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인간의 관계

양과 인간의 관계

양모

양모

양은 개 다음으로 가축이 된 동물이다. 종래에는 양이 신석기시대에 사람이 정주적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사실은 그보다 훨씬 빨리 농경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순화되어 있었다. 중석기시대에는 염소와 함께 양을 수렵하였는데, 양은 군생 동물로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양은 반드시 한 번 왔던 길을 다니는 습성이 있으므로, 처음에 사람들은 돌아오는 야생의 양떼를 기다렸다가 사냥을 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식량으로 야생의 양을 필요로 하는 일이 많아지자 이번에는 직접 양떼를 따라 사람도 이동하면서 필요에 따라 양을 잡아서 고기와 가죽을 이용하였다. 즉, 양에 기생하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 사람은 야생의 개가 야생의 양떼를 교묘하게 유도하여 좁은 골짜기로 몰아넣은 뒤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개를 길들여서 가축으로 삼아 야생의 양떼를 사람이 바라는 대로 유도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야생의 양은 사람에게 길들여지게 되었고, 곧 양을 거느리는 최초의 유목민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흔적은 BC 6000년경 농경시대 이전의 이란의 옛날 유적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무렵에 이미 양젖도 이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도 인류가 처음으로 젖을 얻은 동물은 양이었을 것으며, 우유의 이용도 양젖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에는 소의 뒤쪽에서 뒷다리 사이로 젖을 짰는데, 이것은 원래 양젖을 짜던 방법이었다.

양의 털 밑에 생기는 부드러운 면모(緬毛)의 이용은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서아시아에서는 지방이 포함된 이 털에서 펠트를 처음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 지방은 펠트의 중요한 산지로 알려져 있다.

양의 가죽은 추운 지방에서 의복이나 덮개로 이용되었는데, 특히 새끼 양의 가죽은 아스트라한으로 유명하다. 한편, 양의 부드러운 가죽은 그리스·로마 시대에 글을 쓰기 위한 양피지로 이용되었고, 중세에도 그리스도교의 성서를 여기에 썼으나, 11세기경에 제지술이 중국에서 서아시아를 거쳐 에스파냐로 전래되면서 점차 종이로 대체되었다.

양은 무엇보다도 털의 이용이 중시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메리노양은 에스퍄냐에서 번식에 성공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근원은 로마시대 이전에 서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 로마인이 이 종을 북아프리카와 에스퍄냐로 전하고, 이것이 에스퍄냐에서 완성되어 근세 이후에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양은 가축으로서 말·소에 못지않은 이용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고대의 수메르·이집트·그리스·로마·게르만 민족들도 이 점을 중요시하여 신에게 제물로 바쳤으며, 신의 신성수(神聖獸)로서 경애되기도 하였다. 한편 동양의 고대 중국에서는 은(殷)나라 때부터 식용하고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금나라에서 면양을 들여와 사육한 기록이 있다.

한방에서 양은 기(氣)를 돋우는 식품으로 보고 있다. 《본초강목》에 양고기는 중풍을 다스리고 기를 돋운다고 하였으며, 《규합총서》에서는 양고기의 성질이 크게 더우므로 허약하고 몸이 찬 사람에게 성약이지만 어린아이나 임산부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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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털깎기 조각상

양털깎기 조각상 뉴질랜드는 양모산업이 유명한 곳으로 매년 목축과 관련된 많은 축제가 열린다. 높이 7m의 거대한 양털깎기 조각상은 뉴질랜드 목축산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뉴질랜드 북섬 테 쿠이티 소재.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