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식 화장실은 언제 발명됐을까?

수세식 화장실은 언제 발명됐을까?

주제 기계, 환경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0-07-05
원본보기
수세식 화장실은 언제 발명됐을까? 본문 이미지 1

죽은 자들에게는 국경도 시대의 구분도 없는 법. 저승에서 여러 시대의 사람들이 모여,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며 수다를 떨고 있다.

“죽고 나니 먹는 즐거움이 사라진 것은 슬프지만 화장실 갈 일이 없는 것은 좋네요. 똥오줌 없으니 천국이 이리도 깨끗하겠지요.”

중세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이 말했다. 그러나 로마의 귀족으로 살았던 이가 말을 받아 친다.

“길거리에 똥오줌을 마구 버려 전염병에 시달렸던 미개한 당신들이야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우리 로마인들처럼 목욕과 화장실에 대해 깊은 식견을 가진 이들은 생각이 다르다오. 남겨진 유적을 봐도 알겠지만, 우리는 이미 1세기경에 아테네에 68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고대한 공중화장실을 만들었지. 게다가 거의 모든 공중화장실이 수세식이었다오. 분뇨가 흐르는 하수구를 각이 지지 않게 만들어서 악취도 별로 없었소. 그야말로 아름답고 장엄했지. 나중엔 1백석이 넘는 거대한 화장실을 만들기도 했다오. 우린 하루 종일 그곳에 앉아 신선한 공기를 쐬며 정치나 경제 문제를 의논했지. 사실 그 순간만큼 집중이 잘 되고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때가 있나 말이요.”

“에구머니, 부끄럽지도 않나요? 모두 모여서 엉덩이를 내밀고 정치를 토론했다니.”

로마시대 얘기는 20세기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15세기에 이동식화장실로 인기를 모았던 이가 말을 받았다.

“볼일 보는 걸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라오. 나는 그 덕분에 이동식 화장실을 만들어서 크게 인기를 모았지요. 내가 살던 시대까지도 자기가 앉아 있거나 걸어가던 장소에다 일을 봤어요. 누구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봤지만, 아는 사람을 만나면 곤혹스러운 일이긴 했지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동식 화장실입니다. 커다란 망토를 두르고 배변용 양동이를 가지고 다니다가 볼일 볼 사람이 있으면 재빨리 망토로 가려주고 돈을 받았지요. 아주 커다란 망토라서 절대 밖에서 보일 일이 없었지요. 암, 그렇고 말고요.”

“어이쿠, 세상에 그런 일이 사람들이 오가는 큰 길가에서 있었다는 건가요?”

“물론이죠. 망토를 이용한 이동식 화장실은 19세기 후반까지도 유럽의 대도시에서 볼 수 있었답니다.”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던 시대에 살았던 게 정말 행운이군요. 길 가다 망토 속에서 똥을 눈다니, 생각만 해도 낯이 뜨거워져요.”

20세기 인이 수세식 화장실을 예찬하자, 영국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수세식 화장실이라면 우리 영국인의 공이죠. 1596년에 우리 영국의 존 해링튼 경이 최초의 현대적인 수세식 변기를 고안했으니까요. 윗부분에 물통이 있고, 물을 흘러가게 하는 손잡이와 배설물을 분뇨통으로 흘러가게 하는 밸브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냄새가 엄청나다는 단점이 있었지요. 1775년 또 다른 영국인, 시계 제조자이자 수학자인 알렉산더 커밍이 새로운 변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배수파이프를 U자 모양으로 구부러지게 해서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냄새를 차단하기 위한 물을 저장한 겁니다. 이게 지금까지도 모든 수세식 변기에 사용되는 부분이죠.”

영국인의 말을 듣고 20세기 인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변기뿐 아니라 세면대와 싱크대에도 트랩(trap)이 있어 배수관이 U자나 P자 모양으로 하고 있다. 이 구부러진 부분은 하수구 냄새가 역류하고 벌레가 올라오는 것을 막아준다. 그런데 물은 어떻게 구부러진 관을 통과해서 흐르는 걸까?

