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굴, 손대지 마세요~

살아있는 동굴, 손대지 마세요~

주제 지구과학, 사회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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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 떠올려보자. 깜깜한 지하세계, 박쥐들이 사는 무서운 곳, 신비로운 종유석과 석순이 자라는 공간, 여름철 시원한 관광지 등 사람마다 동굴에 대한 느낌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지하의 컴컴한 공간을 모두 동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지하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져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만이 학술적으로 인정되는 동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동굴은 강원도나 충청북도에서 발견되는 ‘석회동굴’과 제주도의 ‘용암동굴’, 그리고 바닷가에서 파도에 의해 깎여 만들어진 ‘해식동굴’이다.

이런 동굴을 탐험하다 보면 길을 잃을 때도 있고 위험한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동굴 내에 발달된 통로의 형태가 너무 다양한데다 동굴 내부에서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동굴마다 환경이 달라서 어떤 동굴은 다른 동굴보다 덥기도 하고, 혹은 더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동굴 속 온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지하에 발달한 동굴 속 기온이 1년 내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즉, 동굴 내부의 온도가 변하는 게 아니라 동굴 바깥의 온도가 계절에 따라 심하게 변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동굴이 시원하게 느껴지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동굴의 내부 기온이 1년 내내 일정한 이유는 동굴 내의 온도가 그 지역 동굴 외부의 평균 온도를 항상 간직하기 때문이다. 한 지역의 평균 기온은 오랫동안 유지됐기 때문에 주변 암석에 기록돼 있다. 계절에 따라 대기 온도가 많이 변해도 암석은 거의 평균 기온을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암석 내에 위치하는 동굴 속 기온이 암석의 온도와 일치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물론 동굴 바깥에서 많은 물이 흘러들어가서 흐르게 되면 동굴 내부의 온도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다.

유럽에 있는 오스트리아나 슬로바키아에는 1년 내내 얼음이 존재하는 동굴들이 많다. 동굴 속에 항상 얼음이 있어서 얼음동굴이라 부르는데, 오스트리아의 ‘아이스리젠벨트 동굴’이나 ‘다크스타인 동굴’은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얼음이 있는 동굴은 대부분 석회동굴인데, 이곳에 얼음이 많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동굴 내부의 평균 온도가 섭씨 0도보다 낮기 때문에 동굴 속에 흘러들어간 물이 얼어서 1년 내내 얼음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얼음이 존재하는 동굴은 동양에도 있다. 만주지역에 수직으로 발달한 동굴을 약 20m 내려가면 얼음으로 된 수많은 석순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몇몇 지역에서 ‘얼음골’이 존재한다. 바깥기온은 섭씨 30도가 넘는데, 동굴 속에는 얼음이 있다니 어찌된 일일까? 이런 현상은 대기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표면은 항상 중력의 영향을 받으므로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보다 아래에 존재하려고 한다. 물이나 공기도 마찬가지여서 상대적으로 무거운 차가운 물이나 공기가 항상 아래에 있으려고 한다.

만약 추운 겨울에 사방이 막혀 있는 골짜기에서 차가운 공기가 만들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 공기는 골짜기에 갇혀 그 자리에 남게 된다. 여름이 와도 차가운 공기가 더운 공기보다 무거우므로 그 자리를 지키게 되고, 이 공기의 영향으로 얼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동굴에 수직으로 발달한 통로만 있고, 다른 통로 없이 막혀 있으면 동굴 내부는 1년 내내 항상 차갑게 유지될 수 있다. 중국의 석회동굴에서 여름에 얼음이 있었던 이유는 바로 차가운 공기가 동굴 속에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동굴의 입구가 여러 곳에 있으면 그 형태와 위치에 따라 계절별로 공기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학자들은 남한에만 1,000개 이상의 천연동굴이 분포한다고 추정한다. 이 중에서 내부가 아름다운 동굴은 관광지로 개발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강원도 영월의 고씨굴, 삼척의 환선굴과 대금굴, 태백의 용연동굴, 동해의 천곡동굴, 정선의 화암동굴, 충청북도 단양의 고수동굴, 온달동굴, 천동굴, 경상북도 울진의 성류굴이 개방된 석회동굴이며, 제주도의 만장굴, 협제-쌍룡굴, 미천굴이 일반인에게 개방된 용암동굴이다.

이런 동굴들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고, 생활에도 유용하게 이용된다. 석회암과 종유석 같은 동굴생성물은 과거의 기후변화를 추적할 수 있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데 사용되고, 동굴 내에 살고 있는 희귀생물은 난치병 치료약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항상 깜깜하게 유지되는 독특한 내부 환경이 동굴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생물을 살 수 있게 했고, 이런 생물이 가지는 다양한 유전물질이 앞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치료약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석유 자원도 동굴과 관련이 있다. 지하에 발달한 동굴은 석유가 저장되는 아주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석유자원의 절반 정도가 석회암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동굴을 명상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동굴에 음식물을 저장하기도 한다. 단양의 일부 동굴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많이 발견돼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이렇게 동굴은 여러 면에서 가치 있는 지하의 자연세계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동굴을 그리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동굴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은 아무 죄의식 없이 동굴생성물을 손으로 만지고 동굴에 쓰레기를 버린다. 사람이 만지는 동굴생성물은 검게 색이 변하며, 버려진 쓰레기는 동굴생물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런 행동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

동굴마다 규모와 내부 환경이 다르므로 동굴이 개방되면 이곳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해 내부 환경이 잘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개방된 국내 동굴 대부분은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아 내부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동굴 내에 설치된 조명 아래에는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이나 식물이 자라고, 사람들과 함께 들어온 먼지는 동굴벽면을 검게 만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동굴을 관리하는 기관에서도 개방된 동굴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모른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관리자는 표만 팔 뿐 동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개방동굴은 그저 다른 관광지의 하나처럼 단지 돈을 벌 수 있는 장소일 뿐이다.

다행히 최근에 개발돼 공개된 강원도 평창의 백룡동굴은 새로운 관광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동굴을 관람할 수 있는 인원이 동굴 환경에 따라 제한되며, 동굴 내에는 조명시설이 거의 없다. 또 사람들은 동굴탐험복을 입고 깜깜한 동굴을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관람한다. 조명시설이 없으니 동굴 내부는 잘 보전되며, 가이드가 동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있어서 천연동굴에 대한 소중함을 관광객에게 교육할 수 있는 새로운 관광패턴인 것이다.

2007년에 제주도의 용암동굴 5개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금수강산의 가치를 전 세계에서 인정해 준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동굴 환경은 관리 소홀로 점차 훼손되고 있다. 소중한 동굴 환경을 단지 깜깜하고 여름에 시원한 피서지로만 느끼는 것은 더 이상 선진국으로 가는 우리의 문화수준이 아니다. 이제라도 동굴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연유산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 우경식 -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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