체/별 원반이 형성된다. 주변에 은하가 많지 않은 경우에 원반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여러 가지 비선형적인 과정을 거쳐 나선팔과 막대 등이 만들어진다. 이런 이론은 나선은하가 대부분 저밀도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과 일치한다. 뉴호라이즌(New Horizon) 컴퓨터 수치모의실험(그림 2)이 나선은하가 탄생하는 과정을 잘 재현하고 있다.

그림 2: 뉴호라이즌(New Horizon) 유체역학 수치모의실험으로 재현한 나선은하의 적색이동 z=4부터 1까지의 모습. Horizon-AGN 시뮬레이션의 한 저밀도 지역(10Mpc지름의 구)을 기존보다 25배 향상된 공간해상도(40파섹)로 재실험한 결과이다. 슈퍼컴퓨터 2000만 코어시간을 사용한 계산 결과이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자세한 은하형성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왼쪽: 한 변이 200ckpc인 공간내 별입자 분포. : 안쪽 50ckpc의 별입자의 u-밴드 이미지. 오른쪽: 한 변이 200ckpc인 공간내 암흑물질입자 분포.(출처: 뉴호라이즌 팀; 요한 두보아(Yohan Dubois), 크리스토프 피숀(Christophe Pichon), 줄리앙 데브리앙트(Julien Devriendt), 김태선, 이석영, 박민정 등)

다음은 타원은하의 기원이다. 밀도가 높은 지역에선 우주초기부터 여러 개의 은하가 동시 다발적으로 만들어진다. 은하들간의 빈번한 충돌 병합은 이전에 은하가 가졌던 회전 같은 통일된 운동 형태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원반형태를 가졌던 은하들도 충돌을 많이 겪을수록 더욱 무작위 운동이 지배하는 타원은하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과거에 많은 은하 충돌이 있었을 것으로 예측되는 은하단 내의 은하들이 대다수 타원은하인 것과 잘 들어맞는다. 기체를 많이 함유하는 원반은하 사이에 충돌이 있으면, 충격파 현상 등에 의해 별생성률이 증가되고 병합의 산물인 타원은하는 결과적으로 기체도 적고 별생성도 하지 않는 "붉고 죽은(red and dead)"은하가 된다. 한편, 충돌하는 은하나, 불규칙 은하 등은 주변 환경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전망

현대우주론에 기반을 둔 은하형성이론은 차가운 암흑물질에 관한 이해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초반에 개발된 준해석적 은하형성모형은 이제 많은 은하관측자료를 재현하고 있고, 2010년대에는 유체역학효과를 포함하는 수치모사실험으로부터 수십만 개의 은하를 이전 어느 때보다 사실적으로 구현해 내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현재 최고의 수치모사실험도 실제은하를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기엔 공간해상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은하원반의 수직구조, 은하의 회전 등을 사실적으로 구현하지 못한다. 또한 다양한 성간기체의 상태도 사실적으로 기술하지 못하기 때문에 별생성 등 핵심현상을 바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크다. 더욱이 별생성, 블랙홀 에너지 순환 등 물리현상이 1파섹보다 작은 공간 내에서 비선형적으로 벌어지는 반면, 현재 모의실험은 1000파섹 정도의 공간해상도를 가지므로 이런 중요한 물리현상을 해석적으로만 기술할 수 있다는 한계가 극명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스케일의 줌인(zoom in)모의실험이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은하형성의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과제지만,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의 양 등 우주론의 구체적인 가정에 따라 민감하게 달리 예측되어 우주론을 검증하는 의미도 크다. 이러한 이유로 은하형성에 관한 연구는 천문학계가 건설중인 차세대 관측시설(예: James Webb Space Telescope, Giant Magellan Telescope, European Extremely Large Telescope, ALMA)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이다. 차세대 관측시설은 은하형성의 초기 모습과 분광성질을 제공하여 은하형성과 진화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