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한관계

미국의 대한관계

한미 관계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과 이어진 신미양요(1871)가 계기가 되었다. 이후 조선 정부 내에서 미국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었고 고립주의 정책을 완화하고 나서도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반도보다는 스페인과의 전쟁의 결과로 차지하게 된 필리핀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결국 미국은 일본과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대한 우월권을 인정해 주고, 그 대신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카스라-태프트’ 밀약을 맺기에 이른다. 조선-미국의 정부 간 공식관계 이외에 민간인 교류는 주로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이 선교 부대사업으로 시작한 의료, 기술, 교육, 학술 관련 사업들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한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 당시 설립된, 배재학당, 이화학당, 숭실학당, 연희전문 등이 한국의 근대 교육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미국과 한국이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일제의 패망 직후 1945년 8월 25일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38도선을 경계로 분할 점령을 발표한 이후다. 미국은 남한에 대하여 하지 중장이 지휘하는 ‘재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을 설치하고 3년 간의 미군정을 시작하였다. 미국은 권력 공백 상태인 한국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서 1947년 10월 유엔에 ‘한국독립촉진결의안’을 제출하였다. 결국에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남한에 단독정부가 세워지면서 1945년 8월 15일 0시를 기하여 미군정은 폐지되었다. 뒤이어 1949년 6월 미국은 500여 명의 병력과 군사고문단만을 남기고 미군을 전면 철수하였고, 이것이 1950년의 한국전쟁, 즉 북한의 남침을 유발하는 큰 요인이 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즉각 참전을 결정하고 기존의 38선 획정을 백지화하여 유엔군을 북진시켰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14일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넘겼다. 전시작전권은 2022년 현재까지 미국이 행사한다. 한국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은 휴전을 추진하였고 휴전에 반대하였던 이승만 정권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결국 1953년 7월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졌고 이를 계기로 한국과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책임진다는 의지를 표명하게 되었다.

휴전협정 이후 미국은 한국을 다방면으로 지원하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군사적 지원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으로 한국군의 현대화를 지원하고, 최신예 전투기를 한국에 배치하여 공군력을 강화하였으며,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정례화하였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에 본격적으로 경제 원조가 이루어졌는데, 이 당시 미국이 지원한 무상원조와 차관은 한국 국민의 생존과 경제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또한 한국은 거대한 미국 시장을 잘 활용하여 수출산업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한국의 대미수출 의존도는 1961년의 16.6%로부터 1968년에는 51.7%로 그 상승곡선의 정점에 달하여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였고, 그 후 다각적인 수출정책에 따라 1976년 32.3%, 1989년 12%, 1994년 21.4%로 점차 낮아졌으며, 2021년에는 약 15%로 감소하였다. 초기에는 한국이 대규모의 대미무역흑자를 기록하였으나 현재는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2020년 현재 한국의 대미국 수출은 741억불, 수입은 574억불로서 한국이 166억불 가량 상품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였다.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주로 승용차, 반도체, 자동차부품,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기기 등을 수입하고, 석유, 반도체창비, 농축산품 등을 수출한다.

한미 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자유무역협정을 이어왔고 마침내 양국 간의 FTA가 2012년 3월 15일을 기해 발효되었다. 개정 한미 FTA도 2019년 1월 1일부로 발효되었다. 한미 FTA를 계기로 양국 간의 교역을 이전에 비해 약 30% 가량 증가하였고, 직접투자 또한 크게 증가하는 등 양국 간의 경제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미국과 한국 간에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협정에 반대하면서 미국이 이승만 제거 작전을 고려하기도 하였고(실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음), 미국의 카터 행정부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한국의 인권 상황을 문제삼고 나서 한미 간의 갈등이 표면화된 적도 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일부 미군의 문제적인 행태 때문에 반미 감정이 국민들 사이에 퍼졌던 적도 있다. 그러나 현재도 여전히 미국은 한미동맹관계를 바탕으로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한국에 가장 중요한 국가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불가피하게 안보의 중요한 부분을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혹은 한국의 정권 성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한국에게 있어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