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

새문안교회

[ Saemoonan Presbyterian Church ]

요약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
새문안교회

새문안교회

구분 교회
설립일 1887년 9월 27일
설립목적 그리스도교 전파
주요활동/업무 국내선교·국제선교·의료선교·봉사활동
소재지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42
규모 연건평 500평

새문안교회는 1885년 4월 5일 입국한 선교사 언더우드(H.G.Underwood)가 정동 (貞洞) 자택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으며, 1886년 5월에는 교회 내에 경신학교(儆新學敎)의 전신인 고아학교 언더우드학당을 설립하여, 독립운동가이며 민족지도자인 송순명, 안창호, 김규식 등을 배출하였다.

1887년 9월 27일 14명의 신자가 모여 2명의 장로를 선임, 당회를 구성함으로써 최초의 조직교회가 되었으며, 명칭은 광화문 서편의 돈의문(敦義門), 즉 새문안[新門內]에 있다는 의미에서 새문안교회라고 하였다. 1888년 말 신자수는 5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1891~1893년에는 목사 마펫(S.A.Moffett)이 당회장으로 있었다. 1895년 지금의 피어선빌딩 자리에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세웠다.

1904년 10월 손순명(孫順命)이 장로로 장립(將立)되면서 한국교회 최초의 당회(堂會)가 구성되었으며, 1910년 5월 29일에는 현 위치에 예배당을 신축, 이전하였다. 이때 최초의 한국인 목사 서경조(徐景祚)가 협동목사로 있었다.

1916년 10월 12일 언더우드의 사망으로 목사 쿤스(E.W.Koons)가 뒤를 이어 5년간 당회장으로 시무하였으며, 이 기간에는 서울 인근지역에 대한 전도사업을 추진하였다. 1920년 12월 차재명(車載明)이 3대 목사로 부임함으로써 한국인 최초의 당회장 목사가 되었다.

6·25전쟁중에는 1944년 부임한 5대 당회장인 목사 김영주(金英珠)가 납북되었으며, 1953년 9월 6일 부산에서 환도하였다. 6·25전쟁 후 강태국(康泰國)에 이어 1955년 강신명(姜信明)이 목사로 부임하였으며, 제1회 새문안 보육생이 졸업하였다. 1957년 새문안교회 보이스카우트 발대식을 가졌으며 1960년 처음으로《새문안지》를 발간하였다.

1966년 7월 7일 멕시코 선교사로 목사 우상범을 파견하였으며, 1967년 9월 27일 언더우드기념관을 준공, 현재까지 교육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967년 대학생회가 창립되어 농촌근로봉사활동과 도시야학운동을 통해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1968년에는 목사 김응삼이 타이완 선교를 하였다. 1972년 새문안교회청년성가대를 처음 발족하고, 1972년 11월 26일 현 위치에 연건평 500평의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1973년 4월 20일《새문안교회85년사》를 발간하였고, 1981년 김동익(金東益)이 목사로 부임하였다. 1987년 9월 교회창립100주년을 맞아 《새문안교회문헌사료집》·《사진으로 본 새문안 100년》·《새문안 교회 100년사》를 발간하였다. 1998년 3월 13일 교회음악교육원이 언더우드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개원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노회 소속이며, 부설기관으로는 수양관·어린이집·교회 음악교육원·동작이수사회복지관이 있다. 국내선교·해외선교·북한선교·의료 선교 등의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하며,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간행물로는 《새문안지》가 있으며, 교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1가 42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