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허준

[ 許浚 ]

요약 조선 중기의 의학자. 선조와 광해군의 어의를 지냈으며 1610년(광해군 2)에 조선 한방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의성허준동상

의성허준동상

출생-사망 1539 ~ 1615
본관 양천(陽川)
청원(淸源)
구암(龜岩)
활동분야 한의학
주요저서 《동의보감(東醫寶鑑)》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청원(淸源), 호는 구암(龜巖)으로 경상도우수사(慶尙道右水使)를 지낸 허곤(許琨)이 할아버지이며, 아버지는 무관으로 용천부사를 역임한 허론이다. 허론의 정실은 일직 손씨였으며 허준의 생모였던 영광 김씨는 소실이었다. 허준의 이복 형 허옥(許沃)은 임금의 신변보호와 궁궐수비를 책임지는 내금위에 있었고, 동생 허징(許澄)은 서자이면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교검, 교리 등 내직을 지냈고 선조 때 영의정이었던 노수신(盧守愼)의 사위가 되었다.

허준은 경기도 양천현 파릉리(지금의 서울시 강서구 등촌2동 능안마을)에서 태어났다. 비록 서자였지만 차별받지 않고 명문가 출신답게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어려서부터 경전과 사서 등에 밝았다. 허준이 형제들과 달리 어떤 계기로 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유희춘(柳希春)의 《미암일기(眉巖日記)》에 의하면 1569년(선조 2) 이조판서 홍담(洪曇)에게 내의원에 천거해 주도록 부탁하였고, 1573년(선조 6)에 정3품 내의원정에 올랐다는 기록으로 보아 1569년 이후 내의원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양천 허씨 세보》에는 1574년(선조 7) 의과에 급제하였다고 알려져 있어 두 가지 설 모두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

1575년 어의 안광익(安光翼)과 함께 선조를 진료하기 시작했으며, 1578년 내의원첨정이 되었다. 1587년 10월에는 태의 양예수(楊禮壽) 등과 함께 선조를 진료하여 건강이 좋아지자 호피(虎皮)를 상으로 받았다. 그리고 1590년에는 광해군의 두창(痘瘡)을 치료하여 이듬해 당상관의 반열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의 발발로 선조가 의주로 피난갈 때 어의로서 선조 옆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모셨으며, 그 공으로 전쟁이 끝난 후 호종공신(扈從功臣)이 되었다. 1596년에는 광해군의 병을 고쳐 종2품의 가의대부(嘉義大夫)가 제수되었고, 이때부터 선조의 명을 받아 양예수 등 여러 의원들과 함께 조선의 실정에 맞는 의서(醫書)인 《동의보감(東醫寶鑑)》 편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의 발발로 의서 편찬이 어려워 보류되었다가 본격적인 편찬은 1600년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1601년 지중추부사로 승진하였고,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었으며, 1606년에는 양평군(陽平君)에 올라 정1품인 보국숭록대부로 승진하였으나 중인 신분으로는 과도한 벼슬이라 하여 대간(臺諫)들의 반대로 보류되기도 하였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책임 어의로서 의주로 유배되었다가 바로 풀려나 광해군의 어의로서 왕의 측근에서 총애를 받았다. 그는 광해군 대에 주로 의서를 편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의보감》의 완성이다. 1610년 완성된 이 책은 총 25권 25책으로 당시 국내 의서인 《의방유취(醫方類聚)》《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의림촬요(醫林撮要)》를 비롯하여 중국측 의서 86종을 참고하여 편찬한 것이다. 그 내용은 내경(內景)·외형(外形)·잡병(雜病)·탕액(湯液)·침구(鍼灸) 등 5편으로 구성된 백과전서(百科全書)로서 오늘날까지 애용되고 있다. 이 책은 일본과 중국에까지 전해져 중국판 서문에는 ‘천하의 보(寶)를 천하와 함께한 것’이라 하였고, 일본판 발문(跋文)에서는 ‘보민(保民)의 단경(丹經)이요 의가(醫家)의 비급’이라 평하고 있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가지정유산인 보물로 지정되었고, 2009년 7월 31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는 또 《구급방(救急方)》을 언해한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 2권, 《창진집(瘡疹集)》을 개정하여 언해한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2권, 노중례(盧重禮)의 《태산요록(胎産要錄)》을 개편하여 언해한 《언해태산요집(諺解胎産要集)》을 비롯하여 《벽역신방(辟疫神方)》《신찬벽온방(新纂辟瘟方)》《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 등의 저술이 있다. 죽은 후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추증되었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허준이 저술한 의학서

동의보감

1610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許浚)이 저술한 의학서적 《동의보감》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이다.

동의보감

1610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許浚)이 저술한 의학서적 《동의보감》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이다.

동의보감

1610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許浚)이 저술한 의학서적 《동의보감》의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이다.

벽역신방

1613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許浚)이 전염병 치료를 위해 편찬한 의학서이다.

신찬벽온방

1613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許浚)이 전염병 치료를 위해 편찬한 《신찬벽온방》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이다.

신찬벽온방

1613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許浚)이 전염병 치료를 위해 편찬한 《신찬벽온방》의 허준박물관 소장본이다.

언해태산집요

1608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許浚)이 출산에 관한 처방과 치료방법을 엮어 간행한  《언해태산집요》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다.

언해태산집요

1608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許浚)이 출산에 관한 처방과 치료방법을 엮어 간행한 《언해태산집요》의 한독의약박물관 소장본이다.

찬도방론맥결집성 권1, 3

1612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許浚)이 중국 육조시대 고양생(高陽生)이 쓴《찬도맥결》을 개편하여 간행한 의학서이다.

언해두창집요

1608년 조선 중기 의학자 허준(許浚)이 편찬한 두역(痘疫) 처방에 관한 의학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