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뒷다리에서 건전지 나왔다

개구리 뒷다리에서 건전지 나왔다

주제 생명과학, 경영경제, 화학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0-09-06
원본보기
개구리 뒷다리에서 건전지 나왔다 본문 이미지 1

1786년께 이탈리아 볼로냐대 해부학과 교수였던 루이지 갈바니(1737~1798)는 병약한 아내 루치아에게 개구리 수프를 먹도록 권했다. 당시에는 개구리 뒷다리로 만든 수프가 몸이 아픈 사람의 건강을 회복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루치아는 수프를 만들기 위해 개구리의 껍질을 벗기고 금속 접시에 가지런히 놓았다. 옆에서는 남편의 제자들이 마찰을 이용해 전기를 일으키거나 금속의 정전기유도 현상을 이용해 전기를 모으는 장치인 기전기를 작동하며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루치아는 개구리의 뒷다리가 접시 안에서 살아 있는 것처럼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놀란 그녀는 이 광경을 계속 지켜보았고 기전기가 불꽃을 만들어낼 때만 개구리 다리가 흠칫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루치아는 갈바니의 대학 은사인 갈레아치 교수의 딸이었고 과학자의 아내였던 까닭에 남다른 식견을 가졌던 듯하다.

집으로 돌아온 갈바니는 아내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몹시 흥분했다. 갈바니는 곧장 이 사건의 원인을 밝혀내겠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갈바니는 조수와 함께 개구리의 몸통 여기저기에 기전기로부터 나오는 불꽃을 가져다 댔다. 매번 결과는 같았다. 하나의 예외도 없이 불꽃이 기전기로부터 나오는 순간 개구리의 뒷다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이 같은 관찰을 계기로 갈바니는 개구리 뒷다리에 대한 실험을 계속했다. 그는 집 발코니의 철재 난간에 개구리를 매달아 놓을 때도 뒷다리 근육이 수축한다는 것을 목격했다. 특히 번개가 치거나 검은 구름이 몰려올 때는 더 빈번하게 경련이 일어났다.

갈바니는 개구리의 뒷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는 이유를 ‘대기전기’가 흘렀기 때문으로 보았다. 대기의 기체는 이온화돼 있어 항상 전류가 흐르고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번개가 치는 것도 대기전기의 한 예다. 하지만 그는 대기전기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 것 같아 실험장소를 실내로 옮겼다.

역시나 개구리의 뒷다리는 경련을 일으켰다. 이번 경련은 개구리 뒷다리가 놓여 있는 둥근 철판에 철사를 접촉시켰을 때 발생했다. 대기 중에 불꽃이 생기거나 번개가 치지 않을 때도 개구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따라서 대기전기가 경련의 원인은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개구리 뒷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는 진짜 이유는 뭘까?

갈바니는 개구리 자체에서 전기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개구리 뒷다리의 경련은 동물의 신경과 근육에 존재하는 음전하와 양전하의 작용에 의해 전류가 흐른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1794년 익명으로 ‘근육 수축에 있어 전도체의 사용과 그 역할’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갈바니는 “개구리의 신경을 다른 개구리의 근육으로 건드렸을 때 금속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도 근육의 수축을 관찰할 수 있었다”며 “동물 자체에서 나오는 일종의 유체인 새로운 종류의 전기인 ‘동물전기’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아쉽게도 갈바니가 생체기관에 전기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한 것은 옳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생체에 존재하는 전기는 아니었다. 이를 규명한 사람은 당시 이탈리아 파비아대 물리학과 교수였던 알레산드로 볼타(1745~1827)였다.

1796년 볼타는 재질이 서로 다른 동전을 혀의 아래 위에 놓고 철사로 연결하자 찌릿찌릿 전기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혀 대신 소금물을 적신 판지를 끼웠을 때도 전류가 흐르는 것을 목격했다. 이로써 볼타는 “전류가 동물의 생체조직이 아니라 금속과 습기에서 유래된 것이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갈바니가 목격한 전기는 개구리에게 원래 있던 ‘동물전기’가 아니라 개구리가 놓인 금속 접시와 여기에 접촉한 다른 금속 사이에 발생한 ‘금속전기’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원리를 응용해 1800년 볼타는 세계 최초로 지속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볼타파일(볼타전지)’을 발명했다. 볼타파일은 얇은 은판과 아연판, 소금물에 적신 판지를 겹겹이 쌓아 만든 것이다. 이 기둥의 아래 위에 서로 다른 금속이 오게 한 다음, 전선을 연결하면 전류가 흐른다.

갈바니는 ‘개구리의 춤 선생’이란 조롱을 받으며 동물전기 이론이 부정되는 현실에 직면했고 아내마저 저세상으로 떠났다. 또 나폴레옹이 북이탈리아를 침공해 세운 치살피나공화국에 충성맹세를 하지 않자 볼로냐대에서 교수직까지 잃어 궁핍한 노년을 보냈다. 그럼에도 갈바니는 평생 동물전기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반면 볼타는 볼타파일을 만든 업적으로 1794년 영국 왕립학회에서 코플리상을 받았다. 1801년에는 나폴레옹의 초청으로 파리 학사원에서 볼타파일을 시연했고 백작위를 수여받았다. 또 볼타는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탔다.

두 사람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대조적이었으나 두 사람은 부분적으로 옳았고 부분적으로 틀렸다. 갈바니의 주장대로 근육수축이 전기적인 자극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은 옳았으나 이것을 ‘동물전기’라고 한 것은 틀렸다. 또 볼타가 ‘동물전기’를 부정한 것은 옳지만 모든 전기 · 생리학적인 효과에 서로 다른 금속이 전류원으로 필요하다고 본 것은 틀렸다.

1881년 전압의 단위로 ‘볼트(V)’가 통용되면서 갈바니의 업적은 줄곧 가려지는 듯했다. 그러나 죽은 개구리의 심장에 전류를 흐르게 하자 심장 근육의 수축이 일어났다는 갈바니의 관찰 기록은 오늘날 전기 충격으로 심장박동을 회복시키는 응급처치법과, 심장 리듬의 문제를 감지해 심장이 규칙적이고 제시간에 박동할 수 있도록 전기자극을 보내는 장치인 심장박동기의 개발로 이어져 수많은 사람의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리고 있다.

  • 서금영 - 과학칼럼니스트

연관목차

989/1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