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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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김포교육지원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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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동에서 발굴된 찍깨·긁개 등의 석기, 통진읍의 고정리 지석묘(경기도기념물 91) 등 선사시대의 유적 및 유물이 확인된다. 삼한시대에는 지금의 월곶면·대곶면 일대가 마한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에 해당하였을 것으로 비정되며, 삼국시대에는 한강 유역을 가장 먼저 장악한 백제의 영역이었다. 이후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남진정책을 펼쳐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주부토군(主夫吐郡)을 설치하고 수이홀현(首尒忽縣)·검포현(黔浦縣)·호유압현(乎唯押縣)·동자홀현(童子忽縣) 등을 영현(領縣)으로 두었다. 수이홀현은 대체로 지금의 양촌읍·대곶면, 검포현은 지금의 김포본동 등의 행정동 지역과 고촌읍 및 인천 검단 지역, 평유압현(平唯押縣) 또는 평회압현(平淮押縣)이라고도 표기된 호유압현은 지금의 통진읍·월곶면, 동자홀현은 지금의 하성면 지역에 해당한다. 김포의 옛 이름인 '검포(黔浦)'는 부족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포구의 고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후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장악하여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42년(경덕왕 1) 전국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재편하여 김포 지역은 한산주(漢山州)에 속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주·군·현을 정비하여 한산주가 한주(漢州)로, 주부토군은 장제군(長堤郡)으로 개칭되었는데, 장제군은 옛 부평군으로서 대체로 지금의 인천 서구와 부평구·계양구 및 경기도 부천시, 서울 구로구 서부와 강서구 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이때 검포현이 지금의 지명인 김포현(金浦縣)으로 개칭되었고, 수이홀현은 술성현(戍城縣)으로, 동자홀현은 동성현(童城縣)으로, 호유압현은 분진현(分津縣)으로 개칭되어 장제군의 영현이 되었다. 또한 지금의 서울 강서 지역에 해당하는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은 공암현(孔巖縣)으로 개칭되어 율진군(栗津郡, 지금의 과천·군포와 서울 일부)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가 개국한 뒤, 940년(태조 23) 분진현이 통진현(通津縣)으로, 술성현이 수안현(守安縣)으로 각각 개칭되었고, 995년(성종 14) 10도제(十道制)가 실시되어 김포 지역은 지금의 경기도와 황해도 일부를 관할하는 관내도(關內道)에 편제되었다. 1018년(현종 9) 전국이 5도양계(五道兩界)로 재편되면서 김포현·통진현·동성현·수안현·공암현은 양광도(楊廣道)에 속한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수주(樹州, 이전의 장제군)의 속현(屬縣)으로 편제되었다. 1182년(명종 2) 김포현·동성현·수안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됨으로써 수주의 속현에서 벗어나 지방관이 파견되는 주현(州縣)의 위상을 갖추었고, 1198년(신종 원년)에는 김포현이 임금의 태(胎)를 묻은 곳이라 하여 현령이 파견되었다. 1310년(충선왕 2) 수주가 부평부(富平府)로 개편되고 공암현은 양천현(陽川縣)으로 개칭되어 현령이 파견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 지금의 경기 지역이 경기좌도와 경기우도로 재편되면서 김포현과 통진현은 경기우도에, 양천현은 경기좌도에 편제되었으며, 1391년(공양왕 3) 통진현에 감무가 파견되고 동성현과 수안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조선이 개국한 뒤, 1394년(태조 3) 수안현과 동성현이 통진현에 통합되었으며, 1413년(태종 13) 전국 행정구역이 8도(道)로 정비되면서 김포현·통진현·양천현이 경기좌도와 우도를 합친 경기도에 편제되고 통진현에 현감이 파견되었다. 1414년(태종 14) 김포현과 양천현이 금양현(金陽懸)으로 통합되었다가 분리되어 김포현은 부평부에 편입되고 양천현은 금천현(衿川縣)에 병합되었으나, 1416년(태종 16)에 김포현과 양천현으로 환원되었다. 1632년(인조 10) 임금의 부모 묘소(김포 장릉, 사적 202)를 조성한 곳이라 하여 김포현이 군으로 승격되었고, 1694년(숙종 20)에는 통진현에 문수산성(사적 139)이 축조되어 통진부(通津府)로 승격되었다.

