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장리 제철유적

석장리 제철유적

[ 鎭川 石帳里 製鐵遺蹟 ]

지역 진천
B-23호 원형 제련로

B-23호 원형 제련로

송풍관(送風管). 지름 24cm

송풍관(送風管). 지름 24cm

충청북도(忠淸北道) 진천군(鎭川郡) 덕산면(德山面) 석장리(石帳里)에 소재한 삼국시대의 제철유적이다. 이 유적은 철의 제련(製鍊)과 정련(精鍊), 단야(鍛冶) 등 일련의 철생산 공정이 한 장소에서 이루어졌음이 발굴을 통해 확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발굴된 유구들은 대개 3~4세기경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국 제철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제철과 관련된 유물과 유구 등은 석장리 일대에서 총 7개소가 확인되고 있어서 이 일대에 하나의 고대 제철유적군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모두 나지막한 야산의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그 중 한 지점이 1994년과 95년에 걸쳐 국립청주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어 유적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A와 B구역으로 나뉘어 조사된 발굴지역 안에는 다양한 형태와 성격의 노적(爐跡)이 밀집되어 있어 일정시기 동안 집중적으로 조업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발굴된 노(爐)의 형태로는 원형로(圓形爐), 소형원형로(小形圓形爐), 장방형로(長方形爐)를 비롯하여 대형상형로(大形相形爐)가 발견된다. 또 노의 성격에 따라 본다면 제련로(製鍊爐), 정련로(精鍊爐), 용해로(鎔解爐), 단야로(鍛冶爐) 등으로 나눌 수 있어, 제철과 정련 및 2차 가공작업 등이 집중적으로 이루어 졌음이 확인되었다.

상형로는 지금까지 고대 일본의 독특한 제철기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만 알려져 왔는데 석장리 유적에서 발견됨으로서 백제와 고대 일본간에 제철기술의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상형로는 길이, 너비가 6.4×6.0m 되는 규모의 ‘ㄷ’자형의 구덩이를 판 뒤, 바닥에는 점토와 목탄을 번갈아 깔고 그 위에 2개의 노를 설치하였다. 2개의 노 중에 큰 것은 대형제철로(大型製鐵爐)가 분명한 세장방형(細長方形)의 상형로이고, 작은 것은 장방형의 상형로이며, 제철로 옆에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제철 다음 공정을 위한 노로 추측된다. 원형로의 기본형은 아래로 원추형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점토로 노벽을 만들었으며 경사면 아래쪽으로 배재부(排滓部)를 만들었다. 석장리의 원형수로(圓形竪爐)는 지름이 1.0m 정도 되어 다소 큰 것이 특징이다.

석장리 제철유적에서는 철의 원료로 사용된 철광석과 사철이 모두 나왔는데 사철과 같은 형태의 원료를 당시 사용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밖에도 석회석으로 보이는 물질과 조개껍질, 짐승뼈 등도 출토되었는데 제련할 때 용융점을 떨어뜨리는 용매제나 탄소함량을 낮추는 탈탄제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석장리 제철유적에서 발견된 노 중에는 제련로만이 아니라 용해로나 단야로라고 추측되는 것들도 있다. 가령 쇠도끼범심편(鐵斧范芯片)이 발견되거나 슬래그의 양이 현격히 적은 노(爐)는 용해로일 가능성이 높고, 일부의 노에서는 단조작업 중에 나오는 단조박편(鍛造剝片)이 확인되고 있어 단야로(鍛冶爐)로 추정되기도 한다.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 등의 유물로 연대를 추정해 보면 3세기 말에서 5세기 초 정도인데 이미 대형상형로를 포함한 다양한 제철로가 존재하였음이 밝혀져 백제의 제철기술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짐작하게 해 주었다. 특히 석장리 제철유적은 제련에서 단야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공정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유적이기 때문에 당시 철 생산체계 혹은 조업형태 등에 대한 연구에 크게 공헌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 鎭川 石帳里 鐵生産遺蹟(이영훈, 鐵의 역사, 국립청주박물관, 1997년)
  • 鎭川 石帳里 鐵生産遺蹟의 調査成果(申鍾煥, 新羅考古學의 諸問題, 韓國考古學會,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