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뚜껑움무덤

돌뚜껑움무덤

일반적으로 장방형의 무덤구덩〔墓壙〕을 파고 그 위에 판돌형〔板石形〕의 돌로 상부를 덮는 구조의 무덤으로 움무덤〔土壙墓〕의 일종이다. 청동기시대에는 공주 남산리, 보령 관창리 유적의 무덤처럼 장방형의 무덤구덩 위에 뚜껑돌〔蓋石〕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되는 움무덤이 있는데 이들은 뚜껑돌이 제거된 상태의 돌뚜껑움무덤이거나 목재로 상부를 덮은 무덤으로 판단된다.

돌뚜껑움무덤은 대부분 네 벽이 순수한 움의 형태를 보이지만 일부 벽에는 판돌형의 벽석(壁石)이 발견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논산 마전리 1·17·39호, 서천 오석리 9호, 진안 여의곡 56호, 전주 여의동 1호에서는 일부 벽석이 확인되고 있다. 바닥시설로는 돌널무덤과 마찬가지로 생토를 그대로 사용한 경우, 깬돌〔割石〕이나 강돌〔川石〕로 바닥을 깐 경우, 송국리식토기(松菊里式土器)를 전면이나 일부에 까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구조와 출토유물의 양상은 돌뚜껑움무덤이 돌널무덤〔石棺墓〕과 깊은 문화적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돌뚜껑움무덤의 내부에는 함안 오곡리, 완주 반교리, 진안 모정리 여의곡 유적의 일부 무덤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매장시설로서 나무널〔木槨〕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으나 아직은 단언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돌뚜껑움무덤은 무덤구덩의 축조방법에 따라 일단(一段)의 무덤구덩 위에 뚜껑돌을 덮는 일단돌뚜껑움무덤과 상하 이단(二段)으로 축조된 이단돌뚜껑움무덤으로 나누어진다. 이단돌뚜껑움무덤의 최상부는 어떠한 시설도 발견되지 않지만 판돌을 깔거나 봉분(封墳) 시설과 같이 무덤을 표지(標識)하는 일련의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진안 모정리 (여의곡) 유적Ⅰ에서 발견된 이단돌뚜껑움무덤의 최상부에는 일련의 적석시설(積石施設)이 보이고 있다. 돌뚜껑움무덤에서 발견되는 유물은 거의 대부분 민무늬토기〔無文土器〕편, 돌화살촉〔石鏃〕, 돌검〔石劍〕 등이다.

돌뚜껑움무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송국리형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먼저 돌뚜껑움무덤은 금강중하류 지역에서 가장 밀집된 분포를 보이면서 돌널무덤, 독널무덤〔甕棺墓〕과 혼재되어 발견된다. 그러나 서해안 일대와 금강상류, 전남 일대, 남강유역에서는 분포의 밀도가 점차 줄어들고 고인돌〔支石墓〕과 혼재되어 발견되기도 한다. (김승옥)

참고문헌

  • 금강유역 송국리형 묘제의 연구-석관묘·석개토광묘·옹관묘를 중심으로-(김승옥, 한국고고학보 45, 2001년)

동의어

석개토광묘(石蓋土壙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