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의 연혁

포천시의 연혁

포천향교

포천향교

영평천 유역의 영중면 양문리와 관인면 중리 등지에서 채집된 몸돌·격지 등의 구석기 유물, 영중면의 포천 영송리 선사유적(경기도기념물 140)과 관인면 중리 등지에서 수습된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조각들, 가산면 금현리와 창수면 추동리 등지에 남아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등 선사시대에 포천 지역에서 사람이 거주하였던 유적 및 유물이 확인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먼저 백제의 영역에 속하여 자작리 유적지(경기도기념물 220)에 한성 백제기의 마을 유적이 남아 있으며, 소흘읍의 포천 고모리산성(경기도기념물 185)도 이 시기에 축조되었다. 이후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고 지금의 포천 일대에는 마홀군(馬忽郡)을 비롯하여 양골현(梁骨縣)과 내을매현(內乙買縣, 지금의 동두천시)을 설치하였다. '마홀'은 '물골'이라는 뜻이며, 지금의 지명인 '포천(抱川)'도 '내를 안고 있는 고을'이라는 뜻으로, 모두 이 지역에 흐르는 하천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551년(성왕 29) 백제가 신라와 연합하여 일시적으로 회복하였으나 553년(진흥왕 14) 신라가 백제를 축출하고 한강 유역을 장악하여 신주(新州)를 설치하였다. 신주는 이후 북한산주(北漢山州)·남천주(南川州)·한산주(漢山州) 등의 변천을 거쳐 757년(경덕왕 16)에 한주(漢州)로 개편되었다. 한주에 속한 마홀군은 견성군(堅城郡)으로 개편되었고, 양골현과 내을매현은 각각 동음현(洞陰縣)과 사천현(沙川縣)으로 개칭되어 견성군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고려가 개국한 뒤, 940년(태조 23) 견성군이 포주(抱州)로 개칭되었으며, 983년(성종 2)에는 지방 행정구역이 12목(牧)으로 정비되어 양주목(楊州牧)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 전국이 10도(道)로 재편되어 관내도(關內道)에 속한 포주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파하였다. 이후 전국 행정구역이 5도양계로 정비되면서 1067년(문종 21) 양주목이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어 포주와 사천현은 남경의 직할지가 되었고, 1172년(명종 2) 포주에 지방관으로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한편, 동음현은 1018년(현종 9) 동주(東州, 지금의 철원)에 예속되어 감무가 파견되었으며, 1268년(원종 9)에는 임연(林衍)과 함께 김준(金俊)을 제거한 위사공신 강윤소(康允紹)의 고향이라 하여 영흥현(永興縣)으로 승격되었다. 1390년(공양왕 2) 경기 지역이 경기좌도와 경기우도로 분리되면서 포주와 영흥현·사천현은 경기좌도에 속하였다.

조선이 개국한 뒤, 1393년(태조 2) 영흥현이 영평현(永平縣)으로 개칭되었다. 1413년(태종 13) 전국 행정구역이 8도(道)로 재편됨에 따라 포주는 포천현으로 개칭되어 영평현과 함께 경기도에 속하였다.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으로 고을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포천현이 영평현에 소속되었다가 다음해에 복구되었고, 1618년(광해군 10) 포천현과 영평현이 합쳐져 영흥도호부(永興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623년(인조 1)에 원래대로 분리되었다. 1836년(헌종 2)에는 영평현에 안치한 헌종의 태실을 가봉(加封)하여 영평군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로 개편되면서 포천현이 포천군으로 승격되어 영평군과 함께 한성부(漢城府)에 소속되었고, 가평군이 폐군되어 포천군에 합쳐졌다. 이듬해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시행되면서 포천군과 영평군은 각각 경기도에 편제되었으며, 가평군도 포천군에서 다시 분리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영평군이 포천군에 편입되어 12개 면(소흘면·군내면·서면·청산면·내촌면·가산면·신북면·영중면·영북면·일동면·이동면·창수면)으로 재편되었는데, 영중면·영북면·일동면·이동면·창수면이 옛 영평군에 해당한다. 1938년에는 군청 소재지인 서면이 군의 명칭을 따라 포천면으로 개칭되었다.

8·15광복 후,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되어 영북면·이동면 전역과 창수면·청산면·영중면의 일부 지역이 포천군에서 제외되었다가 한국전쟁이 정전된 뒤 1954년에 완전히 수복되어 종전의 12개 면으로 복구되었다. 1963년 내촌면에 화현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 포천면 탑동리가 양주군 동두천읍으로 편입되었으며, 1979년에는 포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읍 10면이 되었다. 1983년 연천군의 관인면 전역이 포천군에 편입되고 청산면의 삼정리·갈월리·금동리·덕둔리 등 4개 리가 신북면에 편입되었으며, 청산면의 초성리·대전리·장탄리·궁평리·백의리 등 5개 리가 연천군에 편입되어 청산면은 폐지되고 화현출장소가 화현면으로 승격됨으로써 1읍 11면으로 재편되었다. 1996년 소흘면이 소흘읍으로 승격되었고, 2003년에는 포천군이 도농복합형의 포천시로 승격되면서 포천읍이 폐지되고 포천동·선단동의 2개 행정동이 신설되어 지금의 행정구역 체제가 갖추어졌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읍(소흘읍) 11면(군내면·내촌면·가산면·신북면·창수면·영중면·일동면·이동면·영북면·관인면·화현면) 2행정동(포천동·선단동) 6법정동(신읍동·어룡동·자작동·선단동·설운동·동교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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