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석기시대

한국의 신석기시대

동아시아의 신석기 문화

동아시아의 신석기 문화

한국에서는 대체로 BC 6000년경부터 신석기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 시대에 사용된 토기는 빗살무늬토기로 양식에 있어서 함북지역과 기타 지역의 2가지로 구분되며, 유사성도 있으나 차이점이 더 많다. 황해안과 남해안지방의 빗살무늬토기는 결이 고운 사질토(砂質土)에 활석과 석면을 보강제로 섞었고 무늬에는 대개 사단선무늬[斜單線文]·어골무늬[魚骨文] 등이 그려져 있다. 이에 대하여 함북지역의 것은 예외없이 밑이 편평하고 점토(粘土)로 바탕흙을 이루었으며, 무늬도 번개무늬[雷文]와 같은 특수한 것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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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삼동(東三洞) 패총에서 빗살무늬토기층 밑에 새로운 토기층이 발굴되었는데, 이 토기는 바닥이 둥근 민무늬[無文]토기로, 원시 민무늬토기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 신석기시대의 주류는 빗살무늬토기이며, 이를 사용한 빗살무늬토기인들은 초기에는 주로 해안이나 강변에서 어로·수렵·채집으로 생활하였으나, 말기에 이르러 ··수수 등의 곡식을 생산하게 되는 농경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智塔里) 유적에서 돌가래·돌보습[石犁]·돌낫 등의 농기구와 탄화된 곡물이 발견되어 농경 사실이 입증되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해안과 강변에 거주했던 빗살무늬토기인들은 점차 내륙지방으로 진출했는데, 이들은 원형 또는 방형의 움집을 짓고 살았다. 웅기(雄基)의 패총 움집에서는 오늘날의 화덕과 같은 난방장치도 발견되었다.

한국 신석기문화는 대체로 신석기 B군(群)문화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빗살무늬토기인들의 유입 경로는 대체로 3갈래였으며, 랴오둥[遼東]반도를 분기점으로 황해안지역으로 들어온 경로와 두만강 지역을 통하여 동해안을 거쳐 남해안으로 들어온 경로, 그리고 산둥[山東]반도에서 황해안으로 들어온 경로로 짐작된다. 오산리(鰲山里) 하층의 토기는 중국 북동지역의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에서도 빗살무늬토기 계통의 신석기문화가 영위되었는데, 이 지역의 토기는 조몬[繩文]토기로 명확한 농경 흔적은 보이지 않고, 유라시아 북부와 관련된 문화계통으로 생각되나 정체적(停滯的) 신석기문화가 특징이었다.

한편 1983년 5월에는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平海邑) 후포리(厚浦里)에서 BC 10세기 전후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 말기의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황갈색 점토층에 인골(人骨)과 더불어 돌도끼가 널려 있는 한국 최초의 신석기시대 매장시설(埋葬施設)이다. 그 양식은 돌도끼를 무수히 깔고 그 위에 세골(洗骨)한 것으로 보이는 인골을 안치하는 방식으로 3∼4층위를 이루고 있다.

정교하게 가공된 돌도끼는 길이 4∼5 cm의 소형과 80 cm가 넘는 대형 등 다양하나 거의가 대형으로 모두 120여 개가 출토되었다. 학계에서는 이제까지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대부분이 주거지(住居址)인데 매장형식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 역사적 가치를 들고, 특히 돌도끼의 모양이 종래의 민무늬토기시대의 것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띠며 인골과 돌널[石槨]이 그대로 발견되어 신석기시대 묘제(墓制)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