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고리

띠고리

[ 鉸具 ]

석암리 9호분 출토 금제교구. 길이9.4cm

석암리 9호분 출토 금제교구. 길이9.4cm

칠성산 96호분 출토 과대교구

칠성산 96호분 출토 과대교구

띠고리(鉸具)는 혁대(革帶)나 포대(布帶)의 한쪽 끝에 부착해서 대(帶)의 다른 한쪽 끝을 끼워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고고학유물로서는 주로 삼국시대의 고분(古墳)에서 다양한 종류가 출토되고 있으며 금속제(金屬製)의 띠고리만이 알려져 있다. 고구려나 백제의 고분에서 출토된 사례가 꽤 있지만 가장 많은 종류와 양이 출토되는 곳은 신라와 가야지역이다.

고분 출토품 중에 흔히 알려지기로는 허리띠(銙帶)의 한 부속구(附屬具)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허리띠는 특별한 신분의 무덤에서만 출토되는 것으로, 출토사례로서 더 흔하기는 마구(馬具)나 화살통(盛矢具)의 부속품인 경우가 아닐까 한다. 띠고리는 반원 혹은 반타원형의 외륜(外輪)에 짧은 봉상의 침이 가운데로 건너질러 걸쳐지도록 한 형태이므로 같은 대의 결합구(結合具)라 하더라도 판상(板狀), 봉상(棒狀), 동물상(動物狀)의 대구(帶鉤)와는 다르다.

대금구(帶金具)의 하나로서는 중국에서 양(兩) 한대(漢代)까지 곡봉형대구(曲棒形帶鉤)가 사용되다 진(晋)대 이후 띠고리(鉸具)가 등장하여 그것을 대체하고, 남북조(南北朝)와 수당대(隋唐代)에 크게 발전하고 한국의 삼국시대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스키타이-흉노계 문화지역에는 각종 문양이 부조(浮彫) 혹은 투조(透彫)된 판상대구와 동물형대구 등에 자주 나타난다.

한국의 원삼국시대에는 중국 혹은 낙랑으로부터 유래한 곡봉형 대구도 있지만 호형(虎形) 혹은 마형(馬形)의 대구(帶鉤)가 자주 보이며, 4세기대 들어서면 마구류의 혁대 부속구로 대소의 철제(鐵製)띠고리가 자주 출토된다. 5-6세기대에 들어서면 주로 신라·가야의 고분에서 화려한 허리띠(銙帶)의 한 부속으로 사용된 금제나 은제의 띠고리가 많이 보인다.

한국에서 출토된 금속제 교구로서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고 가장 화려한 것은 석암리(石巖里) 9호 낙랑(樂浪)고분(古墳)에서 출토된 용문(龍文) 띠고리이다. 누금(累金) 수법으로 표현된 7마리의 용과 비취옥으로 장식된 것으로 그 계보가 궁금한 유물이다. 고구려지역에서의 띠고리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과대장식판은 몇 예가 있어서 당연히 백제나 신라가야의 그것과 유사한 띠고리가 있었다고 믿어진다.

백제의 띠고리로는 무녕왕릉(武寧王陵)에서 출토된 은제(銀製)허리띠(銙帶)의 띠고리가 있고 신라와 가야의 고분에서는 허리띠의 부속으로서 은제, 금제, 금동제의 화려한 띠고리가 출토된 예는 수없이 많다. 대개 신라·가야의 고분에서 출토된 띠고리는 주로 외륜의 형태에서 차이가 있는데 양산(梁山) 부부총(夫婦塚)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반환형(半環形)에 가까운 것에서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에서 출토되는 것과 같이 세장(細長)한 ‘山’자형에 끝이 심엽형(心葉形)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7세기대에 들어오면 당대(唐代)의 복식이 영향을 주어 새로운 허리띠금구의 문화가 보급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신라지역, 즉 경상도지역의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여기에 딸린 띠고리는 외륜이 횡(橫)으로 반타원형을 한 형태이다.

참고문헌

  • 韓國의 과帶金具에 대하여(臼杵勳, 伽倻通信 18, 1988년)
  • 古代 東アジアの 裝飾墓(町田章, 同朋社, 1987년)
  • 한국 복식의 역사-고대편(이은창,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년)
  • 唐代の服飾(原田淑人, 東京大學, 1970년)
  • 漢六朝の服飾(原田淑人, 東洋文庫, 196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