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가마

숯가마

[ 炭窯 ]

고대 숯을 구웠던 시설이다. 최근 들어 발굴조사 예가 증가하여 울산 검단리, 경주 천군동, 청도 순지리, 경주 손곡동·월산리, 울산 달천리, 청원 오창유적, 김해 화정동, 청주 용암동 등의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이 유구의 공통된 특징은, 우선 입지가 구릉의 완만한 경사면에, 주축을 등고선과 같은 방향으로 만들었고, 반지하식이며 가마 바닥 경사도가 거의 없다. 측벽에 터널형의 측구(側口)가 다수 설치되어 있고, 측구 앞에는 구덩이로 된 작업장이 연결되어 있다. 양단벽에는 화구와 연도를 각각 구축하였는데, 화구는 가마 폭보다 약간 좁게 돌출시켰고, 연도는 오벽의 중앙 또는 모서리에 가마바닥과 같은 높이로 이어지다 다시 수직으로 꺾여 올라간다.

이와 같이 평면형태가 특이하고, 내부 출토유물이 없어 그 성격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같은 형태의 가마가 다수 확인된 일본측 연구결과에 따라 숯가마로 추정하면서도 국내 자료의 부족으로 평면형태에 따라 ‘피리형 가마’로도 불려졌으나, 최근 경주 손곡동 유적의 13호 가마 내부에서 다량의 숯이 출토되어 숯가마임을 시사한 바 있다.

소성부의 천장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구축방법과 구조를 일부나마 알 수 있는 자료는 가마바닥에 일정간격으로 파여져 있는 기둥구멍과 측구·화구부·연도부의 천장 높이 정도이다. 기둥구멍은 천장을 구축하기 위해 일정간격으로 기둥을 세운 다음, 각 기둥 사이를 도리로 연결하고, 도리와 벽체 사이에 서까래를 걸치고, 점토를 덮어 천장을 만든 것으로 판단되나 내부 기둥구멍이 없는 유구는 다른 방법으로 가마를 구축하였을 것이다. 일부 발굴자료로 볼 때 화구천장은 1m 전후의 높이로 남아 있다. 그러나 소성부 천장이 남아 있지 않은 점은 소성부의 천장이 화구부의 천장보다 높았기 때문이며, 가마 내에 나무를 쌓을 때의 활동공간을 고려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숯은 표면색·착화정도·화력·연소속도 등에 따라 흑탄(黑炭)과 백탄(白炭)으로 구분하며, 이는 숯의 용도에 따라 제탄과정에서 기술적 조작에 의해 생산된다. 즉, 흑탄과 백탄 모두 점화·탄화·정련의 과정을 동일하게 거치는데, 연소과정에서 흑탄은 가마의 화구 및 연도를 폐쇄, 밀봉한 후 자연소화를 기다려 가마 밖으로 끄집어내는 반면, 백탄은 정련상태의 목재를 가마외부로 끄집어내어 재·흙 등을 덮어 강제소화를 시킨다.

이러한 제탄과정으로 미루어 볼 때, 측구의 바닥이 움푹하게 파여져 있는 것은 정련된 목재를 강제소화하기 위해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생겨난 자국으로 판단되며, 측구 앞의 구덩이 작업장은 정련된 목재를 강제소화하기 위한 장소로 보여져, 이와 같은 형태의 가마는 백탄을 생산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생산된 백탄의 용도에 대하여는 일본의 경우 이 유구와 인접하여 제철유적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제철용 백탄을 생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숯가마의 조업연대에 대하여는 고지자기연대측정 결과와 가마 구축 도구가 철제농공구인 점으로 미루어 4세기 전후로 보고 있으나 일부 유구에서 출토된 토기편을 기준으로 5세기 중반까지 내려볼 수도 있다.

앞으로 제탄과정과 각 부위의 기능, 생산된 숯의 용도에 대하여 보다 분명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남은 상태가 좋은 가마가 발굴되어야 하며, 현대의 제탄기술을 면밀히 검토·적용하여 실험적으로 숯을 생산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慶州競馬場豫定敷地(A地域)發掘調査 指導委員會 및 現場說明會 資料(國立慶州文化財硏究所, 1998년·2000년)
  • 慶州月山里貨物駐車場敷地內 遺蹟 現場說明會資料(國立慶州文化財硏究所, 1999년)
  • 淸州龍岩遺蹟發掘調査略報告書(韓國文化財保護財團, 1999년)
  • 慶州競馬場豫定敷地 C-Ⅰ地區 發掘調査報告書(韓國文化財保護財團, 1999년)
  • 김해 화정유적 현장설명회자료(釜山市立博物館, 1998년)
  • 피리형가마의 性格과 編年(李惠京, 1998년)
  • 蔚山檢丹里마을遺蹟(釜山大學校博物館, 1995년)
  • 慶州 千軍洞 避幕遺蹟 發掘調査報告書(國立慶州博物館, 19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