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창

가지창

[ 三枝槍 ]

옥전 M3호분 사지창

옥전 M3호분 사지창

긴 자루를 가진 장병무기(長柄武器)인 창의 끝 부분 중에는 선단부가 2갈래, 혹은 3갈래 이상 갈라져 있는 종류가 있는데 이를 차(叉)라고 부른다. 가지창(三枝槍, 二枝槍 등)은 차의 일종으로서 창 끝이 갈라져 있는 것을 총칭하며 갈래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 가운데 철모를 두고 창의 양쪽 기부에서 가지가 뻗은 것처럼 된 것도 있고 3∼4세기대 장신(長身)의 철모 양쪽에 궐수문(蕨手文)장식을 붙이는 것도 넓게 보면 가지창이라 할 수 있다.

적을 찔렀을 때 큰 범위의 상처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이러한 병기가 나타나게된 계기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혹자는 물고기를 찔러 잡는 어구의 일종에서 출발하였다고 하기도 하고 일설에는 농구 중에 쇠스랑을 모방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끝에 미늘이 있는 가지창의 예를 보면 전자의 설이 타당할 듯도 하고, 굽은 형태도 있는 예를 보면 후자의 추론이 옳을 듯도 하다. 고고학 자료로는 주로 5∼6세기대 삼국 각 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예가 여럿 있어서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 모두 사용했던 병기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의 경우는 세 가닥으로 갈라진 창이 집안(集安)의 만도리 고분에서 출토된 예가 있는데 찌르는 창이라기보다는 끌어당기는 갈고리의 일종으로 이해된다.

백제지역에서는 공주(公州) 송산리(宋山里) 2호분, 보통동(甫通洞) 4호분 등에서 발견된 예가 있으며 형태가 잘 남아 있는 것으로는 나주(羅州) 반남면(潘南面) 신촌리(新村里) 9호분 을관(乙棺)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백제의 가지창은 모두 투겁을 지니고 있어 전형적인 창끝으로 기능하였으리라 추측된다.

또한 백제의 부소산성(扶蘇山城)에서는 2지창이라고 하는 특이한 창도 나왔는데 빗겨간 창을 잡아당겨 걸리는 적을 살상하는 데 효과적일 듯하다. 특히 양쪽 가지가 직각으로 꺾여 있는 ‘山’자형의 가지창은 대구 비산동(飛山洞) 고분군에서도 출토되었다. 가지창이 가장 많이 출토되는 곳은 신라(新羅)와 가야(伽耶)의 고분이다. 신라·가야고분에서는 가지창이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자루에 끼우는 데 있어서 투겁을 가진 것과 투겁 없이 판상(板狀)의 뿌리(莖部)를 나무자루에 결박할 수 있도록 된 것으로 나뉘어진다.

투겁을 가진 것 중에는 비산동(飛山洞) 고분에서 출토된 ‘山’자형으로 된 것과 황남대총(皇南大塚)에서 출토된 것처럼 단면 능형(菱形) 철투겁창(鐵矛)의 기부에 양쪽으로 가지를 친 것처럼 된 것 등이 있다. 김해(金海), 창녕(昌寧), 합천(陜川) 낙동강 유역의 가야 제(諸)지역에서 출토되는 가지창들은 투겁이 없이 3가닥 혹은 4가닥의 철봉을 한쪽 끝에서 맞붙여 뿌리(莖部)를 만들었다.

이들 가지창은 보통 선단부에 미늘이 있어서 어구가 무기로 전화되었을 가능성을 내다보게 한다. 낙동강 유역에서 나온 가지창(三枝槍) 중 가장 이른 것은 김해 대성동(大成洞) 2호분에서 출토된 것이며 창녕 계성리 1호분에서 출토된 것은 후속형식으로 간주할 만하다. 비슷하게 제작되었지만 합천 옥전(玉田) M3호분에 출토된 것은 삼지(三枝)가 아니라 사지창(四枝槍)이어서 특이하다. 가장 주목되는 형식은 마산(馬山) 현동(縣洞) 유적의 64호분에서 출토된 것인데 3가닥의 가는 철봉(鐵棒)을 3방향으로 뻗어나가게 한 채 결합한 것이다.

가지창 본문 이미지 1

참고문헌

  • 武器와 馬具(金基雄, 韓國史論, 國史編纂委員會, 1985년)
  • 武具(李殷昌, 韓國の考古學, 河出書房新社, 197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