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줄백이

쌍줄백이

쌍줄백이는 솟대쟁이패가 연행한 솟대타기의 별칭이다. 솟대쟁이패 출신으로 남사당패의 일원이 되었던 송순갑(宋淳甲, 1912-2001)의 증언에 따르면, 솟대쟁이패의 공연 종목은 풍물, 땅재주, 얼른, 줄타기, 병신굿, 솟대타기 등의 여섯 가지였다. 그 중 솟대타기는 쌍줄백이라고도 불렀는데, 높은 장대 위에 오늘날의 평행봉 너비의 2가닥 줄을 양편으로 장치하고 줄 위에서 물구나무서기, 두 손 걷기, 한 손 걷기, 고물 묻히기(줄 위를 빙글빙글 구르기) 등의 기예가 있었다고 한다.

쌍줄백이는 줄을 매는 장대도 다르고 줄에서 하는 기예도 다르다는 점에서 오늘날 줄타기와는 구별된다. 솟대타기의 줄기예가 쌍줄백이로 불린 이유는 솟대에 연결된 두 줄이 연희공간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쌍줄백이와 쌍줄타기는 유사해 보이지만 다른 연희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연희자들의 증언과 현존하는 각종 도상자료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쌍줄백이 연희 장면

쌍줄백이 연희 장면 〈선암사 서부도전 감로탱〉. 1736

첫째, 줄을 매고 있는 장대의 높이가 다르다. 쌍줄백이의 경우 한쪽을 짧게 하여 연결된 줄이 솟대를 땅에 고정하는 역할도 수행하는 데 비해, 쌍줄타기는 장대의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쌍줄백이는 솟대와 줄을 한 번에 묶어 연희공간으로 삼기 때문에 장대가 하나지만, 쌍줄타기는 평행한 쌍줄 위에서 연기하는 것이므로 줄의 높이가 다르면 쌍줄타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장대 꼭대기의 형태가 다르다. 쌍줄타기는 장대 위에 도르래를 설치하여 기예에 따라 줄의 길이를 조절하게끔 했다. 장대 위에는 연희자가 올라갈 곳이 없다. 연희자가 기예를 펼칠 공간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쌍줄백이는 솟대 꼭대기에 십자형이나 X자형 가로목을 설치해 그 위에서 물구나무서기와 같은 기예를 연행한다. 즉 쌍줄백이는 솟대와 줄 모두에서 펼칠 수 있는 연희인데 반해, 쌍줄타기는 양쪽 장대에 연결된 줄에서만 가능한 연희인 것이다.

쌍줄백이 연희 장면

쌍줄백이 연희 장면 〈동화사 감로탱〉. 1759

셋째, 쌍줄백이에서는 악기연주가 가능하다. 현존하는 줄타기 기예는 악기연주보다는 줄의 반동을 이용한 체기와 재담에 주력한다. 그러나 쌍줄백이는 솟대와 줄 모두에서 체기는 물론 악기를 연주하는 기예를 선보였다. 이는 고려가요 〈청산별곡〉 "사imagefontimagefont대에 올라셔 imagefont금(奚琴)을 혀거를 드로라"라는 구절의 해금과 더불어, 여러 감로탱에 등장하는 솟대타기 연희자의 대금 연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솟대타기 항목 참조)

참고문헌

  • 신근영, 「솟대타기의 역사적 전개와 연희양상」, 『민속학연구』20, 국립민속박물관, 2007.
  • 심우성, 『남사당패연구』, 동화출판공사, 1974.
  • 이호승, 「한국 줄타기의 역사와 연행양상」,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 전경욱, 『한국의 전통연희』, 학고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