이후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 행정구역이 23부(府)로 재편되면서 김포군·양천현·통진부는 모두 군이 되어 인천부(仁川府) 관할에 편제되었다가 이듬해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시행되어 경기도에 편제되었다. 조선시대에 김포 지역의 행정구역은 대체로 김포군은 군내면·석한면·마산면·검단면·노장면·고현내면(고현면)·고란태면·임촌면의 8개 면을, 양천군은 군내면·삼정면·가곡면·남산면·장군소면의 5개 면을, 통진군은 군내면·보구곶면(보곶면)·월여곶면·소이포면·질전면(겁을전면·조을전면)·봉성면·하은면·양릉면·상곶면·대파면·고리곶면(고이곶면)·반이촌면의 12개 면을 관할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김포군·양천군·통진군이 김포군으로 통폐합되어 군내면·검단면·고촌면·월곶면·대곶면·양촌면·하성면·양동면·양서면의 9개 면으로 재편되었다. 이때 기존 김포군의 군내면과 고현내면·석한면이 군내면으로, 마산면·검단면·노장면이 검단면으로, 고란태면·임촌면이 고촌면으로, 통진군의 군내면·보구곶면·월여곶면과 질전면 일부가 월곶면으로, 대파면·고리곶면과 반이촌면 일부가 대곶면으로, 양릉면·상곶면·반이촌면과 대파면·검단면 일부가 양촌면으로, 하성면·봉성면·하은면·소이포면과 질전면 일부가 하성면으로, 양천군의 군내면과 남산면·장군소면이 양동면으로, 가곡면·삼정면이 양서면으로 각각 통합되었다. 1936년 양동면의 일부가 경성부에 편입되었고, 1938년 군내면이 김포면으로 개칭되었다.

8·15광복 후, 1963년 양동면과 양서면이 서울 영등포구에 편입되어 7개 면으로 축소되었고, 1971년 부천군의 오정면·계양면이 김포군에 편입된 뒤 1975년 오정면이 다시 부천시에 편입되어 8개 면이 되었다. 1979년 김포면이 김포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 월곶면·양촌면·대곶면의 일부가 분리되어 통진면이 신설되었다. 1989년 계양면이 인천시에 편입된 데 이어 1995년에는 검단면이 인천시에 편입되었으며, 1998년 김포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김포읍이 김포1~3동으로 개편되어 6면 3행정동 체제가 되었다. 2003년 김포3동이 사우동과 풍무동으로 분동되었고, 2004년 통진면이 통진읍으로 승격된 데 이어 2009년 고촌면이 고촌읍으로, 2011년에는 양촌면이 양촌읍으로 승격되었다. 2012년 장기동이 신설되었으며, 2013년 김포2동이 김포2동과 구래동으로 분동된 데 이어 2015년에 김포2동이 다시 김포2동과 운양동으로 분동되었다. 2017년 김포1동이 김포본동으로, 김포2동이 장기본동으로 개칭되었으며, 2019년 구래동이 구래동과 마산동으로 분동되어 3읍 3면 8행정동 체제가 갖추어졌다.

2018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3읍(통진읍·고촌읍·양촌읍) 3면(월곶면·하성면·대곶면) 8행정동(김포본동·장기본동·사우동·풍우동·장기동·구래동·마산동·운양동) 9법정동(북변동·걸포동·감정동·장기동·사우동·풍무동·구래동·마산동·운양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행정동인 김포본동은 법정동인 북변동·걸포동·감정동을 관할하고, 행정동인 장기본동과 장기동은 각각 법정동인 장기동 일부를 관할하며, 사우동·풍무동·구래동·마산동·운양동은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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