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군
[ 仁城君 ]
- 요약
조선 선조의 일곱째 서자.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폐위를 주장, 이로 인해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이귀 등에 의해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왕의 불허로 무사했다. 이듬해 이괄의 난 때 적당(賊黨)에 가담했다 하여 간성에 유배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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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군묘
출생-사망 | 1588 ~ 1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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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 백인당 |
시호 | 효민 |
본명 | 공 |
활동분야 | 정치 |
호 백인당(百忍堂). 이름 공(珙). 시호 효민(孝愍). 어머니는 정빈(靜嬪) 민씨(閔氏). 1599년(선조 32) 인성군에 봉해지고 사옹원(司饔院)·종부시(宗簿寺)의 도제조(都提調)와 종친부(宗親府)에 재직하면서 관기를 확립하였다.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폐위를 주장, 이로 인하여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이귀(李貴) 등에 의해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왕의 불허로 무사했다.
이듬해 이괄의 난 때 적당(賊黨)에 가담했다 하여 간성(杆城)에 유배, 이어 원주(原州)로 이배되었다가 1626년 어머니의 중병으로 풀려나왔다. 1628년 유효립(柳孝立)이 대북(大北)의 잔당을 규합, 모반을 기도할 때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여 진도(珍島)에 안치되어 죽었다. 1637년 복관되었다.