화장실의 물탱크는 사이펀의 원리에 의해 작동된다. 사이펀관은 압력 차이를 이용해 물을 위쪽으로 흐르게 한다. 사이펀 관이 물 표면보다 아래에 있으면 수면에 작용하는 대기압으로 액체가 밀려 올라간다. 물은 관을 따라 올라가 굽은 곳을 돌아 다른 쪽 끝으로 떨어진다. 일단 물이 사이펀관을 돌아 다른 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공기의 압력 때문에 남아있는 물이 관을 따라 계속 흐르게 되는 것이다.

“편하게 사용만 했지 정작 화장실의 원리는 모르고 있었네요. 수세식 화장실은 물을 내리면 저절로 물이 적당히 차오르잖아요.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거나 잠그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걸까요?”

“그건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겁니다. 물 내리는 밸브를 아래로 누르면 지렛대의 원리에 의해 물탱크 바닥에 있던 구멍의 마개가 위로 들어 올려집니다. 물탱크의 물은 수압과 중력에 의해 변기로 내려오지요. 물이 빠져나가면 물탱크의 수압이 낮아지면 수압이 높은 급수관의 물이 물탱크로 들어와서 다시 차게 됩니다. 물탱크의 수압과 급수관의 수압이 같아질 때까지 물이 들어오게 되지요. 때문에 물탱크는 급수관보다 항상 위쪽에 있게 됩니다.”

“간단한 듯 하면서 정말 효과적인 방법이네요.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인생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어요.”

“하하 그렇죠. 1778년 발명가 조지프 브라마가 밸브 장치가 개선된 변기를 내놨는데, 1797년까지 6천 개가 팔릴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이야말로 현대적인 생활의 증거죠!”

“나도 다시 태어난다면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시대에 태어나고 싶구려!”

고대와 중세 사람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그때 날카로운 눈을 한 과학자가 입을 열었다.

“수세식 화장실은 인류가 생각해낸 가장 미개한 발명품 중 하납니다. 수세식 화장실 보급 초기에 런던은 식수원이었던 템스강으로 오물을 흘려보내, 식수염이 오염되고 하수관으로 오물이 역류하는 등 문제가 많았습니다. 콜레라 같은 수인성 질병도 만연했죠. 도시의 상하수도 설비를 정비해 문제가 개선되는 듯 했고 수세식 화장실은 널리 전파되었지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입니다.

수세식 화장실에서 한번 물을 내릴 때 사용되는 물의 양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13리터~15리터, 절수형이라고 해도 6리터 이상입니다. 하루에 5번만 화장실에 간다 해도 70리터에 가까운 물을 오물을 씻어내는 데 쓰게 되는 겁니다. 오물을 물에 녹여 흘려 보내니 수질 오염의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게 되는 물인데 말입니다. 수세식 화장실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다가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어리석은 발명품인 것입니다.”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던 농부가 그제야 말을 시작했다.

“농사를 지어보면 똥이 얼마나 귀한 거름이 되는지 알 텐데. 잘 모아 삭혀서 거름으로 쓰면 똥이 아니라 보배가 되는 걸 모르고 말이야.”

과학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저는 이렇게 저승으로 오게 되었지만, 지금 인간 세상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의 대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전통 농경사회의 방식대로 미생물을 이용해 똥과 오줌을 발효시켜 비료로 만드는 자연발효 화장실도 한 방법이겠지요. 물을 사용하지 않는 화장실, 오물을 압착해서 말린 후 살균하는 방식, 변기에서 배설물을 즉시 냉동시키는 방식, 전기 연소 장치로 오물을 먼지로 태우는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이 연구되고 있답니다.”

수세식 화장실을 칭송하던 이들이 다들 숙연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인간 세상에서는 여기저기서 쏴아~쏴아~ 폭포수처럼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이소영 - 과학칼럼니스트

연관목차

980/1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