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 Horace Grant Underwood ]

요약 미국인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한국 광혜원에서 물리·화학을 가르쳤으며 서울 새문안교회와 기독교서회를 세웠다.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하였고 경신학교에 대학부를 개설, 연희전문학교로 발전시켰다.
선교100주년 기념탑

선교100주년 기념탑

출생-사망 1859.7.19 ~ 1916.10.12
국적 미국
활동분야 종교·교육
출생지 영국 런던
주요저서 《말본》 《한국어 소사전》(1890), 《한국선교 23년》(1908)

영국 런던에서 출생하였으며 미국으로 이주하여 1881년 뉴욕대학교를 나왔고 1884년 뉴브런즈윅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885년 H.G.아펜젤러 목사와 함께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가 되어 조선(朝鮮) 제물포를 통해 입국하였다. 선교활동을 위해 1년간 의학공부를 하였으며 광혜원(廣惠院, 제중원으로 변경)에서 진료와 간호를 담당하였고 제중원(濟衆院) 산하 의학교에서 물리·화학을 가르쳤다. 1886년 고아들을 모아 고아원(후일 경신학교가 됨)을 설립하였고 1887년에는 벽지전도부터 시작하였다. 1889년에는 제중원 여의사였던 릴리어스 호턴과 결혼하였는데 건강이 악화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1892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으며 병든 환자와 고아들을 돌보는데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1887년 서울 새문안교회를 설립하였고 1889년에는 기독교서회(基督敎書會)를 창설하였다.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 그 회장 등을 역임하며 성서의 번역사업을 주관하는 한편, 1890년에 《한영사전》, 《영한사전》을 출판하고, 1897년에는 주간지 《그리스도신문》도 창간하였다.

1900년 기독청년회(YMCA)를 조직하였으며, 1915년에는 자신이 설립한 경신학교(儆新學校)에 대학부를 개설하여 교장으로 취임했고,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의 전신)로 발전시켰다. 1916년 신병으로 귀국, 애틀랜틱시티에서 사망하였다. 한국 개화기에 종교·정치·교육·문화 등 여러 분야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주요 저서에 《말본》, 《한국어 소사전 A Concise Dictionary of the Korean Language》(1890), 《한국선교 23년 For Twenty-three Years, a Missionary in Korea》(190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